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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재난을 대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이중잣대

등록 2022-11-10 18:25수정 2022-11-10 19:12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재난안전관리체계 점검 및 제도 개선책 논의를 위해 열린 국가안전시스템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재난안전관리체계 점검 및 제도 개선책 논의를 위해 열린 국가안전시스템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세상읽기]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현장에 나가 있었잖아!”

반말로 윽박지르는 이 한마디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 인식의 실체다. 지난 7일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경찰을 향해 “(참사 조짐에도)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냐”고 질타했다. 이날 윤 대통령의 발언을 해석하면 이태원 참사는 재난안전 관련 시스템이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윤 대통령은 참사 직전 11건에 이르는 112 신고에 대한 대응도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참사 이유는 단순하고 명쾌했다. 참사가 일어난 날 이태원 현장에 나가 있었던 경찰관 137명이 인파 관리와 교통정리 등 예방조치를 하지 않은 것, 즉 현장의 문제일 뿐이라는 얘기다.

이 발언만 보면 참사 전후에 드러난 부정확한 정보관리와 기동대 지원 실패, 느려터지고 무능한 지휘체계, 고장 난 재난경보 시스템, “매뉴얼에 없다”던 무책임한 고위직 등은 문제가 아니다. 회의에서 과연 전문가와 언론이 지적한 문제점들이 제대로 논의됐는지도 의문이다. 이번 참사가 “제도와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대통령의 진단은 “막연한 이유로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는 뜻밖의 결론으로 이어졌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을 “문책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참사를 보는 세간의 인식과 동떨어진 발언을 하는 윤 대통령은 참사 전후 사정을 제대로 살펴보기라도 한 걸까. 경찰 137명이 현장에 있었다고 하지만 52명이 외사과와 형사과 소속으로 마약 단속이 주 임무였다. 인파가 많아서 아예 현장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참사 순간까지 이태원파출소에서 대기만 한 인원들이다. 용산경찰서로부터 지원받은 교통기동대 20명은 최초 112 신고가 있은 지 3시간 정도 지나고 밤 9시30분께 현장에 도착했다. 이태원파출소는 저녁 7시께 많은 인파로 인한 위험을 인식하고 기동대를 보내달라고 용산서에 요청했지만, 집회 경비 때문에 바쁘다는 이유로 집회가 끝나고 저녁식사를 한 뒤에야 기동대가 왔다. 축제 나흘 전 기동대를 지원해달라고 용산서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이태원파출소 소속 경찰관 32명은 각종 신고와 교통정리 등에 투입돼 이미 한계 상황에 내몰려 있었다. 서울경찰청 112상황실은 참사 4시간 전부터 신고를 받고도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 경찰청장은 상황 통제는커녕 캠핑장에서 잠자고 있었다. 용산경찰서 교통과는 대통령 사저 경비를 이유로 기동대를 보내지 않았다고도 했다. 상급기관과 책임자들이 현장의 지원 요청을 거절하거나 미루는 일이 차곡차곡 쌓이다가 결국 파국이 왔다.

이런 일련의 상황에 대한 입체적이고 포괄적인 이해는커녕, 참사가 난 지 일주일도 더 지나 “현장의 문제”라고 간편하게 정리해버리는 윤 대통령의 인식은 매우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무책임의 표본이라 할 행안부 장관과 경찰청장에게야 이 이상 더 바랄 게 없다. 그러면 국가안전시스템 점검이라는 명칭이 붙여진 회의는 왜 한 것인가.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의 재난에 대비해서 회의한 것이라는 마무리 발언으로 정리해버렸다. 윤 대통령의 발언에서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아무런 진정성도, 성찰의 자세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식이라면 여태껏 대통령이 말한 자유는 압사당할 자유, 존중받지 못할 자유, 책임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고 무엇인가.

2년 전 서해에서 공무원이 피격되는 동안 “문재인 대통령은 뭐 했냐”고 윽박지르는 이 정권은 자유와 인권, 법치를 앞세워 국민을 구하겠다고 했다. 규범의 진공 상태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없었던 사건을 두고서는 “책임지라”고 말하던 정권이 이번 참사에서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말한다. 책임지지도 않으면서 책임을 지는 자리에 계속 남아 있겠다는 고위직들의 뻔뻔함을 용인하고 우리가 무슨 안전사회를 구현하겠는가. 남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이런 이중잣대는 이번 참사의 진정한 배후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 큰 참사의 예고편이기도 하다. 그나마 회의의 한가지 성과라면 윤 대통령이 “앞으로 대통령이 재난안전의 컨트롤타워”라고 인정한 데 있다. 여름의 폭우 사태, 카카오톡 먹통 사태, 이번 이태원 참사를 겪고 나서야 그 당연한 말을 하고 나섰지만 조금은 다행스러운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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