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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의 노동요 한 곡

등록 2022-10-13 18:22수정 2022-10-14 02:36

피아니스트 이고르 레비트. 빈체로 제공
피아니스트 이고르 레비트. 빈체로 제공

[크리틱] 정영목 | 번역가·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현실에 대한 발언으로 “행동파 피아니스트”라고 일컬어지는 이고르 레비트가 내한 연주를 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의 개인적 이력에 관해 아는 게 없었지만 그래도 “행동파”라는 수식어가 뜻밖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그것은 한때 그의 연주를 나의 애청 노동요로 삼았던 경험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노동요는 요즘 흔히 이 말을 쓰는 방식대로 일하면서 듣는 음악을 가리키는데, 사실 이건 양쪽으로 실례가 될 수도 있다. 노동하는 사람 가운데는 일하면서 음악을 듣는 것이 사치인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고, 또 음악에 진심인 사람에게는 이런 식으로 음악을 배경으로 밀어버리는 게 예의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을 깔고 말하자면, 레비트가 2016년에 한꺼번에 내놓은 세 변주곡집 음반은 한동안 나의 중요한 노동요였다. 거기 담긴 곡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 그리고 생소한 미국 작곡가 프레더릭 제프스키의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였다.

그러나 이 현대 변주곡은 처음부터 익숙하게 들렸는데, 그것은 주제가 된 곡이 그 전에 나의 애청 노동요였던 이탈리아 재즈 피아니스트 조반니 미라바시의 앨범 <전진!>의 첫번째 곡이었기 때문이다. 둘의 관련을 미처 몰랐던 것은 이 음반에는 곡 제목이 내가 모르는 스페인어로 나오고 레비트의 음반에는 영어로 나왔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정보조차 파악하지 않을 만큼 대충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 발각된 셈이지만, 더 창피한 일을 자백하자면 주제가 된 노래는 이 두 곡을 듣고 나서도 한참 뒤에 들었다. 굳이 변명하자면 목소리가 나오는 곡은 노동요로 잘 듣지 않기 때문인데, 그래서 혁명과 관련된 곡을 모은 미라바시 앨범에서 그걸 들으며 원형이 투쟁가겠거니 짐작만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는 1970년에 세르히오 오르테가가 작곡하고 칠레의 누에바 칸시온(새 노래) 운동의 주축인 노래 집단 킬라파윤이 가사를 쓴 칠레 인민연합의 노래다. 이 노래는 노래의 성격상 라이브 동영상으로 보고 듣는 게 제맛인데 노래를 만든 킬라파윤의 70년대 공연도 감동적이고, 2019년 산티아고 시위 때 인티일리마니가 깃발을 흔드는 군중과 함께 부르는 영상을 보면 요샛말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소선합창단 영상을 보면서 가사의 의미를 대충 짐작해볼 수도 있다. 노래 제목은 인민연합의 대선 후보 살바도르 아옌데의 선거 운동 때 구호로 널리 사용되던 것이며, 아옌데는 같은 해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리고 3년 뒤인 1973년 피노체트의 군부 쿠데타 때 이 64살의 대통령은 아름다운 유언(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음반을 노동요로 틀어놓고 읽어보시기를!)을 남긴 뒤 총을 들고 군부와 맞서다 산화한다.

그래서, 단결한 민중은 패배한 것일까? 미라바시가 투쟁의 노래를 씁쓸하고 고혹적인 내면의 노래로 바꾸어놓은 2001년은 피노체트가 20년 가까운 폭정 뒤에도 여전히 큰소리치며 치매를 핑계로 심판을 피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제프스키의 변주곡이 나온 것은 아옌데 정권이 무너지고 나서 불과 2년 뒤인 1975년이다. 이 곡은 음악사상 최고의 두 변주곡과 함께 놓여도 손색없을 만큼 음악적으로도 인정받는다지만, 나처럼 음악에 어두운 사람은 역시 “행동파”였던 제프스키가 36개 변주로 36번 반복하여 패배했느냐는 질문을 한다고 먼저 느낄 수밖에 없다. 작곡 배경을 알고 연주하는 사람들 또한 이 질문을 피해 갈 수 없었을 것이다. 레비트도 그랬을 것이고, 박근혜 정권 2년차이던 2014년에 이 연주를 음반으로 낸, 뒤늦게 눈에 띈 작곡가 이상욱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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