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광장에 차려진 시민분향소에 모인 이태원 참사 유가족 50여명이 0시에 맞춰 희생자들의 이름이 띄운 휴대전화를 하늘로 들어 올린 채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제공
[숨&결] 박성민 | 전 청와대 청년비서관
2023년 새해가 밝았다. 만 나이 도입으로 나이가 그대로라느니, 새해에는 휴일이 며칠이라느니 등 시시콜콜한 얘기를 지인들과 나누며 지난해보다 더 나은 한해를 보내자고 서로를 응원하고 다독였다.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건 지난해를 잘 흘려보내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유난히 그 일이 어려웠다. 지난해에 두고 온, 채 풀리지 않은 매듭이 여전히 묵직하게 마음을 짓눌러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이태원 참사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여전히 더디기만 한 현실 때문이었다.
최근 이태원을 다시 찾았다. 유가족들은 추운 날씨에도 분향소를 지키고 있었다. 영정사진 위 곳곳에 놓여 있는 핫팩에 눈길이 갔다. “혹시 아이들이 추울까봐….” 한 유가족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최근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에스엔에스(SNS) 계정에 아이들의 영정사진 앞에서 새해를 맞는 유가족들의 모습이 영상으로 올라왔다. 각자 그리운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새해를 맞이한다. “보고 싶어”라는 말도, 흐느끼는 소리도 들렸다. 새로운 한해가 밝았다며 왁자지껄 ‘해피 뉴 이어!’를 외치는 세상 속에서, 떠나간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보고 싶다는 말을 되뇌는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2023년을 맞고 있을까. 살아도 사는 게 아닌 날들일 테지. 그 끝없는 그리움의 무게를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런데도 극우단체들은 분향소를 찾아 유족들과 아이들의 사진 앞에서 욕을 내뱉는 반인륜적 행태를 서슴지 않고 있다. 온라인에서 피해자들을 향해 가해지는 2차 가해도 여전하다.
한파주의보가 내린 날씨보다 더 차가웠던 것은 이태원 참사와 유족들을 향해 망언을 내뱉는 정치인들이었다.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은 지난달 10일 유가족협의회 출범을 두고 “세월호처럼 정쟁으로 소비되다가 시민단체의 횡령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을 운운했고, 같은 당 장제원 의원은 이튿날 “애초 국정조사는 합의해줘선 안 될 사안이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사고를 알게 된 뒤 85분이 지나서야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는 민주당 윤건영 의원의 지적에 “이미 골든타임이 지난 시간이었다”고 반박했다. 이후 성급했다며 유감표명을 하긴 했지만 내겐 중요치 않았다. 그 발언에서 보이는 그의 속마음에 더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내가 뭘 잘못했느냐’는 뻔뻔함 말이다. 이런 이들이 진정 국민을 대표하고,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겠는가. 국민을 위한 권력이 아니라,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 아닌가.
그들이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핵심 측근)으로 불리거나 친한 고교 후배인, 윤석열 대통령과 아주 가까운 사이라는 점도 공교롭다. 하기야 이태원 참사 희생자나 유가족들을 보듬는 대목 하나 없는 공허한 신년사를 한 윤 대통령이다.
고개 빳빳이 들고 군림하려고만 하는 거만한 권력을 대하는 방법은 두가지다. 첫째, 지치지 않는 것. 둘째, 끊임없이 묻는 것이다. 지치지 않고 물어야 한다. 제대로, 똑바로 비판해야 한다. 왜 막을 수 있었던 참사를 막지 못했는지, 왜 사후 대처가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왜 책임 있는 자리의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지, 왜 정치권이 2차 가해에 앞장서는지, 왜 이제는 이태원 참사 이야기엔 입을 꾹 다물고 있는지….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거만한 권력의 제대로 된 사과를 받아낼 때까지 우리는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많은 일은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 하지만 절대 잊어선 안 되는 일도 있다.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사랑하는 이를 잃고 삶이 무너진 이들에게 돌아갈 일상은 뭘까. 그래서 망각이 아닌 기억을 택하려 한다. 감히 함께 나눌 수 있는 아픔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렇게 내 몫을 다하고 싶다. 나의 가족이었을 수도, 나의 친구였을 수도 있는 그들을 위해서.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