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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보살피다’와 ‘케어하다’

등록 2022-10-20 18:03수정 2022-10-21 02:38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세상읽기] 안희경 | 재미 저널리스트

나는 ‘보살피다’라는 말이 애틋하다. 5년 전부터였던 것 같다. 집안일을 할 때마다 한국 방송을 틀어 놓았다. 주로 예능프로그램을 보며 손발을 움직였다. ‘케어’(care)라는 말이 유독 자주 들렸다. 케어한다, 케어하지 못해서, 케어를 위해…. 마치 어간이 케어인 기본형 동사 ‘케어하다’가 우리말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뉴스에도 나온다. ‘보살피다’라는 말은 좀체 들리지 않는다. ‘돌보다’, ‘살피다’ 역시 드물어졌다. 이 현상이 너무나도 아쉽다.

외국살이 20년이라 시대를 비추는 말의 변화를 못 좇아서 어깃장을 놓는 것은 결코 아니다. 처음 미국에 와서 영어 단어를 무진장 많이 외워야 할 때는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새로운 말을 굳이 한자어로 만드는 대신에 영어를 그대로 썼다면 이런 노력은 하지 않아도 됐을 거라 생각했다. 초음파도 울트라사운드라고 썼다면 수월했겠다 싶었다. 그러나 서울 시내 번듯한 건물에서 직장인들이 우리말처럼 쓰던 영어 단어들은 실제 미국 생활에서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백미러를 리어 미러(rear mirror)라고 해야만 알아듣듯이 온통 상황과 함께 외워야 할 용례뿐이었다. 요즘 한국 방송에 많이 나오는 ‘힙(hip)하다’는 말도 미국에서는 1990년대에 청년문화를 누리던 40~50대들이나 쓰는 옛말로 통한다.

말은 그런 것 같다. 상황과 상태를 미묘한 차이로 구별 짓는다. 이해의 농도를 만든다. 그래서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 속에서 익힐 때 단어가 품고 있는 결이 상황과 함께 배어들듯 자리한다. 내가 아까워하는 것이 바로 이 ‘결’이다. 오래 묵은 우리말이 불러오는, 내 안에 자리한 여러 장면을 연결하며 일으키는 상념 말이다. ‘보살피다’는 나를 곁에서 챙겨주시던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어릴 적 배 아프다고 하면 아버지는 뜨끈한 손으로 내 배를 둥글게 문지르셨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술 한사발 받아먹고 밤늦게 들어와 속을 게워내던 딸 손을 주물러주던 아버지의 복잡한 자애로움도 따라 일어난다. 아픈 배를 문지르던 보살핌은 대를 물려 나의 손을 통해 손자와 손녀의 배를 훑었고, 다 자란 아이들은 이제 스스로 배를 문지른다. 케어한다로는 담기지 않는 켜켜이 쌓인 정감이다.

우리의 말은 단순히 한국어라기보다 개인이 하는 각자의 말이 모인 조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삶 속의 사건들과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이 살아온 시간이 그 말 속에서 연결된다. 신문 기사나 책을 쓰면서부터 사전을 찾는 습관을 들였다. 워낙 맞춤법에 젬병이라서 거쳐야 했던 과정이기도 한데, 초창기 3년은 검색할 때마다 ‘북한어’라는 설명이 자주 나왔다. 다음으로 충청도 방언, 경상도 방언 순이었다. 부모님은 실향민으로 아버지는 황해도 사리원 출신이고, 어머니는 함경남도 원산 출신이다. 두 분은 내가 여섯살 때까지, 충청도에서 십수년을 사셨다. 우리 집에서 4년을 함께 산 친척처럼 가까운 분의 고향은 경상도다. 사전으로 만난 내 뿌리였다. 나의 관계 속에서 자란 나의 언어들이다.

말은 변한다. 새 말이 힘을 얻고 묵은 말이 물러난다. 그 시대 사람들이 쓰는 말이 사전을 이루고 있다. <조선말 큰사전>을 편찬한 조선어사전편찬회도 방학 때 고향 집으로 가는 학생들에게 의뢰해서 방언을 캐어 모았다고 밝혔다. 수집한 것이다. 지금 표준국어대사전에 ‘어필’을 검색하면 영어와 함께 ‘흥미를 불러일으키거나 마음을 끎’이라는 설명이 나오고, 또 다른 동음이의어로 ‘임금이 손수 쓴 글씨’라는 ‘御筆’(어필)이 나온다. 급속히 바뀌는 세태 속에서 오랜 시간 수많은 사람의 사연을 켜켜이 채우던 묵은 말들이 점점 더 성긴 실타래처럼 풀어지고 있다.

어릴 적에 텔레비전에서 숱하게 틀어줬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는 천둥 번개가 치자 무서워하는 아이들을 한방에 모아 놓고 주인공 마리아가 좋아하는 말을 생각해보자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들 입에서 몇몇 단어가 튀어나왔는데, 그중 ‘발뒤꿈치’라는 단어가 마음에 꽂혔다. 알사탕처럼 자주 입속에서 굴리곤 했다. 20년 뒤 백일 된 아가의 복숭앗빛 발을 보며 ‘발뒤꿈치는 소리만큼 아름답구나!’ 탄복했다. 발뒤꿈치만은 ‘엘보’(elbow)에 밀려나고 있는 팔꿈치처럼, 케어에 밀린 보살핌처럼 되지 않도록 여럿이 기세를 지켜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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