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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태원, 그 고통의 신정론과 애도의 정치

등록 2022-11-08 18:47수정 2022-11-08 19:24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을 찾은 추모객들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을 찾은 추모객들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세상읽기] 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인간이 단지 불행을 괴로워하거나 행복을 기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누가, 왜 행복을 향유할 정당한 자격을 갖고 있으며, 또한 고통의 이유와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을 구한다는 점을 깊이 성찰했다. 베버는 이러한 “행복과 고통의 신정론(神正論·Theodizee)”을 <경제와 사회> <종교사회학 논총> 등 여러 대작에서 다루며 종교와 문명의 심층을 이해하려 했다.

베버는 이러한 물음이 “인간 존재의 거대한 필요”이며, 그래서 지배계급과 하층계급은 제각기 행복과 고난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문화체계를 발전시켜왔다고 보았다. 나아가 사회학자 라인하르트 벤딕스가 <왕이냐 민중이냐>에서 통찰했듯이, 현존하는 지배질서가 민중의 행복과 불행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으로 해석되느냐에 따라 지배의 정당성이 좌우된다.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를 왕의 관점이 아니라 민중과 공동체의 관점에서 의미 있게 만든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고인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사회적 기억으로 남기는 일, 공동체가 함께 슬퍼하고 위로하는 일, 우리 사회가 무엇을 배워야 할지를 논하는 일, 이를 통해 고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는 일, 그리하여 나의 불행 역시 이 사회에서 비난받거나 버려지지 않고 고귀하게 다뤄질 것을 사회 구성원들이 경험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이번 참사의 구체적 원인과 과제는 복합적일 것이다. 이태원 지역과 핼러윈 축제의 특수성, 경찰 지휘부의 대응, 대통령 관저 이전에 따른 문제, 안전한 축제 공간의 결여 등이 얽혀 있을 것이며 각각의 경중은 앞으로 토론거리다. 하지만 지금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이 국민적 비극을 대하는 정부·여당 지도자들의 태도와 거기에 함축된 메시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 미칠 파장이다.

정부·여당의 반응은 세 단계로 변해왔다. 첫째는 사사화(私事化)와 탈정치화다. 초기에 정부 인사들은 공적 책임을 부정하고 사건을 개인 책임으로 돌리며 정치적 논의를 억압했다. 둘째는 국가화(國家化)다. 정부는 애도의 주체, 순서, 기간, 형식을 규율하며 국가 통제 아래 추모정국을 장악했다. 셋째는 재정치화(再政治化)다. 집권세력은 정부에 대한 비판을 죽음의 정치도구화로 규정하여 억압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경찰 조직을 재편하고 검찰 권력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사사화·탈정치화는 희생자들의 범죄화를 의미한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인력을 배치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는 발언,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이건 축제가 아니라 하나의 ‘현상’”일 뿐이라는 발언은 ‘통제 불가능한 군중’의 이미지를 생산했다. 김성회 전 대통령실 종교다문화비서관은 “부모도 자기 자식이 이태원 가는 것을 막지 못해 놓고 무책임”하다는 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이런 반응들은 정부와 사회가 희생자들을 돌보는 것이 불공정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국가화·재정치화는 국민적 문책 대상인 정치권력이 사법적 심문의 주체로 변신함을 뜻한다. 정부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되자, 정권은 일선 경찰과 소방관, 참사 현장에 있던 시민과 인근 상인 중 죄 있는 자를 색출하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공적 책임의 구현자로 세우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대통령과 정부는 책임을 통감하고 사죄하라’는 요구를 하면 할수록, 정권은 더욱더 성스럽게 정국을 주도할 수 있다.

사사화·탈정치화하는 힘과 국가화·정치화하는 힘이 함께 강화될 경우 매우 위험한 구도가 형성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 한편에서 참사 희생자들에게 퇴폐, 범죄, 광란의 이미지를 덮어씌우는 사회 일각의 혐오세력들이 활성화되고, 다른 편에서 집권세력이 자신에 비판적인 모든 사회적 움직임을 정쟁의 도구로 낙인찍어 억압할 때, 애도의 정치는 민주주의의 죽음으로 이를지 모른다.

민중이 만드는 고통의 신정론, 치유와 위로의 공동체가 설 곳은 없는가? 지난 주말, 녹사평역 합동분향소에 들른 뒤 참사 현장 부근 골목들을 걸었다. 분향소엔 이름도 얼굴도 없는 국화들만 놓여 있었고 그 양쪽에 윤석열 대통령, 한덕수 국무총리, 오세훈 서울시장의 큰 화환이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태원역 1번 출구는 수십m에 걸쳐 메모지와 포스트잇, 꽃과 인형, 과자, 음료, 고인의 사진들로 가득했다. 시민들이 만든 추모 공간이었다. 진정한 자유가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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