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31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방문, 조문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곽정수 |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이태원에서 안타까운 참사가 일어난 지 나흘째. 채 피지도 못한 채 떨어진 156송이의 꽃봉오리들을 기리기 위한 추모의 물결이 전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가애도기간 중에는 추모에 집중하는 것이 도리다. 하지만 그럴 수만은 없는 일이 또 터졌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이어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책임 회피성 발언으로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친일 망언에 이어 이번에도 ‘그놈의 입’이 사고를 쳤다. 정권 자체가 지지율을 깎아 먹는 최대 위험요인이다.
경제 분야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윤석열 정부의 무능과 정책 오류가 국가 경제를 위협하는 이른바 ‘윤석열 리스크’가 심각하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는 10월24일,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서비스 먹통 사태와 관련해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이용자들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기업의 사과로 끝날 일인지는 의문이다. 정부도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책임이 크다.
윤 정부가 그동안 플랫폼의 독과점 심화에 따른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무시한 채 친기업과 규제완화를 앞세워 ‘최소·자율 규제’ 원칙을 고집한 것은 모두가 아는 일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빅테크의 독점을 규제할 법안들을 마련하는 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래 놓고 윤 대통령은 10월17일 “독과점이 심한 상태에서 시장이 왜곡되거나 국가 기간 인프라에 문제가 발생하면 당연히 국가가 필요한 대응을 해야 한다”며 규제 강화를 지시했다. 자신의 정책 오류를 감추려는 ‘눈 가리고 아웅 식’ 대응이 아닐 수 없다.
에스피씨(SPC)그룹 계열의 빵 재료 제조업체에서 20대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참혹하게 숨진 사건이 발생한 뒤 불매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허영인 에스피씨 회장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사고 8일 만에 다른 계열사에서 끼임 사고로 노동자의 손가락이 절단되는 일이 또 발생했다. 최악의 산재 국가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올해 1월 말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산재 사고는 지난해와 별 차이가 없다. 9월 말까지 중대재해사건 사망자는 446명에 이른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해당 법에 대해 “기업인 경영 의지를 위축시키는 메시지를 준다”는 왜곡된 인식을 보여줬다. 지금도 중대재해처벌법 처벌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31일 리시 수낵 신임 총리가 500억파운드 규모의 증세를 검토하는 등 시장 신뢰 회복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전임 리즈 트러스 총리는 잘못된 부자감세로 파운드화 폭락 사태를 부른 뒤 44일 만에 물러났다. 많은 경제전문가는 윤 정부도 부자감세를 철회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와 낙수효과가 끊긴 상황에서는 부자감세로 인한 투자·고용 증가 효과가 거의 없고, 세수 감소로 인해 재정 건전성만 해칠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정부는 “한국은 영국과 다르다”며 옹고집을 부린다.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경솔한 결정이 낳은 ‘레고랜드 사태’는 경제에 어두운 정치인의 무지와 무능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다. 강원중도개발공사의 2050억원 규모 자산유동화기업어음의 채무보증을 철회하는 ‘도박’은 가뜩이나 얼어붙은 자본시장을 아예 마비시켰다. 급기야 정부가 ‘50조원+알파’를 푸는 등 긴급조처를 했는데도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플랫폼 규제 공백,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시도, 무리한 부자감세, 레고랜드 참사는 윤 정부의 ‘무능 리스크’를 보여주는 수많은 사례 중 일부에 불과하다. 보수진영은 문재인 정부가 무능하다고 집요하게 공격했다. 하지만 윤 정부의 무능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더욱이 윤 정부는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잘못된 정책을 그대로 고수하는 무지와 아집까지 보여준다.
한국 경제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속에 경기침체 우려가 겹치고, 금융시장마저 마비되는 복합위기를 맞고 있다. ‘윤석열의 무능 리스크’를 계속 감당할 여유가 있는지 의문이다. 오죽하면 보수언론조차 “위기 대응에 사령탑이 보이지 않는다”고 질책하겠는가?
서울 도심에서 주말마다 윤석열 퇴진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제 출범 5개월밖에 안 된 대통령에게 할 소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남은 4년 반의 임기도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감이 너무 큰 것 같다. 윤석열의 ‘무능 리스크’를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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