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팬커뮤니티 위버스에서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진이 솔로곡 ‘디 애스트로넛’ 발매를 기념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김상균의 메타버스] 김상균 | 인지과학자·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누군가가 4만년 전 동굴 속에서 그린 벽화. 필자는 이를 인류 최초의 미디어라 짐작한다. 시간과 함께 사라질 이야기를 벽에 그려서 다른 이에게 전하고 싶었을 테다. 파피루스가 발명되고, 인류는 이야기를 종이에 기록해서 멀리 있는 이에게 전하게 됐다. 벽화와 파피루스를 통해 인류는 시간과 거리의 한계를 넘어 이야기를 퍼트린 셈이다. 신문을 통해 여러 사람에게 이야기가 퍼지는 길이 열렸고,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이런 작업에 시간의 현재성을 부여해줬다.
벽화, 파피루스,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이 모두는 미디어다. 사람들끼리 서로 경험과 생각을 공유해 인식을 형성하는 도구인 미디어는 이천년대에 들어서 인터넷으로 확장됐다. 수만명 팔로어를 보유한 블로거, 구독자 백만명이 넘는 유튜버의 영향력은 어지간한 언론미디어의 영향력에 맞먹고 있다. “교수님, 제 채널을 계속 운영하는 게 좋을까요?” 최근 필자와 만난 유명 유튜버 몇몇이 공통으로 해온 질문이다. 이 질문에는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미디어의 영향력이 머지않아 흔들리리라는 위기감이 담겨있다. 특히, 이들은 메타버스를 통해 미디어가 어떻게 진화할지 궁금해한다.
필자는 실존성, 관계성, 주도성 세가지 특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미디어가 진화하리라 바라본다. 첫째, 실존성은 글이나 영상을 통해 전달하는 내용의 물리적 실재감을 높이는 접근을 뜻한다. 대만의 싱잉 첸 감독은 1950년대를 배경으로 대만의 백색테러 시기를 다룬 작품인 ‘떠나지 못한 남자’를 가상현실 형태의 극으로 제작했다. 올해 9월에 열렸던 ‘베니스 이머시브 2022’에 출품됐던 작품으로, 백색테러 당시 감옥에 수감됐던 반체제 인사들의 경험을 메타버스 형태로 구현했다. 관객 입장에서는 글이나 기존 영상을 접할 때와 비교해 더욱더 높은 몰입감을 느끼며 1950년대 백색테러 시기를 경험하게 된다. 환경, 폭력, 양극화 등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중요한 주제를 놓고 메타버스를 통해 실존성을 높이는 시도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둘째,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이 함께 참여해서 이야기를 완성하는 관계성이 증가하는 방향이다. 비티에스(BTS) 소속사인 하이브는 자회사인 위버스컴퍼니를 통해 위버스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하이브 이외 기업에 소속된 아티스트들도 위버스를 통해 팬들과 만나고 있다. 아티스트가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거나 실시간 공연을 플랫폼 안에서 진행한다. 위버스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 등을 포함해 10개 언어를 자동으로 번역해서 보여준다. 이를 통해 다른 언어권에 있는 팬들이 서로 소통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위버스를 통해 아티스트와 팬들의 관계도 강화됐지만, 팬들 간 소통 과정에서 더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셋째, 결정된 내용을 소비하는 모습에서 그치지 않고, 소비자가 주도적으로 판단하며 미디어를 경험한다. 올해 7월 걸그룹 블랙핑크는 펍지가 개발한 배틀그라운드 속에서 콘서트를 개최했다. 관객은 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며 공연을 즐겼다. 경험의 과정을 스스로 결정하는 주도성이 기존 방식보다 크게 증가한 셈이다. 올해 4월 필자는 ‘웰컴 투 레스피트’라는 공연을 가상현실 기기를 착용하고 관람했다. 공연 중 필자는 무대의 여러 공간을 돌아다니고, 소품을 만져보기도 했으며, 듣기 거북한 이야기가 나올 때는 무대 속 다른 방에 숨기도 했다.
이 세 방향의 중심에는 공간성이 있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와 듣는 이가 한 공간에서 수평적으로 공존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어찌 보면, 이런 방향성은 우리를 동굴 벽화가 등장했던 시기로 데려가는 듯하다. 실제로는 멀리 떨어져서 다른 시간대를 사는 존재지만, 동굴 속에서 함께 얘기 나누던 모습처럼 메타버스 속에서 함께 경험과 생각을 나누라는 의미이다. 미디어가 메타버스를 통해 공간을 향하는 목적은 결국 미디어의 본질로 돌아가는 데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