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 | 가수
칼럼을 쓰면서 기회 닿는 대로 친구도 만나고 모임에도 나가고 있으니, 지금 쓰는 이 코너
‘양희은의 어떤 날’이 방콕, 집순이였던 나를 세상으로 끌어내 준 셈이다. 워낙 일 없이는 도통 나가질 않고 엠비시(MBC) 라디오 ‘여성시대’ 생방송과 에스비에스(SBS) ‘생활의 달인’ 더빙 때 외엔 늘 집에 있다.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니 얘깃거리도 없었다. 장 봐와서 부엌일하고 이른 저녁을 먹고 치우면 7시 언저리…. 그저 두마리 강아지들과 놀고 텔레비전(TV) 보는 게 전부니까 똑같은 일상의 되풀이로 살아있는 얘기가 없었던 셈이다.
11월은 오가는 친구들이 많았다. 독일서 온 ㅇ는 한국에 오면 늘 우리 집에서 저녁 먹고 하루 자는데, ㅇ이 좋아하는 찬을 준비하고, 아침식사도 커피와 과일(배, 감, 사과) 쑥갠떡으로 대신했다. ㅇ은 우리 엄마와 가까워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데, 부엌에서 듣자니 재미와 웃음이 늘어진다. 우리 딸 셋의 말은 그렇게 받아준 기억이 없어서 어쩐지 쓸쓸했고 두 사람이 진짜 잘 통한다 싶었다.
병원 일 마치고 ㅇ을 전철역까지 태워다주는데 이런 말을 했다. 세상 어떤 나라가 나이 들었다고 공짜로 전철 태워주니? 우리나라밖에 없어. 동회 가봐.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그 말이 얼마나 따뜻하고 고마운지 몰라. 독일에선 도움되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서 하라는 식이야. ㅇ은 우리 음식에 진심이다. 빵조각 굳은 건 버려도 아까울 것 없는데 밥은 한톨도 아깝단다. 떠나 사는 친구들은 다니러 와서는 하루하루 내 나라 내 땅을 더 절절히 느끼다 간다. 숙소에 가만히 누워있어도 우리말이 들리면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단다. 외국 사는 동창들이 진즉부터 백발이 되는 걸 봐왔다. 남의 땅에서 은근히 받는 스트레스라는 게 그런가 보다.
그다음 손님은 도쿄에서 우리 김치 사업을 초창기에 시작한 ㅊ. 해방 50주년 기념 재일동포 모임에 초청받은 일이 계기가 돼 가까워졌는데, 어른들이 사인 어쩌구저쩌구하니 당시 6살이던 ㅊ의 아들이 자기는 다음에 유명해질 테니 미리 사인해준다며 멋진 일필휘지를 휘둘러(그것도 붓으로) 웃음을 준 적이 있다. 그 아이가 33살 늠름한 청년이 돼 어머니 곁에서 거들고 있었다. 4년 전 도쿄에서 저녁약속을 못지키고 친정어머니 계신 요양원으로 급히 가면서 “살아남기도 힘들지만 떠나보내기도 힘들어요”라고 했었다. 그 친정어머니께선 떠나기 전 음식 버킷리스트 10가지를 적어주셨단다.
우리나라 찰옥수수, 우리나라 물고구마, 일제 모리나가 밀크카라멜, 우리 간장에 재운 산적구이, 광어와 연어회, 우족 족편(꼭 석이버섯 넣고), 애호박 넣은 한국 된장찌개, 증편(막걸리 술떡), 스시(여러 종류 모둠으로), 멍게젓(못구하면 말고)
요리가 전공인 ㅊ은 득달같이 한국에 연락해서 10가지를 다 잡숫게 해드렸다는데, 그렇게 보고 싶어 하시던 장손과 큰아들이 도쿄에 도착하고 이틀 뒤 잡숫고 싶은 것 다 잡수시고 보고픈 아들과 장손 다 보시고 떠나셨단다. “우리 친정어머니는 얼마나 이기적인지!”라고 하자 옆의 아들이 받아서 “우리 엄마도 이기적이에요”했다. 숙소로 돌아간 ㅊ이 톡을 보냈다. ‘이기적이고 자기만 아는 엄마가 편해요. 요구사항이 있음 말씀하시고 네, 아니오가 확실해서 좋아요. 지금은 이렇게 살아야 돼요. 자기중심으로 이기적으로 하셔도 돼요.’
서울 오면 유명 셰프들의 음식 맛보기가 전공인 ㅊ에게 소위 실비음식점 몇곳을 소개해줬다. 장어집, 짜장면집, 보리굴비+떡갈비+게장백반집, 된장찌개와 숯불고기구이집. 날이 갈수록 멋진 인테리어의 유명 셰프가 운영하는 우아한 곳보다는 엠에스지(MSG) 안쓰는 소박한 밥집을 추천하게 된다. 젊은 날에는 그런 우아한 곳도 좋았다. 하지만 이제는 소박한 집밥을 나가서도 먹고 싶다.
12월 초, 겨울 소풍으로 강제윤 시인이 교장이신 섬학교의 마지막 100번째 강의에 따라나섰다. 배 안타고 천사대교와 새천년대교를 건너 자은도, 암태도 바닷가 구경도 하고 섬에 대해 공부하는 귀한 시간이었다. 고운 모래로 덮인 해변은 아스팔트처럼 단단해 걷기 십상이었고 초창기 무렵 한번 참여하고 마지막 강의를 들으니, 또 새로웠다. 섬학교는 섬의 가치와 섬사람들의 고충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늘 섬으로 떠나고 싶었지만 남편이 심한 배멀미로 죽을 지경이 된 걸 보고는 섬 얘기는 아예 접고, 매번 보내주는 메일만 봐왔는데, 드디어 배를 안 타는 섬여행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자은도의 해변이 고즈넉하고 멋져서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 땅 기회 닿는 대로 많이 누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