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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전할 권리는 어떻게 발견되는가

등록 2022-11-06 18:47수정 2022-11-07 02:40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참사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사고 현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참사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사고 현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류영재 | 대구지방법원 판사

공장에서 사람 손목이 잘렸다. 사람보다 큰 기계 안에 들어가 내부를 청소하다가 갑자기 작동하는 거대한 기계 날에 깊이 베였다. 기계는 왜 갑자기 작동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동료 노동자가 실수로 기계 작동 버튼을 눌렀다. 처음에는 동료의 실수로 인해 벌어진 사고임이 명백해 보여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다 법정에서 그의 반성을 들으면서 의문을 품게 되었다. 어째서 오래 일한 노동자가 그러한 실수를 하게 된 것일까. 재판을 하며 답을 찾았다. 그 공장의 기계 청소는 노동자가 기계 안에 들어가서 직접 청소를 한 뒤 기계를 가동해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기계 안에는 대형 칼날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청소 도중 기계가 작동하게 되면 노동자가 큰 부상을 입게 된다. 이런 위험 때문에 기계 작동 버튼함에 시정장치를 하여 청소를 마친 노동자가 직접 시정을 풀고 청소를 마무리한 뒤 기계를 작동하도록 하는 방안이 안전관리사항으로 권고되었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한 공장에는 이런 시정장치가 없었다. 버튼함에는 기계 여러 대의 작동 버튼이 함께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버튼들의 모양새도 비슷했다. 이런 상황에서 동료 노동자가 다른 기계를 작동시키려다가 순간적으로 버튼 위치를 착각하여 청소 중이던 기계의 작동 버튼을 눌렀고, 하필이면 작동 버튼을 누른 기계 안에는 사람이 들어가 청소 중이었다. 사정을 모두 알고 나니 고민이 되었다. 책임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버튼을 잘못 누른 동료만이 져야 할 책임인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사소한 실수가 심각한 인명피해로 이어진다면 그곳은 일단 위험한 작업장이다. 위험한 작업장이 안전한 작업장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적절한 안전관리가 필요하다. 작업 특성에 따라 특히 위험을 부르는 실수 유형이 있다면 이는 사전에 충분히 경고되어야 한다. 경고를 무시하는 노동자들은 관리·감독되어야 한다. 실수 예방 조치들도 취해져야 한다. 발생한 실수가 위험으로 이어지는 것을 차단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면 그 방법이 활용되어야 한다. 법은 노동환경을 안전하게 만들고 관리할 의무를 사업주에게 부담시킨다. 어째서 사업주들은 일터를 안전하게 만들 의무를 지는가? 노동자들에게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각종 산재 사건에서 노동자들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보장되었는지 여부는 그 사건에서 벌어진 노동자들의 실수나 잘못과 별도로 판단되어야 한다. 사고의 발생에 노동자들의 실수나 잘못이 존재했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노동자 책임으로 돌리면 노동자들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사라진다.

노동 현장을 넘어 우리가 일상을 보내는 공공장소-거리, 광장, 공원 등에선 어떨까. 헌법과 재난안전법에 의하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난 및 각종 사고로부터 사람의 생명 등을 확보하기 위하여 관할 구역 내 안전관리를 할 책임을 진다. 대법원은 사람의 생명 등에 대하여 절박하고 중대한 위험 상태가 발생할 상당한 우려가 있다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에 근거가 없더라도 그러한 위험을 배제하여야 할 의무를 갖는다고 판시하였다.

핼러윈을 맞아 좁고 경사진 골목이 가득한 이태원에 수많은 사람이 모였다가 바로 그 좁고 경사진 골목에서 밀고 밀려 압사당했다. 비극이 발생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규명되진 않았다. 원인에는 그 골목에 있던 누군가의 실수 또는 잘못도 포함될 수 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밀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병목현상이 나타났음에도 사람들은 그 골목에 계속 진입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누구를 밀었다거나 사람 많은 곳으로 사람들이 진입했다는 이유만으로 하룻밤 새 그 골목에 있던 300여명의 사람이 죽고 다쳤다면, 그날 밤 그 골목은 이미 위험한 장소였다고 봐야 한다. 그날 밤 그 골목은 왜 위험한 장소가 되었는가. 위험한 장소를 안전한 장소로 바꾸기 위해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어떠한 책임과 의무를 져야 하는가. 여기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야 ‘안전할 권리’가 발견된다. 안전할 권리가 보장되었는지 여부는 위험한 골목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실수나 잘못과는 별도로 밝혀져야 한다. 이와 달리 수많은 우주들이 동시에 사라진 비극을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탓으로 돌릴 때 우리와 다음 세대 모두의 안전할 권리는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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