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 | 가수
10월의 출발은 토~일~월 내리 사흘씩 연휴가 두번씩이나 있어서 왠지 여유로웠다. 출근길도 운전할 맛이 나고 한가로운 도심 길을 달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마구 달려보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남들이야 쉬건 놀건, 남 쉴 때 일하는 직업방송쟁이들에겐 별 해당이 안 되는 얘기이긴 하다. 그런 생활에 불만은 없지만, 어디론가 떠나는 차들로 꽉 막혀 길이 답답할 때는 차를 세우고 돌아다니며 일일이 인터뷰를 하고 싶다. 모두 다 어디로 가는 걸까? 뭘 하려고 밖으로 나와서 서는 듯 가는 듯 피곤하게 차를 몰면서 어깨와 허리, 무릎을 불편하게 만들까? 내가 묻고픈 질문은 다음과 같다.
①어디로 가셔요? ②누구와 함께 가시나요? ③목적지에 도착하면 어떻게 시간을 보내실 계획인지요? ④오늘 하루 예산은 어느 정도 잡고 가십니까? ⑤이렇게 막히는 길을 뚫고 가서 겨우 몇시간 휴식으로 스트레스가 정말 풀리십니까? 아무리 길이 막혀도 떠난다는 사실로 족하십니까? ⑥장거리 운전을 혼자 감당하십니까? 아님 일행과 교대로 하시는지? ⑦차 안에서 시장기를 달랠 간식이나 별식 준비해 가시나요? 휴게소에선 어떤 간식을 드시는지요? 목적지에 도착하면 어떤 음식을 드실 건가요? ⑧막히는 길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십니까? 끝말잇기? 속담풀이? 단어 알아맞히기? ⑨동네에 사는 곳 가까이에서 즐길 거리를 찾아보신 적은 있으셔요? 아이들은 사실 가깝거나 먼 곳이거나 별 상관 없을 텐데, 우리 동네 탐험하기는 어떠십니까?
나는 정말 정말 궁금하다. 짧은 시간이라도 아이와 눈을 맞추며 마음이 통하는 얘기를 나누는 소통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꽉 막힌 차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뻥튀기를 팔고 다니는 아저씨는 도대체 어떻게 막히는 길을 귀신처럼 알고 찾아와 장사판을 펼치는가? 드론을 띄울까? 휴일 나들이를 거의 해본 적이 없으니 더 궁금하다. 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하는 게 내 일인지라, 평소엔 가급적 사람들 몰리는 곳에 가지 않는다. 차라리 장을 봐서 국, 찌개 끓이고 나물, 밑반찬을 만들고, 저녁으로 무얼 맛나게 차릴까 궁리하는 게 즐겁다. 나이 칠십 넘어서까지 도시락 싸고, 이렇게 차려 바쳐야 하나 싶어 성가시기도 하지만 뭐 어디 아프진 않으니까(무릎이 좀 아프긴 하다) 좋아하는 메뉴로 집밥 차려 먹고, 빈둥대며 텔레비전(TV) 보는 재미도 괜찮다.
오늘은 전북 남원에 사시는 전유성 선배(나보다 세해 먼저 태어났다!)가 부쳐준 시골된장에 호박, 양파, 감자, 꽈리고추, 두부를 넣고 찌개를 끓였는데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맛났다. 거기다 알배기, 홍가자미 큰 놈으로 두마리, 무 넣고 조리고, 쑥갓, 양파, 오이 겉절이로 무치고, 파김치 해서 잘 먹은 뒤 소식 전하니 “다행이네” 짧은 답이 왔다. 그다운 답을 한 선배에게 그 된장 평생 대달라고 했다.
나는 사람 없는 이른 새벽의 목욕을 즐기는데 생방송 끝내고 일 본 뒤 집에 오니, 어느새 오후 시간이었다. 평소 오후 목욕은 내키지 않지만 이번엔 한번 해보지, 하며 길을 나섰는데, 웬걸 주차장에 차 댈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탕 안에 들어서니 샤워대 앞에 두셋씩 줄을 서 있는, 여태 살면서 처음 보는 광경! 꼭 옛날 명절 무렵의 목욕탕을 떠올리게 했다. 사람들이 사흘들이 휴일의 마지막은 목욕으로 정점을 찍나 보다. 할머니, 딸, 손녀 3대가 함께 온 가족도 있었는데, 아주 어린 손녀는 목욕통에 앉히고 할머니가 살살 씻기면 아이 엄마는 자기 어머니를 씻겨드린다. 후딱 샤워 마치고 나오니, 한쪽에서 배낭 멘 아저씨들 소대 인원 정도가 모여 나간다. 차에 싣는 짐들 꾸러미가 큼직하다. 어디들 작정하고 다녀오시나 보다.
나처럼 목욕을 즐기는 재일동포 친구가 자기는 한국 사람들이 왜 일본 온천으로 관광 가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시설도, 물도, 이렇게 좋은데, 나라 안 가까운 곳에 좋은 데를 놔두고 왜 떠나는지? 나이 들면 먼 곳으로 가는 시간도 고되기만 한데…’라며 푸념을 한 적이 있다.
제일 좋은 건 가까이에 있다.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우리나라가 최고라 한다. 얼마나 좋은 곳이 많은데 왜? 어딜 떠나? 한참을 헤맨 뒤라야 나 앉은 자리가 꽃자리라는 걸 알게 될까? (한때 찌르찌르와 미찌르로 알려지고 불렸던) 틸틸과 미틸이 찾아 나섰던 행복이란 이름의 파랑새가 생각났다. 꿈에서 깨어 엄마를 껴안을 때 “우리의 오두막집도 아름답다. 그걸 보는 마음가짐이 중요해! 늘 눈을 바로 뜨고 봐봐” 온 세상 헤매고 돌아오니, 내 집에서 기르던 잿빛 비둘기가 파랑새였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