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전 중국 베이징 시내의 고가도로 ‘쓰퉁차오’에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을 반대하는 돌발 시위가 발생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세상읽기] 조문영 |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지난 10월13일, 지인이 단톡방에 공유한 사진에 깜짝 놀랐다. 한 시민이 베이징 고가도로에 두장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한 현수막엔 ‘피시아르(PCR) 검사 대신 밥을, 봉쇄 대신 자유를, 거짓말 대신 존엄을, 문혁(문화대혁명) 대신 개혁을, 영수(우두머리) 대신 투표를, 노예 대신 공민(公民)을’이란 요구가, 다른 현수막엔 ‘독재자 시진핑을 파면하라’는 구호가 붉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현수막이 걸린 도로는 베이징에 체류했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유명 대학가 부근에 있었다.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를 불과 사흘 앞두고 벌어진 사건이다.
행인들의 시선을 붙잡은 현수막,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온 반시진핑 구호, 기습시위를 감행한 시민, 이 풍경을 재빨리 담아낸 동료 시민의 사진과 영상 모두 중국 당국의 삼엄한 통제 아래 재빨리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국내외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대로, 20차 당대회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공산당 총서기직 3연임을 확정했다. 개혁개방 이후 견고하게 자리잡은 듯 보였던 집단지도체제마저 사실상 무너졌다. 하지만 반시진핑 시위는 여전히 불씨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 대도시에서 감시카메라(CCTV)가 미처 닿지 못한 화장실, 보도블록, 공공장소 벽에 ‘독재 반대’,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시위를 상징하는 ‘8964’, ‘창장(長江)과 황허(黃河)는 거꾸로 흐를 수 없다’ 같은 글귀가 거친 낙서로, 전단으로 산발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시 주석을 직접 겨냥한 시민 저항이 서구 사회는 물론 홍콩과 국내 대학가에도 반향을 일으키고 있지만, 국내 학계나 정치권의 반응은 잠잠한 편이다. 경제대국인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실리적 명분 때문만은 아니다. 보수든 진보든 중국의 현안을 국제관계나 이념지형을 축으로 분석하는 사람들은 사건 당사자인 개인을 ‘국민’으로, ‘국가’로 쉽게 치환하는 경향이 있다. 신장지역 인권 침해든 홍콩 민주화 시위든 모두 장기판의 말처럼 취급하면서, 국익을 위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 게 합당한지, 민주·인권·자유 등 ‘서구’ 가치를 보편성으로 둔갑시킨 문화제국주의의 역사에서 어떤 관점을 취해야 할지 되묻는다. 영국 국기를 들고 시위에 참여한 홍콩시민의 ‘식민성’은 그가 경찰한테 무방비로 두들겨 맞은 일보다 더 중차대한 정치적·학술적 사안이 된다.
근현대 역사를 지배한 서구의 패권주의가 미-중 대립과 한반도·대만 위기를 더욱 부추긴다는 점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서구식 자유주의의 허상을 비판한다고 해서 자유주의를 추종하지 않는 국가가 인간 생명에 가하는 폭력까지 묵인해선 안 된다. 생명의 존엄이 사라진 ‘반서방’ 연대에선 히잡을 거부하며 선택의 자유를 외치는 이란 여성도, 영국의 중국영사관 앞에서 시진핑 주석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구타당한 홍콩 출신 시위자도 ‘서구에 물든 한줌 매국노’일 뿐이다.
금세 체포될 걸 알면서도 반시진핑 현수막을 내건 시민, 중국 전역을 뒤덮은 시시티브이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가며 낙서로, 전단으로 연대에 동참한 시민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들의 절박함을 온전히 헤아릴 자신은 없지만, 나는 혼자 죽은 쪽방 주민의 방에 끈질기게 남아서 빈곤의 참상을 고발하는 구더기를 별안간 떠올렸다. 구더기는 “몸을 감출 구석을 찾아 필사적으로 기었다. 그 남자와, 그 방과, 그 건물과, 그 사람들의 이야기도 차가운 방바닥과, 습한 벽과, 낡은 계단과, (강제철거) 사태 사이를 기어다니며 소리 없이 우글거렸다.”(이문영, <노랑의 미로>)
중국에서 현수막 사건이 발생한 그주 토요일 나는 빈곤철폐의 날 집회에 참여했다. 베이징은 집회는커녕 낙서도 불허하는데, 주말 서울 도심은 거리마다 사람, 노래, 구호, 유인물, 깃발이 넘쳐난다. 그날 오후, 내가 참여한 행사 말고도 ‘주한미군 철군 촉구 집회’ ‘4·15 부정선거 원천무효 및 코로나 대국민 사기극 규탄 범국민대회’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 집회’ ‘코로나 백신 희생자 추모 집회 및 행진’ ‘김건희 특검·윤석열 퇴진 10차 촛불대행진’ 등이 광화문·시청 일대에서 열렸다. 광장의 열기가 혼란스럽게 달아오를수록 베이징 고가도로 위에서 홀로 현수막을 걸던 그 시민이 생각났다. 그가 바란 자유란 이런 풍경일까? 차도를 따라 행진하는 나는 그처럼 간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