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끝나갈 무렵 작업장 담당자에게서 문자가 왔다. ‘○○동, ○○동, ○○동. 분류 작업이 끝나고 위의 동에서 배송 알바가 가능한 분은 연락 바랍니다. 건당 배송비 1000원. 주유비 별도. 하실 수 있는 건수만큼 가능.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배송할 분 연락 바랍니다.’ 간혹 하루 이틀 정도 택배기사 가운데 결원이 생기면 회사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단기 배송 알바를 제안하기도 했다.
2020년 10월 서울 송파구 서울복합물류센터에서 택배 상하차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김수진(가명) | 택배사 아르바이트 노동자
지난해 12월, 코로나19로 하던 일을 그만둬야 했던 나는 집에서 몇달 쉬다가 궁여지책으로 아르바이트라도 시작해야 했다.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앱을 수시로 드나들던 중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발견했다. 근무 시간은 오전 6시 반부터 10시 반까지였다. 오전만 할애하면 되니 생활비를 벌면서 재취업 준비와 병행할 수 있겠다 싶어 지원서를 냈다. 그렇게 택배사로 처음 일을 나가던 날, 회사로부터 문자 한통을 받았다. ‘야외 작업이니 옷을 잘 챙겨 입고 오길 바랍니다.’ 바깥에선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몇년 만에 내복을 꺼내 입었다.
작업장에 도착해 업장의 준칙과 급여체계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구역마다 작업소장 한명에 택배기사 열댓명 정도가 일하고 있었다. 기사 두명당 한명씩 아르바이트생이 배치됐다. 아르바이트생은 물품들이 운반되는 컨베이어벨트에서 배정된 조의 택배기사님이 배송할 물품을 가려내는 일을 했다. 한번 시작하면 모든 물품이 분류될 때까지 컨베이어벨트는 계속 돌아갔고, 배정된 조의 기사님 물품을 가려내느라 눈과 손은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했다.
아르바이트생들이 물건을 건네주면 기사들은 곧바로 송장 바코드 스캔 작업을 한 다음 자신의 차량에 물건을 실었다. 나 같은 아르바이트생이 있지만 송장 바코드 작업과 차량에 물품을 옮겨 싣는 것은 오롯이 택배기사들의 몫이었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시간은 임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고 했다. 택배기사들의 임금은 배송 건당 수수료로만 계산되니, 사전에 택배를 분류하는 일은 일종의 공짜 노동인 셈이었다.
20㎏짜리 쌀 포대부터 거대한 캠핑 물품, 1인용 소파, 당일 배송 아이스박스까지 물품도 다양했다. 어마어마한 물품들을 4시간 동안 가려내어 옮기다 보면 어깨는 빠질 것 같았고, 발은 동상에 걸릴 듯 얼어붙었다. 택배 물량은 요일마다 달랐는데, 물량이 가장 많은 주중 2∼3일은 300개를 훌쩍 넘을 때도 있었고 상대적으로 물량이 적은 주 초반과 후반은 100개가 채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매주 월~토, 주 6일 동안 아르바이트생 업무시간은 4시간이었지만 이에 미달할 때도, 초과할 때도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시급은 계약했던 4시간으로 고정 지급됐다. 회사 쪽은 일급과 월급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차이는 만근수당 지급 여부였다. 아르바이트지만 빠지는 날 없이 일을 나가면 한달 5만원가량 만근수당이 더 주어진다는 말에 나는 월급제를 선택했다. 시급은 최저임금을 약간 넘어선 9500원이었고, 한달 100만원 남짓 손에 쥘 수 있었다.
어느 날 일이 끝나갈 무렵 작업장 담당자에게서 문자가 왔다. ‘○○동, ○○동, ○○동. 분류 작업이 끝나고 위의 동에서 배송 알바가 가능한 분은 연락 바랍니다. 건당 배송비 1000원. 주유비 별도. 하실 수 있는 건수만큼 가능.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배송할 분 연락 바랍니다.’ 간혹 하루 이틀 정도 택배기사 가운데 결원이 생기면 회사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단기 배송 알바를 제안하기도 했는데, 분류 작업을 빨리 끝낸 아르바이트생들 가운데 여건이 되는 사람은 추가 알바를 하기도 했다.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배송할 분’이라는 대목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택배 배송은 갖가지 물건을 직접 옮겨야 하는데다 차량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다칠 위험이 많다. 그래서 택배기사는 특수고용근로자이지만 지난해부터는 산업재해보험이 적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르바이트생인 나는 산재보험 의무 가입 대상이 아니다. 그러니 스스로 알아서 다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차가 없기 때문에 배송 아르바이트까지는 할 수 없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솔깃한 제안일지도 모른다.
택배기사 구인 광고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하는 만큼 수익 창출’. 평소 아무렇지 않게 봐온 문구였지만,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24시간 동안 한 사람이 노력해서 벌 수 있는 최대한의 수익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설사 밤낮없이 일해서 수익이 늘었다 해도 파손물품 배상과 기름값과 차량 유지비는 물론, 물품 스캐너, 겨울철 작업복까지 자기 돈으로 사야 하고, 과도한 노동으로 얻게 되는 질병과 부상 치료 또한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이런 속에서 과연 얼마나 어떻게 일해야, 하는 만큼 보람 있는 결과를 얻는 걸까.
취업 준비를 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로서 과연 나는 앞으로 하는 만큼 수익도 나고 보람도 있는 일을 찾을 수 있긴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도 택배회사로 출근한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