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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감금의 정치’가 문제다

등록 2006-03-02 18:35수정 2006-12-11 17:01

최정기 전남대 교수·사회학
최정기 전남대 교수·사회학
기고/ 최정기 전남대 교수
지난달 19일, 서울구치소에서 한 여성 재소자가 목을 매 자살을 기도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원인은 교도관이 저지른 성추행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두고 여러 말이 오가고 있다. 가장 자주 접할 수 있는 주장은, 우리나라 교도소의 반인권적인 관행에 대한 비난과 미숙한 교정행정을 공격하는 것이며, 결론적으로는 교도소의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일견 당연하다고 볼 수 있는 주장들이다.

그런데 그러한 주장은 교도소에서 일이 일어날 때마다 반복되는 주장들로, 문제의 핵심을 비켜가는 지적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교정제도는 적어도 법제상으로는 그다지 후진적이지 않다. 또 1980년대까지의 권위적인 교도소는 오늘날 찾아보기 어려우며,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재소자들도 인정할 정도의 개혁이 진행되어 왔다. 오히려 교도관들은 “개혁한다면서 재소자의 인권보호만 강조하고 업무의 특수성은 간과하고 있다”는 불평을 감추지 않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번 사건과 겹치는 한 사건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그것은 아부그라이브 수용소 등 세계 곳곳의 수용소에서 미군들이 이라크인 수감자들에게 자행한 여러 가학적인 폭력들이다. 물론 두 사건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미군 수용소의 사례가 ‘전쟁’ 상황에서 ‘적국 전쟁포로’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면, 우리 교도소의 사례는 형사사법상의 형벌체계로 자국민이 대상이라는 점에서 완전히 다른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사건 모두 수용당한 존재에 대한 사회적 천대의 결과이며, 수용자의 모든 부분을 통제하는 관리 당국의 권력행사가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은 사건이라는 점에서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단순히 교정 관련 제도의 선진·야만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문제는 ‘감금의 정치’에 있다. 감금의 정치는 교도소나 수용소에서 행해지는 통제 및 강제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지배와 수용자들의 대응 행동, 그리고 이런 감금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효과, 곧 무질서 및 저항의 방지와 사회적 통합 효과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감금의 정치란 감금시설 안에서 이루어지는 지배 및 저항의 관계와 그것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회적 효과를 뭉뚱그린 개념이다.

이번 여성 재소자의 자살사건에서 놓치지 않아야 할 지점은 교정행정에 대한 공격이나 교도관에 대한 비난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교도소나 재소자를 열등한 존재로 보는 우리나라의 법의식 및 법문화에 있다. 일반인의 안전을 위해서는 ‘범죄와의 전쟁’ 및 일벌백계를 강조하는 파시즘적인 사회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실은 이러한 법의식과 법문화가 문제라는 것을 가장 잘 알면서, 동시에 그러한 태도를 가장 잘 체현하는 존재가 교도관이라 할 수 있으며, 이번 사건도 그 연장선에 놓여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교도소에 대해서 너무 일방적인 접근만을 강조했던 것 같다. 한쪽에서는 교도소가 권위주의의 도구라고 비난하면서 수형자들은 권위주의의 피해자라고 주장하였다. 다른 한쪽에서는 재소자들의 사회적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법의 강력한 집행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어느 정도 민주화가 진행된 오늘날에는 두 주장 모두 설 땅을 잃었다. 수형자는 분명히 죗값을 치러야 할 죄인이지만, 동시에 행복한 삶을 추구할 권리가 있는 사회 구성원인 것이다. 이런 토대 위에서 새로운 형벌체계를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법을 위반한 사람들은 좀 적게 가두고, 갇힌 사람한테는 좀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최정기/전남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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