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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허수아비 때리는 ‘한동훈 스피치’ [아침햇발]

등록 2022-10-18 15:12수정 2022-10-20 11:05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박용현 | 논설위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어록’을 모은 <한동훈 스피치>라는 책이 출간될 예정이라는 뉴스를 봤다. 한 장관의 언변이 꽤나 인기를 끄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의 말에선 종종 논리적 함정과 억지가 발견되곤 한다. 몇 가지만 짚어보려 한다.

“할 일 제대로 하는 검찰을 두려워할 사람은 오직 범죄자뿐이다.”
한 장관이 검찰 수사권 축소 법안을 비판하며 한 말이다. 장관 취임사에서도 반복했다. 표면상 흠잡을 데 없다. 하지만 함정이 있다. ‘검찰이 할 일을 제대로 한다’는 것을 당연하다는 듯 전제로 삼고 있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간첩으로 조작됐던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가 무죄를 선고받은 뒤 검찰이 그를 추가로 ‘보복 기소’까지 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이례적으로 ‘공소권 남용’이라고 명시한 판결을 내렸다.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인정해 공소를 기각한 첫 대법원 판결이다. 그러나 한 장관은 하급심인 1심에서는 유죄 판결이 났었다는 점 등을 들어 보복 기소한 검사에 대한 징계까지는 필요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법무부 장관이 대법원 판결을 이렇게 가볍게 취급하는 것부터가 심각한 문제다. 한 장관은 국회 답변에서 이런 말도 했다.

“그 사건(유우성씨 사건)은 제가 잘 모르는 사건이다.”
(온국민이 아는 사실이라는 지적을 받자) “모른다고 한 것은 제가 직접 (수사)했거나 당했거나 할 정도로 팩트에 대해 확실히 아는 게 아니라는 뜻으로 한 말이다.”
일선에서 자신의 업무만 담당하는 검사라면 모를까, 검찰 사무 전체를 관장하는 법무부 장관이 이렇게 중대한 사건을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서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공적 사안에 대한 토론을 회피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법무부 장관이 범인 조작과 보복 기소라는 중차대한 사건에 이처럼 무관심하거나 관대한 태도를 보인다면 같은 일이 언제 또 벌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를 해소할 수 없다. 무고한 사람들도 검찰을 두려워해야 하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하기야 간첩 조작 사건 담당 검사가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에 임명되고, 보복 기소의 지휘 라인에 있던 이가 검찰총장 후보군에 오르는 세상이다.

술접대 검사 사건은 또 어떤가. 검사들이 라임 사태와 같은 대형 금융범죄의 핵심인물로부터 호화 향응을 받고, 문제가 불거지자 휴대전화를 일제히 폐기하고, ‘96만원 불기소’와 ‘94만원 무죄’가 이어지는 것을 보며 국민들은 조롱을 날렸지만, 마음 한켠으로는 사건을 마음껏 주무르는 검찰의 힘에 두려움도 느꼈을 법하다. 역으로, 검찰이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을 두려워할 사람 중에는 그동안 ‘감싸기’ 혜택을 입어온 ‘제 식구들’도 포함되지 않을까 싶다.

할 일 제대로 하는 검사들을 방해하기 위해 검찰개혁을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검찰권 제한과 견제에 대한 요구는 검찰이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일하지 않는 폐해가 누적된 데서 비롯됐다. 검찰권을 발판 삼아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한 뒤 검찰권의 편향적 행사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졌다. 한 장관은 이런 논점에는 눈감은 채 “할 일 제대로 하는 검찰을 두려워할 사람은 범죄자뿐”이라는 엉뚱한 반박을 한 셈이다. 상대방의 논점을 왜곡한 뒤 공격하는 수법인 ‘허수아비 때리기’(Straw Man Fallacy)와 닮았다. 논리학에서 말하는 대표적 오류 중 하나다.

“김건희 여사 사건에 대해서만 수사지휘를 하라는 것은 너무 정파적인 접근 같다. 그렇게 따지면 이재명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수사)지휘해도 되겠나.”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라는 요구를 반박하며 한 말이다. 이 역시 말인즉슨 옳다. 특단의 사정(예를 들어 검찰총장과 이해관계가 있는 사건)이 없는 한, 구체적 사건에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는 것은 검찰의 독립성과 배치된다. 그런데 한 장관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김 여사 주가조작 의혹 수사와 관련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지휘라인에서 배제시킨 것을 ‘원상회복’하는 수사지휘조차 거부하고 있다. 이는 장관이 수사 내용에 개입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수사지휘로, 오히려 검찰의 독립성을 되돌려주는 셈이다. ‘이재명 사건’을 이렇게 저렇게 수사하라고 지시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렇게 내용상 정반대 성격의 ‘수사지휘’를 이름이 같다는 표면상 이유로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인 ‘잘못된 유비’(False Analogy)의 한 사례다.

“(검사의 수사개시) 영역을 2대 범죄로 더욱 제한하는 취지의 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예시로 규정된 부패범죄, 경제범죄 외에, ‘중요 범죄’가 수사개시 범위에 포함된다는 점이 법문언상 명백하다.”
전자는 검찰 수사권을 축소한 법의 위헌성을 주장하며 법무부가 헌법재판소에 낸 입장이고, 후자는 법무부가 이 법에도 불구하고 시행령을 통해 수사 범위를 늘리면서 밝힌 입장이다. 해당 법이 검사의 수사개시 범위를 2대 범죄(부패범죄·경제범죄)로 ‘제한했다’와 ‘하지 않았다’는 상반된 주장을 법무부가 한 입으로 하고 있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를 두고 “법에 대한 (다른) 해석론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고 비판했는데, 전문 용어를 모르더라도 누구나 뭔가 잘못됐음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A이면서 동시에 A가 아닐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확립한 고전 논리의 3대 기본원칙 중 하나인 ‘모순율’이다. 이를 어기는 주장을 접하면 딱히 반박할 방법도 찾기 힘들다.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부천국제만화축제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금상 수상작 &lt;윤석열차&gt;. 커뮤니티 갈무리
부천국제만화축제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금상 수상작 <윤석열차>. 커뮤니티 갈무리

“최강욱 의원이 저에게 말씀하시는 건 2차 가해라고 생각한다.”
“혐오와 풍자의 경계는 늘 모호하다.”
전자는 <채널에이(A)> 사건과 관련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에서 자신에게 질의를 하는 게 부당하다며 한 장관이 항의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자신이 그 사건의 피해자라는 이유에서다.(최 의원은 최근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후자는 풍자만화 <윤석열차>에 대한 한 장관의 언급이다. 한 장관은 ‘2차 가해’ ‘혐오’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언어를 법무부 장관과 대통령이라는 사회적 최강자를 옹호하는 데 동원하고 있다.

검사장이나 법무부 장관 같은 고위 공직자가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해서 스스로 ‘피해자’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민망한 일이다. 공직자에 대한 감시와 비판 과정에서 명예훼손 논란이 일어날 수는 있으나 이는 민주사회에서 고위 공직자가 감수하며 대처해야 할 몫이다. 그 자신이 권력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회구조적 차별 속에 이뤄지는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2차 가해’ 개념을 권력자가 끌어다 쓰는 것은 가당치 않다.

<윤석열차>도 마찬가지다. 유엔의 정의를 보면, ‘혐오 표현’은 특정 인종·종교·성 등의 정체성에 기반해 개인이나 집단을 공격하거나 경멸·차별하는 표현이다. 또한 이는 개인이나 사적인 집단을 대상으로 할 때 문제 되는 것이지, 국가권력이나 공직자를 향한 비판에는 아예 적용되지 않는다. <윤석열차>에 이런 의미의 혐오가 배어 있거나 이를 부추기는 요소는 전혀 들어있지 않다. 정치권력을 비판하는 풍자일 뿐이다. 혐오라는 말이 끼어들 여지조차 없다. 여기에 혐오라는 단어를 들먹이는 것 자체가 맥락에 맞지 않을뿐더러, 정당한 정치권력 비판을 매도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두 사례 모두 약자의 방패를 빼앗아 강자의 갑옷에 덧대는 꼴이다.

법을 다루는 법무부 장관의 말은 특히나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언어가 저속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권력의 최고점에 있는 이들의 격에 맞지 않는 말들로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는 게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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