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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신뢰란 무엇인가? [열린편집위원의 눈]

등록 2022-10-27 18:34수정 2023-09-21 18:11

조사에 참여한 46개국에서 뉴스를 회피하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정치/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주제를 너무 많이 다룬다’(43%)였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뉴스를 신뢰할 수 없거나 편향적이다’(42%)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 이런 현실에서 언론이 독자와 관계에서 신뢰를 쌓아가기란 쉽지 않다.
<한겨레 신뢰보고서 2022> 표지.
<한겨레 신뢰보고서 2022> 표지.

김영주
|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장

몇년 전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는 신문 칼럼이 화제가 됐다. 그 이후 ‘○○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들이 여기저기서 많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너무 당연해서 묻지 않고 넘어갔던 많은 문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 그리고 나도 오늘 질문 하나를 던져보려 한다. 신뢰란 무엇인가?

한겨레가 우리나라 언론사 가운데 최초로 신뢰보고서를 냈다. <한겨레 신뢰보고서 2022>에서 박재영 <한겨레> 저널리즘책무위원회 위원장은 오락의 시대에 품위를 전략으로 내걸어 성공한 미국의 신문이 나왔듯이, 불신의 시대에 신뢰를 전략으로 성공한 신문이 한국에서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썼다. 그렇다면 언론의 신뢰는 어디에서 오는가? 보고서는 여러 학자의 글을 빌려 사실과 의견의 분리, 주관과 객관의 구분, 취재원 실명 보도, 엄정한 사실 검증, 시민에 헌신하는 보도, 투명한 취재 방법 공개, 적극적인 정정 보도 등을 신뢰를 얻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자 원칙으로 설명한다.

이런 원칙들을 지켜나가려는 노력 자체가 저널리즘의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겠지만, 이 과정이 신뢰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아닌 것 같다. 신뢰를 뜻하는 영어 단어 ‘Trust’(트러스트)는 ‘편안함’을 의미하는 독일어 ‘Trost’(트로스트)에서 왔다고 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믿게 되면 그와의 관계가 편해지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믿고 의지하는 데서 나오는 ‘관계의 편안함’을 신뢰의 또 다른 정의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언론이 우리 마음과 삶을 편안하게 해줄 경지에 이를 정도로 ‘신뢰’를 쌓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해마다 수행하는 ‘언론수용자조사’에는 사회 전반에 대한 신뢰와 몇개 직업군에 대한 신뢰를 조사하는 문항이 있다. 2021년 조사에서 가장 신뢰도가 높게 나온 직업은 의료인이었다(5점 척도에서 3.61점, 5점에 가까울수록 신뢰도가 높다는 의미). 그다음은 교육자였다(3.41점). 조사에 포함된 10개 직업 가운데 신뢰도가 가장 낮은 직업은 정치인이었다(2.40). 언론인에 대한 신뢰도는 10개 직업 중 3.04점으로 5위였다. 신뢰도를 측정하는 정교한 조사는 아니었으나 정치인의 신뢰도가 가장 낮게 나온 것을 보면 현실을 반영한 상식적인 결과로 보인다. 물론 정치인에 대한 신뢰보다 언론인에 대한 신뢰가 높다고 해서 고무적인 것은 아니다. 언론인에 대한 신뢰도는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신뢰도(3.23점)에 못 미쳤다.

영국 로이터연구소의 <디지털뉴스 리포트 2022>에 따르면 올해 전세계적으로 뉴스 회피 현상이 과거보다 심각해졌다. 언론재단의 분석 결과를 보면, 시민들의 뉴스 회피 이유가 흥미롭다. 조사에 참여한 46개국에서 뉴스를 회피하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정치/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주제를 너무 많이 다룬다”(43%)였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뉴스를 신뢰할 수 없거나 편향적이다”(42%)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언론이 편향적이어서 독자들이 편향적으로 뉴스를 소비하는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독자들이 편향적인 뉴스 이용 행태에 언론이 따라가는 것인지 선후·인과 관계를 밝히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현실에서 언론이 독자와의 관계에서 신뢰를 쌓아가기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한겨레 신뢰보고서 2022>에는 ‘독자 소통을 통한 신뢰 회복 노력’이 담겨 있다. 그 첫번째는 ‘고침과 사과 보도의 확대’다. 틀린 것을 바로잡고 잘못한 일을 사과하는 것은 언론의 기본이다. 기본으로 돌아가려는 한겨레의 노력이 반갑고 고맙다. 그 기본을 우리는 저널리즘의 원칙이라고도 부른다. 이제 그 원칙의 중심에 ‘독자’가 서 있길 바란다. 한겨레에는 ‘세상을 바꾸는 벗’이라는 이름의 후원 독자들이 있다. 벗이란 편안하고 믿을 수 있는 존재다. 그래서 든든한 존재다. 한겨레의 신뢰보고서는 우리 사회의 ‘든든한 벗’이 되기 위한 한겨레의 새로운 시도라고 생각한다. 내년에는 한겨레뿐 아니라 다른 많은 언론사의 신뢰보고서도 만나보고 싶다.

*‘열린편집위원의 눈’은 8명 열린편집위원들이 번갈아 쓰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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