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대에 망원경을 설치한 뒤 첫 관측을 ‘최초의 빛’이라고 한다. 다누리도 우리나라표 우주탐사 역사의 첫 발걸음을 비추는 최초의 빛이다. 이 빛이 우리를 다시 달로, 소행성으로, 화성으로, 그리고 태양계 바깥쪽의 춥지만 화려하고 신비롭고 어쩌면 생명을 품고 있을지도 모를 세계로 인도해줄 것을 기대한다. 우리에게도 우주로부터 최초의 빛이 내려온다.
한국 최초의 달 탐사선 다누리호가 촬영한 첫번째 지구·달 사진이다. 지난 8월26일 오후 2시 지구에서 124만㎞ 거리에서 촬영한 지구(오른쪽)와 달의 모습이다. 과기정통부 제공
심채경 |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천문대에 망원경을 설치한 뒤 첫 관측을 ‘퍼스트 라이트’(first light)라고 한다. 우리말로 옮기면 ‘첫번째 빛’ 혹은 ‘최초의 빛’이라고 할 수 있다. 망원경 자체도 복잡한 광학계인데다, 현대의 연구용 관측 시스템은 망원경을 포함한 여러 요소로 이뤄진다. 그래서 돔 건설과 관측 시스템 설치가 모두 마무리된 뒤 실제 관측에 돌입하기 전까지 밤하늘의 다양한 천체 영상을 얻으며 각 요소를 조정해 최적화하는 기간을 거친다. 이를 위해 잘 알려져 있는 멋진 천체들을 골라 사진을 찍어본다. 미세 조정이 이뤄지기 전이므로 ‘퍼스트 라이트’ 사진이 과학 연구에 당장 사용할 수 있는 품질은 아니지만, 관측 시스템을 설계하고 제작하고 설치하는 데 참여한 많은 사람들에게는 성공의 뿌듯함과 안도의 기쁨을, 동료 과학자들에게는 앞으로 이 관측 시스템이 보여줄 새로운 우주에 대한 기대감을 안겨준다.
지난해 성탄절에 발사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에는 18개의 주경을 포함해 700개 이상의 기계장치가 있다. 발사를 위해 최대한 접힌 채였던 웹 우주망원경은 지구를 성공적으로 벗어나 우주공간으로 날아오른 뒤 앞뒤의 받침대와 태양차단막, 망원경의 주경과 부경 등을 하나씩 펼쳤다. 첫번째 시험관측 대상 중 하나는 큰곰자리에 있는 밝은 별이었다. 접어두었다가 펼친 18개의 거울마다 각각 맺힌 별의 상을 한데 모으기 위해 거울의 위치를 미세하게 조정하는 작업이 지루하리만큼 천천히, 석달에 걸쳐 극도로 신중하게 이루어졌다. 마침내 18개의 빛나는 점이 하나의 별로 모이고, 각 조각 거울이 반사하는 빛의 파형이 정확히 들어맞은 그 순간, 담당자들의 얼굴에는 환희의 웃음이 피었을 것이다.
또 다른 의미의 ‘최초의 빛’도 있다. 하나의 관측 시스템이 아니라 우주 탄생 초기의 진짜 빛을 말한다. 우주의 나이가 138억년에 가까운 지금은 웹 우주망원경이 우주의 어느 방향을 보아도 사진에 은하가 관측될 정도로 수많은 은하가 있지만, 그 많은 은하와 별이 탄생하기 전인 아주 오랜 옛날 언젠가에는 최초의 별, 최초의 은하가 있었을 것이다. 거기서 오는 빛이 ‘최초의 빛’이다. 우주 초기의 크고 무거우며 다른 여러 중원소 없이 순수하게 수소와 헬륨만으로 이루어진 최초의 별을 많이 관측하는 것이 웹 우주망원경의 주요 임무 중 하나다.
지난 8월 발사한 한국형 시험용 달 궤도선 다누리도 그동안 우리에게 첫 관측자료들을 보내왔다. 자기장측정기(KMAG)는 발사 직후 지구 자기권 경계 통과 전후의 자기장 변화를 관측했고, 감마선분광기(KGRS)는 지구에서 20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감마선 폭발 신호를 감지했다. 다누리가 연료 절감을 위해 지구와 달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점까지 항해한 덕분에, 고해상도 카메라(LUTI)는 달이 지구 주위를 한바퀴 공전하는 실제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었다. 우주인터넷 시험장치는 목표했던 대로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 뮤직비디오를 우주에서 지구로 무사히 송신했다. 모든 관측기기가 각자의 ‘퍼스트 라이트’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임무에 들어갈 채비를 마무리하고 있다.
이제 곧 달 궤도에 도착할 시간이다. 이번 금요일 밤에서 토요일 새벽 사이, 그동안 먼 길을 돌아 온 다누리가 마침내 달을 만나고 그 중력에 붙잡혀 달 주위를 도는 궤도에 들어갈 것이다. 이후 서서히 궤도를 조정해 연말께에는 본래 목표한 대로 달 상공 100㎞의 원궤도에 안착할 예정이다. 만약 달 주위를 도는 궤도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대로 달을 지나쳐버릴 수밖에 없지만, 일단 달의 중력이 내미는 손을 어떻게든 잡기만 한다면 여러차례 자세를 바꾸고 속도를 바꿔가며 목표 궤도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고 나면, 멀리 돌아 달까지 가는 경로를 선택하면서 덤으로 얻게 된 관측자료들 말고 이번엔 진짜 달을 관측하며 얻을 또 다른 의미의 첫 관측자료들과 시스템 점검를 위한 각종 명령어들이 달과 지구 사이를 빛의 속도로 오갈 것이다.
다누리 그 자체도 우리나라표 우주탐사 역사의 첫 발걸음을 비추는 최초의 빛이다. 이 빛이 우리를 다시 달로, 소행성으로, 화성으로, 그리고 태양계 바깥쪽의 춥지만 화려하고 신비롭고 어쩌면 생명을 품고 있을지도 모를 세계로 인도해줄 것을 기대한다. 우리에게도 우주로부터 최초의 빛이 내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