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0월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정남구 ㅣ 논설위원
지난 7월5일 아침 8시 통계청의 ‘6월 소비자물가 동향’ 자료 엠바고가 풀렸다. ‘전년동월대비 6.0% 상승’이란 속보가 쏟아졌다. ‘24년 만의 최고치’였다.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선언했다. “앞으로 제가 민생을 직접 챙기겠다. 민생 현장에 나가 국민 여러분의 어려움을 듣고 매주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겠다.”
사흘 만인 7월8일 1차 회의가 열렸다. 정부는 ‘고물가 부담 경감을 위한 민생안정 방안’을 발표했다. 취약계층을 위해 에너지 바우처 단가 인상 등 4800억원 규모의 재정 지원 확대, 식료품 가격 안정을 위한 할당관세 추가 지원 3300억원 등 8천억원 규모의 지원책이었다. 중앙정부 지출 규모가 39조원이던 2차 추경(5월29일 확정)에 비하면, 속된 말로 ‘새 발의 피’였다.
약 일주일 뒤 2차 회의를 열어, 금융부문 민생안정 과제 추진현황과 계획을 논의했다. 7월20일 3차 회의에선 ‘전월세 거주 서민을 두텁게 보호하는 민생안정 대책’을 논의하고, 주택도시기금 전세대출(버팀목)의 금리를 올해는 동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선의 전월세 시장 안정 대책은 주택 공급 확대’라며, ‘공공임대 및 부담 가능 가격의 공공분양 등 공공주택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나중에 내년 예산안을 보니, ‘등’ 자가 마술을 부렸다. 공공임대는 예산을 5조6천억원 삭감하고, 공공분양을 크게 늘리겠다고 한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월에 6.3%로 커졌다. 5차 회의는 8월11일 열렸는데, 별것 없었다. 추석 성수품 가격을 매일 점검하며 집중 관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앞서 7월27일 열린 4차 회의에선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 방안’을 논의했다. 6차 회의(8월25일)는 ‘소상공인·자영업 정책 방향’, 7차 회의(8월31일)는 ‘수출 경쟁력 강화 전략’이 주제였다. 한달 가까이 지나 9월28일 8차 회의에선 ‘대한민국 디지털 전략’을 논의했다. 9차 회의(10월5일)에선 ‘농업혁신 및 경영안정 대책’, 이틀 뒤 연 10차 회의(10월7일)에선 ‘국제수지 대응방향’을 논의했다. 당면한 ‘비상 경제’ 상황이나 ‘민생’과 적잖이 동떨어진 의제들이었다.
10월27일 11차 회의는 생중계를 했다. ‘경제활성화 추진전략’이 주제였다고는 하지만, 민생대책은 뒷전이었다. 장관들이 나서서 실적 자랑에 열을 올렸다. 기름값이 고통인데, 중동 특수를 거론하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금리 급등으로 불안에 떠는 사람들 들으라고 부동산 규제 완화를 이야기했다. 중계방송 실시간 댓글에는 탄식이 쏟아졌다.
민생의 어려움은 주로 물가 상승으로 인한 실질소득 감소, 금리 상승에 따른 가처분 소득 감소에서 비롯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11차례에 걸친 회의를 거쳐 얼마나 고통을 덜어줬는지 의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정부가 2차 추경에서 올해 초과세수 예상액을 모두 ‘가불지출’해버려, 쓸 수 있는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맨입’으로 때웠다.
민생회의에서 다루진 않았지만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한 것은 가계와 기업의 부담을 덜어줬다. 그 결과 한국전력이 올해 30조원에 이르는 적자를 낸다. 한전은 한전채를 대거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스텔스 추경’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 영향으로 회사채 금리가 급등해 사기업의 자금 조달에는 비상이 걸렸다.
민생을 챙길 핵심 수단은 재정이다. 예산이다. 그런데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위해 ‘내년에는 덜 쓰겠다’고만 한다. 그러면서 ‘부자 감세’에 매진하고 있다. 5년간 28조원의 법인세를 깎고, 8조원의 종합부동산세를 깎는 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냈다. 법인세는 중소·중견 기업에도 깎는다지만 전체 감세분의 3분의 2는 100개 안팎의 대기업 몫이다. 기업 상속과세 완화, 대주주 주식 양도차익과세 대상 축소도 같은 성격의 감세다. 서민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감세는 ‘부자 감세’에 대한 비판을 완화시키기 위한 ‘개평’ 성격이 짙다.
고물가, 고금리에 이어 민생에 위협이 될 것은 경기 후퇴에 따른 ‘고용 불안’일 것이다. 그런데 맨입으로 때우는 비상경제민생회의를 더 연다고 정부가 어떤 희망을 줄 것 같지 않다. 11차 회의 뒤 3주가 지났다. 새 의제를 찾기도 벅찰 텐데, 이제 그만한다고 해도 비판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양두구육’인 회의 이름이라도 바꾸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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