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추모의 글귀들이 붙어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삶의 창] 김소민 | 자유기고가
지난 13일 서울지하철 이태원역 1번 출구로 올라가는 계단부터 포스트잇이 빼곡했다. 전날 밤 늦가을비가 내렸다. 시민들이 쓴 편지, 음료수, 과자, 곰돌이 인형 그리고 수북한 국화가 젖을까 자원봉사자들이 비닐을 덮어뒀다. 흰 스웨터를 입은 20대 여자가 골목 귀퉁이에 서서 추모편지를 쓰려는 사람들에게 펜과 포스트잇을 건넸다. 여자는 추워 보였다. 4시간 넘게 자원봉사자라고 쓰인 목걸이를 걸고 거기 있었다. “저기 저분 보이시죠. 저분 혼자 여기 정리하는 거 볼 수가 없어서 같이 있는 거예요.” 그가 가리킨 쪽엔 베레모를 쓴 60대 남자가 추모물품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있었다. 포스트잇에 쓰인 글들은 비슷했다. “꿈 많은 나이, 우리는 당신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어른의 역할을 다하지 못해서.”
이태원에서 참사가 일어난 날 김백겸 경사는 외쳤다. “사람이 죽고 있어요.” 울먹이며 현장을 통제하려고 애쓰는 그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퍼졌다. 그날 이후 그는 <비비시>(BBC)와 인터뷰하며 오열했다. “제가 고맙다는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닌데…. 저는… 제 할 일을 다 하지 못했는데…. 더 면목이 없고… 죄송합니다.” 이 인터뷰 영상 아래 댓글들이 달렸다. “이것이 위로다.”
이태원역 1번 출구 포스트잇들은 유족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리가 함께 있다.’ 책 <슬픔의 위안>에서 론 마라스코는 “다른 사람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썼다. 절벽에 매달린 것처럼 일상이 갑자기 꺼져버린 유족에게 필요한 건 밧줄의 다른 끝을 누군가 잡고 있다는 신뢰라고 했다. 미안할 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의 미안하다는 말은 당신이 겪는 고통의 무게를 함께 지겠다는 뜻이다.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죄책감을 느끼는 까닭은 우리는 서로를 돌봐야 하는 책임을 나눠 진 사람들이란 자각 때문이다. 그게 공동체이니까.
애도는 공동체가 슬픔에 잠긴 당신을 받치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의례이기도 하다.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한 정부는 애도의 반대가 무엇인지 보여줬다. 참사가 나고 재난관리 총책임자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일성은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였다. 자기 잘못은 아니라는 거다. 그날 거기에 간 사람들 탓이라면, 이제 어딜 가든 인파가 얼마나 모일지, 그 모임에 주최는 있는지 각자 확인해야 한다. 정부 책임을 묻는 외신기자 질문에 한덕수 국무총리는 농담으로 답했다. 이어진 책임전가로 한국 정부 최고위직들이 전한 메시지는 이렇다. ‘당신 곁에 우린 없다.’ 책임을 묻는 수사는 현장에서 분투했던 일선 소방관과 경찰을 향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소식을 듣고 민간잠수사 25명은 팽목항으로 갔다. 김상우 잠수사는 4·16구술집 <그날을 말하다>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바닷속에서) 로프를 두손으로 잡아야 하고 시신이 훼손되면 안되니까 아이가 입은 재킷에 손을 끼고 안고 가는 거예요. 그 아이와 내 얼굴이 맞닿아요. ‘엄마한테 가자.’”
한명이라도 더 데리고 나오려고 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한 잠수사가 숨지자 해경은 관리감독 권한이 없는 동료 민간잠수사 공우영씨에게 책임을 물었다. 그가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는 데 3년이 걸렸다. 민간잠수사 25명 가운데 8명이 뼈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아 뼈조직이 죽어가는 골괴사 판정을 받았다. 정신적, 육체적 후유증을 앓는 잠수사들은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고 생활고를 겪었다. 잠수사 황병주 씨는 2017년 촛불집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가족들은 우리에게 고맙다고 하지만, 우리는 죽는 날까지 유가족들에게 미안합니다…. 어른이고, 국민이고, 사람이기 때문에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