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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법적으로’ 다 하려는 대통령, 정치를 왜 할까 [권태호의 저널리즘책무실]

등록 2022-12-07 20:03수정 2022-12-08 00:34

‘합리적 의심’과 ‘객관적 근거 없음’을 누가 판단하는가. 김종대 전 의원을 ‘법적으로’ 처벌해야 대통령실의 진실이 입증되는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가짜뉴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여든 야든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는 덮어놓고 가짜뉴스라 한다. 해명과 반박, 비판의 기술로 공론장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줄 순 없는가.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권태호 | 저널리즘책무실장·논설위원

정치부 기자로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을 만나면 비슷한 점을 발견할 때가 많았다. “법적으로”라는 말을 자주 쓴다. 사안에 대한 판단을 ‘법적으로 문제가 있냐, 없냐’를 1차적 기준으로 잡을 때가 많다. 두번째는 고소·고발을 쉽게 생각한다. 보통 사람과는 사고방식이나 행동방식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법조인 출신은 현대사회에선 되도록 정치지도자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정치지도자가 되려면 ‘법조인 물’을 빼야 하고, 상당 기간 다른 일도 해보는 게 좋다고 본다.

대통령실이 지난 6일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과 방송인 김어준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5일 <티비에스>(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국방부 고위관계자에게 지난 3월 육군참모총장 공관과 서울사무소에 천공이 다녀갔다는 증언을 들었다”며 “이후 대통령 관저가 한남동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육군은 곧바로 “사실이 아니다”라며 부인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방송을 보면, 김 의원은 ‘국방부 고위관계자’로부터 이 말을 들었고, 이 ‘국방부 관계자’는 ‘육군 누군가’로부터 들은 것으로 여겨진다. ‘전언의 전언’이다. 이 상태라면 대부분의 언론사 데스크는 추가 취재를 지시한다. 공관 관리관 접촉 등 ‘복수의 관계자’를 주문할 것이고, 이후 대통령실, 국방부, 육군 쪽 반론도 들을 것이다.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계속 추가 취재를 할 것이냐’ 아니면 ‘현 상태에서 취재한 부분까지 보도할 것이냐’. 사실 여부를 기준으로 공익적 가치 등을 고려해 종합 판단한다. 취재원이 1명이어도 보도는 가능하다. 그때는 ‘그 관계자’가 어느 정도 위치인지, 얼마나 신뢰할 만한지, 발언 외에 다른 근거가 있는지 등이 중요하다. 방송 내용이 전부라면 현시점에선 보도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김 전 의원은 언론사 소속이 아니다. 따라서 그의 공적 발언 기준은 다를 수 있다.

이처럼 김 전 의원의 주장이 다소 헐거워 보이긴 하나, 대통령실의 고발은 납득되지 않는다. 대통령실은 6일 브리핑에서 “합리적 의심이 아닌 객관적 근거 없는 가짜뉴스로 민주주의를 훼손”, “의혹 제기 누구나 할 수 있다.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면,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보호받아야 한다. (그러나) 모함하기 위한 가짜뉴스라면 발언 책임을 지는 조건이 선제돼야 한다”고 했다. ‘합리적 의심’과 ‘객관적 근거 없음’을 누가 판단하는가. 대통령실은 이를 ‘수사’와 ‘법원 판결’에 맡겼다. 대통령의 고발이니, 수사기관은 기를 쓰고 혐의를 입증해야 한다. 못 해내면 ‘무능’이다. 대통령실은 “법적 조치를 안 하니 계속 회자된다”고 했다. 김 전 의원이 ‘법적으로’ 처벌받으면 대통령실의 진실이 입증되는 것인가. 지금까지 ‘천공’ 이야기가 계속되는 이유가, 진정 ‘법적 조치’를 안 했기 때문이라 생각하는 건가.

지난 5일 &lt;티비에스&gt;(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유튜브 화면 갈무리.
지난 5일 <티비에스>(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유튜브 화면 갈무리.

김어준 고발은 더 황당하다. 최소한 이 방송에 국한하면 그에게 책임을 묻긴 힘들다. 인터뷰를 보면, 그는 진행자로서 “어떻게 알게 됐냐”, “왜 지금까지 안 알려졌냐” 등 청취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추가 질문을 이어간다. 맞장구를 치기도 하지만, 대통령실 반론을 전하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니 ‘이참에 한꺼번에 손보자’라는, 감정적 대응으로만 비친다.

대통령실은 김 전 의원을 고발하면서 “앞으로도 가짜뉴스에 응하는 기준과 원칙을 알아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도’라는 말이 포고처럼 들린다. 윤석열 대통령은 ‘가짜뉴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그랬다. 거슬러 올라가면, ‘가짜뉴스’(fake news)라는 단어의 유래는 1920년대 독일 나치당이 자신들과 맞지 않는 언론을 지칭한 용어 ‘뤼겐프레세’(Lügenpresse·Lying press, 거짓 언론)에서 비롯된다. ‘오보’와 ‘가짜뉴스’는 다르다. 차이는 ‘의도성’이다. 요즘은 ‘악의적’이란 표현을 더 자주 쓴다. 여든 야든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는 덮어놓고 가짜뉴스라 한다. 해명과 반박, 비판의 기술로 공론장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줄 순 없는가. 마치 말다툼하다 주먹 내지르는 덩치 큰 사내아이처럼, 굳이 ‘법적’ 조치로 ‘고통을 보여줘야’ 속이 시원하겠는가.

대통령실은 지난달 22일에도 김건희 여사의 캄보디아 아동 방문 사진 촬영에 조명이 사용됐다는 의혹을 제기한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을 고발했다. 이게 고발할 일인가. 거치식 ‘조명 장치’를 사용하지 않았을 순 있겠다. 그런데 카메라에 부착된 조명도 안 켠, 순수 자연발광인가. 이런 의문도 제기하면 ‘법적 조치’를 당할 수 있나.

법은 약자의 방패가 될 때 그 의미가 산다. ‘법적으로’ 다 하려면, 정치를 왜 할까. 그냥 법조인으로 있지.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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