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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동백꽃은 지고, 봄은 오고

등록 2022-12-29 18:32수정 2022-12-30 09:51

강요배, <동백꽃 지다>, 1991, 캔버스에 아크릴, 130.6×162.1㎝
강요배, <동백꽃 지다>, 1991, 캔버스에 아크릴, 130.6×162.1㎝

[크리틱] 강혜승 | 미술사학자·상명대 초빙교수

12월의 제주엔 동백꽃이 만발하다. 황량한 겨울을 붉게 수놓은 동백 군락은 감탄을 자아낸다. 동백은 나무에선 물론 땅에서도 꽃을 피운다고 한다. 송이째 툭 떨어져 땅에서도 꽃무리를 이루기 때문이다. 설경을 배경으로 광택 나는 초록 잎과 보색 대비되는 강렬한 붉은 꽃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붉게 물들인다. 동백꽃이 예술작품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유다. 추울수록 색이 짙어지는 붉은 꽃은 흰 눈 속에서 유독 애처로움을 발한다. 사연마다 쓸쓸한 이유다.

제주 섬에 유배됐던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동백꽃이 붉게 타오르는 이유는 당신 눈자위처럼 많이 울어서일 것이오”라고 적었다. 그는 끝내 유배지에서 아내의 부음을 들었다. 시인 유치환(1908~1967)은 그의 시 ‘동백꽃’에서 “나의 청춘의 이 피꽃!”이라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앞에 절규했다. 가수 이미자가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라고 노래한 ‘동백아가씨’의 사연도 “동백꽃잎에 새겨진 말 못할” 사정이었다. 예술가들이 동백꽃에서 느꼈던 정서는 이렇듯 슬픔이었다.

여담이지만 동백꽃과 함께 떠올리게 되는 김유정(1908~1937)의 단편 <동백꽃>은 겨울꽃의 심상이 아니다. 소설 속 화자인 강원도 산골 소년이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커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고 표현한 ‘노랑 동박꽃’은 청춘의 서툰 애정을 닮은 봄꽃이었다. 강원도 방언으로 동박꽃으로 불린 노란 봄꽃의 정체는 생강나무 꽃이다. 강원도에는 겨울꽃 동백이 피지 않는다.

동백의 수종은 다양하지만 우리나라 남쪽에서는 주로 붉은 동백이 자생해 온 까닭에 그 꽃은 핏빛으로 은유되곤 했다. 한겨울 추위를 견뎌 피워낸 소담한 꽃은 애잔한데, 만개하기도 전에 꽃부리가 송이째 떨어지는 낙화는 비장하기까지 하다. 11월 중순부터 꽃을 피우는 붉은 동백이 모진 풍파 속 민초들의 삶을 은유하게 된 배경은 생태의 필연이었다. 결정적으로 제주 출신 화가 강요배의 1991년 작 <동백꽃 지다>는 동백꽃을 제주 4·3사건의 상징으로 각인시켰다.

그림은 언뜻 제주의 겨울 풍경을 담은 듯 보인다. 못다 핀 붉은 꽃송이가 떨어지는 전경에 시선이 머무는 것도 잠시, 나뭇가지를 헤치고 화면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총칼을 든 무리와 그 폭력 앞에 스러진 주검더미, 흰 눈을 붉게 적신 피의 현장을 목도하게 된다. 풍경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1948년 4·3항쟁에 보복처럼 뒤따랐던 그해 11월 중순부터의 학살을 증언하는 역사화인 셈이다. 그림 한점은 그 어떤 주의, 주장보다 울림이 컸다. 잊혔던 4·3사건을 끄집어내는 한 계기가 됐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작가도 4·3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공포와 함께 섬사람들의 집단 기억 속에 묻힌 사건이었다. 서울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미술을 가르치던 그는 1988년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현기영의 소설 <바람 타는 섬>의 삽화를 그리며 사건에 눈뜨게 됐다. 제주의 항일운동사를 조명한 소설, 그리고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현기영 형의 술상머리 가르침을 통해” 그는 태어나기 전 섬에서 자행됐던 참극을 비로소 마주보기 시작했다.

강요배는 살아남은 이의 울분과 눈물, 침묵을 작품으로 풀어냈다. 유년의 기억 속 매서웠던 겨울 바다의 북풍보다 더 혹독했던 고향의 역사, 그 상처 앞에서 그는 고통스러웠다. 3년을 방황하며 그린 작품 50점으로 1992년 전시 <동백꽃 지다>를 열었다. 뜨거운 응시로 담아낸 삶의 장면들은 토착 정서를 넘어 보편의 심금을 울렸다. 역사를 전승하는 작업 앞에서 “절망을 딛고 올라서는 곳에 새봄의 꽃처럼 생이 있는 게 아닐까”라며 다시 봄을 말했던 작가의 변을 세밑에서 되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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