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서울 강남대성학원에서 열린 대입 수능 가채점 기준 입시설명회에서 학부모들이 배치표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겨레 프리즘] 황춘화 | 사회정책팀장
역대급 불수능이었던 지난해 2022학년도 대학 수학능력평가시험(수능)에서 만점자는 단 한명이었다. 하지만 이 만점자는 수학 최고 득점자(147점)는 아니었다. 수능 성적표엔 원점수가 아닌 표준점수가 기재되기 때문이다. 표준점수는 전체 수험생 점수의 표준편차 등을 반영해, 원점수가 얼마나 평균과 떨어져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이 다소 복잡해 보이는 셈법은 지난해 수능이 문·이과 통합으로 치러지며 더욱 복잡해졌다. 국어·수학이 ‘공통과목(75%)+선택과목(25%)’으로 구성돼 선택과목에 따라 수험생들의 시험문제가 달라지는데, 성적은 함께 산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은 공통과목 평균점수가 높은 선택과목 집단에 보상을 주는 ‘조정법’을 도입했다. 틀린 문제 수가 같더라도, 자신이 속한 집단의 공통과목 점수가 높으면 선택과목에서 점수를 더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 결과 지난해 수능에서 ‘미적분’을 선택한 이과생들은 ‘확률과 통계’를 택한 문과생들보다 더 많은 수학 점수를 가져갔다. 전국에서 한명뿐이었던 수능 만점자가 수학에서 최고 점수를 받지 못한 이유도 ‘확률과 통계’ 과목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개인 점수를 소속 집단의 점수와 연동시키는 것은 정당한가? 문과생의 상식으론 다소 이해되지 않는 이 계산법 때문에 지난 대학입시에서 문과생들은 ‘폭망’했다. 수학 점수를 무기로 든 이과생들은 좋은 대학 간판을 얻기 위해 대거 인문계열 교차지원에 나섰고, 서울대 정시모집 일반전형 인문·사회계열 최초 합격자의 44.4%가 미적분 등을 택한 이과생이었다. 입시업계 분석에 따르면, 고려대·연세대·서강대 등 서울 주요 사립대 인문·사회계열 최종 합격자 50~60%가 이과생으로 추정된다.
“수학을 잘하는 학생이 선택과목에 따라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은 있지만, 집단으로 문과에 불리하고 이과에 유리하다고 해석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2023학년도 수능을 앞두고 현장에선 통합형 수능에 대한 보완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셌지만 평가원은 문제없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평가원의 호언장담처럼 올해 수능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까? ‘국어-수학 표준점수 최고점 격차 최대 13점’. 수능 가채점 뒤 입시업계는 이과생들의 문과 교차지원이 더욱 거세질 거라고 입을 모은다.
일각에서는 문과 붕괴가 인문학의 위기로 이어질 거란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두차례의 수능으로 그런 거대 담론까지 논하고 싶진 않다. 그저 두려운 것은 최근의 입시 결과가 일선 교육 현장에 어떤 신호를 줄지 너무도 명확하다는 것이다. ‘수학 몰입 교육’. 수학 잘하는 학생 선발제도로 전락한 수능은 고등학생은 물론 나아가 초등학생들의 일과도 바꿔놓을 것이다. 이미 수학은 배워야 할 분량이 많고 어렵다는 인식 때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수학을 공부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선행학습이 심각한 과목이다.
“우리 애가 수학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거든. 근데 최근에 ‘나는 수학 못해’라는 말을 달고 살아.” 유명 수학학원 상위권 반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지인은 최근 아이를 계속 수학학원에 보내도 될지 고민스럽다고 고백했다. 이제 겨우 초등 저학년인 아이가 과도한 선행학습 탓에 수학에 흥미를 잃는 것 같아 고민스럽다는 것이다. 수학을 공부할수록 수학에 대한 재미를 잃고 ‘수포자’가 되는 현실. 이는 비단 한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현주소일지도 모른다.
평가원 초대 원장이자 수능 창시자로 불리는 박도순 고려대 명예교수(교육학과)는 2020년 <한겨레> 인터뷰에서 “공부가 즐거우려면 재밌게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같은 잣대로 학생들을 재고, 서열화하니 문제 해결이 안 된다”며 지금과 같은 수능은 사라지는 게 맞는다고 꼬집었다. 수능이 아이들의 교육을 파행으로 몰고 간 지 오래, 폐해는 갈수록 심각해진다. 이런 수능을 계속 유지하는 게 옳은가? 해법을 찾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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