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주 언론인
매사에 빈틈이 없어 보이는 이해찬 총리가 골프장에 가면서 삼일절과 철도노조 파업을 챙기지 않았을 리 없다. 만반의 대책을 마련해두었을 것이고 골프를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으리라. 여러번 입방아에 올랐으면서도 골프에 관한 한 참을 수 없는 유혹 탓에 그가 판단을 그르쳤다고 본다.
김진표 교육부총리가 “골프나 등산이나 그게 그건데!”라고 옹호했다. 사실 그런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총리가 틈만 나면 골프장으로 달려가도 ‘골프 되게 좋아하네, 못 말리는 사람이야!’ 하면서 웃어넘길 수 있는 그런 시대가 되면 좋을 것이다.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틈만 나면 골프장으로 달려가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선거 때는 그런 모습이 비치지 않도록 주의했다. 존 케네디 전 대통령도 골프를 좋아한 것으로 사후에 알려졌지만 선거참모들이 전면에 부각되지 않도록 했다. 하물며 대한민국의 총리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해선 어쩐지 혀를 차고 돌아앉고 싶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말이 나왔으니 고백을 해야겠다. 나도 골프를 한다. 아침마다 동네 연습장으로 간다. 이른바 머리얹기라는 것도 해 봤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나 골프 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골프란 누가 뭐래도 우리 사회에서는 시간과 돈이 넉넉한 사람만 즐길 수 있는 놀이다. 시간이야 많지만 돈 여유를 놓고 보면 자신도 없고, 남한테 시간과 돈이 많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부끄럽게 여겨진다. 1988년인가, <한겨레신문> 창간 초기에 한 간부가 친구가 쓰다 준 똥차를 끌고 다녔다. 심심하면 핸들이 빠지고 길거리에서 덜컥 서버리는 경우도 많았는데, 기자들이 “이런 시대에 선배가 자가용을 타다니!” 하면서 비난한 적도 있었다. 그 시점에는 자가용이 그런 구설수의 대상이었다. 아직은 골프가 그런 것이다.
연습장에서 자주 만나는 은퇴한 교수님은 예순다섯에 골프를 시작해 재미를 붙인 양반이다. 아직도 적응이 안 돼 “내가 골프를 치게 되다니!” 한다. 골프 약속이 있을 때마다 노모 몰래 골프채 챙기고, 돌아올 때면 차에 골프채를 두고 집에는 안 갖고 들어간다. 동생이 병석에 누워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 산에나 다녀오겠습니다’와는 차이가 있으니까. 골프와 등산의 차이는 이렇게 명확하다.
우리나라 골프 인구가 200만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기 돈 내고 즐길 여유가 있는 사람이 200만이 될 수는 없다. 접대 골프가 없으면 골프장은 문을 닫는다고 한다. 골프장 이용료, 카트료, 캐디비, 식사와 맥주, 그리고 작은 돈이라도 걸고 내기를 하면 골프 나들이 한차례에 30만원을 훌쩍 넘는다. 광고업에 종사하는 남편은 업자들에게 골프 접대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돈을 안 내고 골프를 치는 사람은 업자라고 생각한다. 정치인도 언론인도 관료도 자기 돈을 안 내고 친다면, 업자 취급을 받는 것이다. 관계를 돈독하게 하기 위해서건 당장 걸린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건 골프 접대를 통해 이익을 얻자는 것이 대접하는 사람의 목적이다. 총리가 골프를 함께 친 상대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이참에 고위공무원들이 골프 나들이 원칙을 내부적으로 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누가 뭐래도 나는 떳떳하다는 배짱으로 골프를 해 온 총리가 결국 골프와 총리 자리를 맞바꾸는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대국민 사과말고 현재 이 총리의 심중이 어떤지, 골프에 대한 못말리는 집착이 여전한 건지 진짜 궁금하다.
김선주/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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