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종족도 얼마든지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오. 실제로 우리는 막대한 자연자원과 우수한 지적 능력까지 지녔소.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기를 일부러 선택하지 않았다오. 왜냐하면 우리가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드높이는 방향으로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정도로 영적 성숙이 충분하다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오.” 노인의 말은 지금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포기의 미학’이 답이다!
강수돌 |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장면1: 조용한 마을에 포클레인 기계 소리 요란하다. 느닷없이 산과 언덕이 사라진다. 아파트 신축 간판도 내걸린다. 숲과 논밭 대신 시멘트 덩어리 고층 건물이 빼곡히 선다. 지하주차장에서 집까지 엘리베이터가 오간다. 비밀번호를 모르는 외부인은 접근금지! 고급 아파트일수록 추위나 더위, 자연을 철저히 차단, 깔끔하다. 운 좋으면 아파트 시세가 해마다 쑥쑥 오른다. 편리하면서도 투자가치 높은 아파트, 참 멋진 세상!
#장면2: 스마트폰으로 쿠팡이나 아마존 등 웹사이트를 검색한다. 비슷한 물품 중 가격비교표를 보고 ‘가성비’ 좋은 걸 고른다. 마침내 사고 싶은 상품을 선택한 뒤 신용카드로 결제한다. 하루나 이틀 뒤 택배차가 날라준다. 박스 속엔 해당 상품이 포장지로 잘 싸여 있다. 쓰레기는 분리수거만 하면 끝! 선택의 자유, 참 편한 세상!
#장면3: 친구들과 비행기를 타고 동남아 여행을 한다. 여행사가 만든 패키지상품이라 내용도 알차다. 특산물 쇼핑까지 있으니 금상첨화! 제주 여행과 비교해도 그리 비싸지 않다. ‘한류’ 분위기 덕인지 한국 돈이 통하기도 한다. 은근한 자부심! 가이드에 따라선 현지 전통시장 구경 뒤 특별요리까지 즐긴다. 돈이 주는 자유, 참 좋은 세상!
그러나 이 그럴듯한 상품, 화폐, 자본의 세상도 결코 공짜가 아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과정에서 자원과 에너지가 얼마나 낭비되며,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를 부르는 온실가스는 오죽 많은가? 대량폐기 쓰레기는 어딘가 사라져 ‘어머니 대지’를 괴롭히고 있으리.
편리함의 대가는 따질수록 어마무시하다. 겉보기에 깔끔·편리해도 아파트는 환경호르몬과 라돈 검출 위험이 있고 이웃·자연까지 분리한다. 터 조성 과정부터 논밭과 숲, 산을 없앤다. 이렇게 야생동물 서식지를 파괴한 결과가 코로나19 사태 아닌가? 또 편리한 인터넷 마케팅, 플랫폼시장, 택배회사, 해외관광과 여행, 자동차 대중화 등은 모두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와 연동해 기후위기를 촉진한다. 비행기 한대는 자동차 3천대분의 온실가스를 뿜는다. 많은 학자가 2050년을 인류 생존의 마지노선이라 했다. 기후변화 정부간 협의체(IPCC) 최근 보고서는 이걸 2040년으로 당겼다. 그간 온 세상이 ‘잘살겠다’고 아등바등 달려왔는데, 그 결과가 인류 생존위기라니, 근원적 자기모순이다. 노동 역시 자본과 공범 신세다. 편리함의 대가가 우리 자신의 존재 위기라니!
30대 때 약 10년 동안 아파트에 살았다. 만사 편리했지만 늘 마음속엔 ‘이게 아닌데’ 하는 느낌이 있었다. 농협에서 주관한 주말 텃밭을 7평 남짓 일구며 서서히 수도권 탈출을 꿈꿨다. 1999년 충남 조치원 시골마을에 전통 살림집을 짓고 아이 셋을 키웠다. 벌레에게 물리고 풀과 싸우면서도 자연 속 삶에 감동했다. 깔끔한 수세식 화장실 대신 소박한 생태 뒷간을 쓰면서 물 낭비, 전기 낭비 없이 오히려 내 똥과 오줌으로 텃밭 퇴비도 만드니 완전히 딴 세상이다. 최근 하동으로 이사했지만, 여전히 생태 뒷간을 쓴다. 이삿짐 팀장도 “이사 경력 10년에 화장실을 싣는 경우는 처음”이라 했다. 시골생활의 또 다른 맛은 나날이 변하는 텃밭 작물, 나무, 산과 하늘, 바람을 통해 삶의 변화무쌍함을 직접 느끼는 것! 살아 있음의 느낌이다.
1987년 <중독 사회>를 쓰기 전 미국의 앤 윌슨 섀프 박사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노인을 만났다. “당신네 백인들은 수백년 전에 과학기술의 길로 나아가기를 결정했잖소? 그런데 그렇게 하면 분명 이 지구가 망가짐을 알지 않소? 바라건대 너무 늦기 전에 이 점을 잘 깨달으면 좋겠소.” 섀프 박사의 놀란 눈에 노인이 말을 이었다. “내 말은 과학이나 기술 자체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오. 다만 당신네들이 영적 발달 차원에서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까닭에, 이 지구를 파괴하지 않는 방식으로 과학이나 기술을 창조할 수 없다는 얘기일 뿐이오.”
그렇다! 자본주의 생산력은 눈부시다. 그러나 바로 이 눈부신 발전과 인간적 성숙의 부조화 탓에 지금 지구 전체가 위기다. 노인이 토로했다. “우리 종족도 얼마든지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오. 실제로 우리는 막대한 자연자원과 우수한 지적 능력까지 지녔소.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기를 일부러 선택하지 않았다오. 왜냐하면 우리가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드높이는 방향으로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정도로 영적 성숙이 충분하다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오.” 노인의 말은 지금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포기의 미학’이 답이다!
팀 버턴 감독의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사업주 윌리 웡카는 “내 맘이 병드니까 초콜릿도 병든 거야”라 한다. 영성(관계성)을 무시한 이성(계산성)이 세상을 망친다. 꼬마 찰리가 어른 윌리를 깨우친 셈! 자본 주도의 과학기술, 그 깔끔함과 편리함에 중독된 채 무책임하게 사는 한, 우리네 삶은 더는 유지 불가능! 과연 이 ‘불편한 진실’을 정직하게 대면할 수 있는가?
지리산과 섬진강, 한려수도 품에 싸인 경남 하동군과 남해군에 15만볼트 송전탑 건설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최초의 ‘주민주도형’ 입지 선정이라는 거창한 구호와 달리 사실상 마을 사람들이 배제돼, 불씨를 안고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발전회사 공식 누리집에서는 “지속가능한 친환경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을 외치지만 석탄·가스를 포기할 계획이 없다. 기업이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중시하거나 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한다는 계획(RE100)에 진정성이 있다면, 송전탑을 포기하고 최대 절전과 에너지효율, 소형 태양광 발전 등에 힘써야 한다.
일반 시민들도 지구온난화와 생존위기 앞에서,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처럼 “우리들 집(지구)에 불이 났으니 모두 불 끄는 행동을 해야” 한다. 24일 서울 광화문·시청 일대에서 전국 360여개 단체 수만명이 ‘기후정의행진’에 나선다. 부디 서울시나 경찰이 방해하지 않길 빈다. 위기는 외면·회피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다. 9·24 기후정의 대행진은 그간 무심코 누린 편리의 대가를 책임성 있게 직시하고 대안을 찾는 첫걸음이다.
야구치 시노부의 <서바이벌 패밀리>는 편리의 상징인 전기가 사라질 때 그 대안은 소박한 농어촌 생태 공동체임을 알린다. 도시 불빛이 없으니 별도 밝다. 요컨대 대통령부터 일반인까지 ‘조금 먹고 조금 싸는’ 포기의 미학을 실천할 때 삶의 희망이 생긴다. <녹색평론> 김종철 선생의 마지막 권두언처럼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바이러스는, 공생의 윤리를 부정하는,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면역력을 끊임없이 갉아먹는 ‘탐욕’이라는 바이러스다.” 이 자본의 탐욕 바이러스에 한사코 저항하는, 행동하는 민중이 세상의 백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