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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괴짜들을 위한 대학

등록 2022-12-06 07:00수정 2022-12-06 10:19

2016년 4월11일 오전 청주 서원대학교 윤리교육, 지리교육학과 일부 학생들이 교내에서 대학 측의 일방적인 폐과 대상 검토에 항의하는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6년 4월11일 오전 청주 서원대학교 윤리교육, 지리교육학과 일부 학생들이 교내에서 대학 측의 일방적인 폐과 대상 검토에 항의하는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한승훈

종교학자·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유행하고 이미 수십년이 지났지만, 세부 분야별로 살펴보면 상대적으로 훨씬 극단적인 위기를 겪고 있는 분과들이 있다. 내가 속한 학문 영역도 그 가운데 하나다. “한국 대학에 종교학과가 몇개나 있나요?”라는 질문에 답하기 민망할 만큼, 이 분과학문은 제도적인 영역에서 처참한 실패를 거듭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90년대 자료를 살펴보면 상황이 꽤 다르다. 이 시기에는 국립대와 종립대학들을 중심으로 종교학과, 종교문화학과, 종교철학과, 동양종교학과 등이 활발히 설치되고 있었다.

선배 연구자들에게 전해 들은 전설 같은 이야기에 따르면, 1990년대에는 ‘한국대학종교학도연합’(한종련)이라는 단체도 있었다. 자료를 살펴보니, 한때 10여개 대학 20개 가까운 학과가 참여했던 이 연대체는 정기적으로 모여 학술대회, 문화행사, 사회 참여, 종교연합운동, 스포츠를 통한 친목활동 등을 진행했다. 이 조직이 언론 보도에 마지막으로 언급된 시기는 2000년이다. 전성기 때의 절반 규모도 되지 않는 7개 학과만이 참여한 당시 행사 의제는 “인문학이 대접받지 못하고 점차 소외되어가는 현실 속에서 종교학을 공부하는 젊은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고민하고 나름의 자구 방안도 마련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마련한 “자구 방안”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이후의 “현실”은 훨씬 혹독했다. 학령인구 감소와 당국의 신자유주의적 정책 기조 속에서 이뤄진 대학 구조조정 과정에서 많은 학문 분야들이 대학에서 제도적 기반을 잃어갔다. 특히 인문학 기반의 객관적인 종교연구를 지향하는 학과들은 상당수가 종립학교에 설치돼 있었기 때문에 특정 종교 교단의 관점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는 재단의 지지를 얻는 데 취약했다.

나는 사회의 수요에 따라 대학의 학제가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대학교육에 요구되는 ‘수요’에 두가지 의미가 있다는 사실은 흔히 간과된다. 하나는 많은 시민에게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교양을 제공해 여러 영역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전문적인 연구자들을 양성하는 것이다. ‘돈이 안 되는’ 분야에 투자를 줄이거나 학과를 없애는 것은 주로 전자의 수요에 집중할 때 일어나는 일이다. 한편 후자의 수요를 정책결정자들에게 납득시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는 당장은 어디에도 쓸모없을 것 같은 오타쿠적 지식을 추구하는 괴짜들에게 사회적 자본을 투여하는 일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지식이란 생산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인류에게 언제 어떤 지식이 필요하게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황무지를 개간하고 있는 농부에게 왜 당장 오늘 저녁 식사를 내놓지 않느냐고 닦달해서도 안 되고, 있을지도 모르는 광맥을 찾고 있는 광부에게 지금 바로 잘 세공된 결혼반지를 내놓으라고 해서도 안 된다.

나는 산업과 연계가 적은 인문학을 가르치고 있지만 대학은 순수학문만을 위주로 다루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대학교육을 받는 이들에게도 실무적 직업교육은 필요하다. 단 그것은 지식의 개발과 전수에 특화돼 있는 대학시스템과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대학은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만들어서 ‘납품’하라는 요구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대학의 본업도 의무도 아니다. 필요한 인력이 생산되기를 바란다면 필요한 쪽에서 충분히 투자하고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하청을 주려면 돈을 달라.

한편 괴짜들의 지적 추구에 대한 지원은 사회의 역량에 따라 일시적으로 줄어들 수는 있지만 결코 중단돼서는 안 된다. 국공립대학들을 연구중심 기관으로 만들어 공적 투자를 확대하는 것은 좋은 대안이다. 세부적인 방안은 가능한 한 많은 대학에 이른바 명문대들 못지않게 다양한 학과와 강좌들을 설치하는 형태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산업적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모집단위와 학문 분야의 수요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전통적 분과체제를 분리해 공존하게 하는 형태가 될 수도 있다. 교육정책 분야에 문외한인 나는 이 정도의 문제제기에서 그친다. 대학에는 그런 문제를 고민하는 데 특화돼 있는 전문연구자들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투자하고 의견을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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