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창] 정대건 | 소설가·영화감독
8월 초에 목이 따끔거리는 느낌이 왔다. 2년 동안 익히 들어왔던 증상과 같았다. ‘나 코로나인가?’가 아니라 ‘걸렸네’ 느낌이 확실히 온다는 그 감각. 평소에 목이 잘 붓고 몸살을 자주 앓고 열이 자주 나는 체질이라 일말의 기대를 걸었으나 아니었다. 자가진단을 해보니 키트에 두 줄이 나왔다. 나도 걸렸구나, 마침내. 이틀은 정신이 혼미했다. 의자에 앉아 있을 힘도 없었다. 그러나 많이들 겪은 일이기에 그렇게까지 두렵지는 않았다. 일주일을 앓고 나자 잔기침은 계속 났지만 괜찮아졌다.
그런데 미각이 돌아오지 않았다. 레몬즙 원액이나 엄청 매운 떡볶이를 먹어도, 양치할 때 치약 맛도 나지 않는다. 그전까지 미각을 잃었다며 까나리액젓을 먹는 유튜버들이 콘텐츠를 위해 어느 정도 거짓말을 하는 줄로만 알았다.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산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던 내게는 너무 가혹한 후유증이었다. 내게는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니, 인스타그램에 즐비한 맛집 사진과 군침 도는 묘사들로 가득한 게시물들에 눈길도 가지 않았다. 이전과 다른 세상에 살게 된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봤다. 미각을 잃었다는 이야기는 많이 접할 수 있었지만 미각이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두려웠다. 다들 자연스레 미각이 돌아왔으니 별다른 후기를 남기지 않은 것일까. 어디에는 스테로이드 치료를 권하는 의사들이 있었다. 다른 곳에는 스테로이드로 효과를 못 본 사람에게 강황이 좋다는 말이 있었다. 보아하니 한의원에서 낸 기사였다. 둘 다 이해당사자들의 광고였다. 의료진의 전언도 신뢰할 수 없게 된 나는 블로그의 생생한 체험기들을 검색해 봤다. 10개월째 미각 상실이라는 글이 있었다. 스테로이드 치료도, 한의원 치료도 소용없었다고 한다. 조만간 신경과에 방문할 예정이라고 했다. 동병상련의 마음과 동시에 나도 미각이 끝내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절망적이었다.
미각이 사라지니 모든 일에 기쁨이 줄어들었다. 누군가가 나를 생각해서 요리해주는 것도, 함께 식사하는 것도, 상대방의 기쁨까지도 줄어들게 된다. 값비싼 음식도 다 부질없다. 식도락을 즐기지 못하게 된 것이다. 멀리 여행을 떠나는 일정도 취소하고 싶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 떠나는 여행의 기쁨 중에 먹는 즐거움이 절반은 될 것이고, 친구와 만나는 약속에서도 절반은 될 것이다. 욕구도 사라져갔다. 치킨을 먹고 싶은.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은. 떡볶이를 먹고 싶은 욕구. 이런 맛의 기억들이 멀어져가는 것 같아 두려웠다.
전전긍긍하며 보낸 지도 한달이 넘었다. 다른 사람들은 일주일, 보름 정도면 돌아왔다고 하는데, 코로나를 앓아도 미각은 잃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데 왜 나만? 이라는 생각도 든다. 후각과 미각 후유증을 겪은 사람들에게 특정 유전형질이 있다고도 한다. 모든 종류의 재난이 그렇듯이 나는 아닐 줄 알았다. 이 정도면 장애를 받아들이듯이 삶의 보상 체계를 다르게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내려놓고 다른 즐거움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내 증상을 말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동정 어린 시선과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미각이 아예 없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거짓말을 한다.
참 빤하게도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됐다. 다행히 향은 맡을 수 있고 이전보다는 미각이 돌아왔으나 여전히 조금 돌아온 것 같다. 신맛은 돌아왔는데 단맛은 아주 조금 느껴진다. 과연 코로나 이전으로 100% 회복될까. 시대에 따라 장애의 기준이 다르지만 미각을 잃은 사람이 많아지고 오래 지속된다면 장애로 분류돼야 하지 않을까. 부디 미각이 돌아오기를. 미각이 돌아온다면 맛을 느끼는 순간을 더 귀하게 여기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