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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참사, 사람의 풍경

등록 2022-09-08 18:13수정 2022-09-09 02:40

지난 6일 오전 서울 명동 포스트타워에 위치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에서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연대 관계자 등이 사참위 활동 종료와 보고서 발간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일 오전 서울 명동 포스트타워에 위치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에서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연대 관계자 등이 사참위 활동 종료와 보고서 발간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황필규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을 무렵 한 친구가 말했다. 수해와 같은 재난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공익변호사가 있으면 참 좋겠다고. 크게 관심 갖지 않았다. 복잡하게 망가진 재난 현장의 불편함, 그리고 큰돈의 흐름이라는 거리감, 왠지 공익변호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봤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약 20년, 참사 주위를 배회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비상임위원으로 일했던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활동을 종료하며 조사결과보고서를 발간했다. 세월호와 가습기살균제 두 참사는 무엇보다 피해자들의 죽음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과 가치를 깊이 성찰하게 한 역사적 사건이다. 법원의 사망 위자료 기준의 다양화와 상향이 그 영향 중 하나다. 사망자, 피해가족 한사람 한사람에게 이 땅에 사는 모든 이들이 진심으로 감사해야 하는 이유다.

참사를 둘러싼 진실은 얼마나 밝혀졌고, 책임은 얼마나 규명됐는가. 사참위의 부족함도 있었지만 밝혀진 것도 적지 않다. 하지만 참사 직전과 초기 관련된 정치·경제 권력은 은폐와 공격으로 자신의 크고 작은 책임을 회피하려 했고, 그 뒤 인적·물적 증거를 왜곡시킬 충분한 시간을 확보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수준을 넘어 피해자들에게는 ‘지연된 정의’조차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무서운 진실을 사참위는 확인했다.

피해가족들은 어디에 있었나. 피해자 인권, 피해자 참여가 참사 대응의 시작과 끝임을 강조했지만 사참위는 피해자들 곁에 항상 있지 못했다. 점점 멀어져가기도 했다. 경청과 소통이 이런저런 이유로 생략되기도 했다. 가장 뼈아픈 대목이다. 사람들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면 다를 수 있지 않았을까.

마지막 짐 정리 겸 조사관들과 인사하기 위해 사참위를 방문한다. ‘사참위 조사활동 결과에 크게 실망하고 개탄한다’는 세월호 참사 피해가족들의 전날 사참위 앞 기자회견에서의 외침이 그대로 남아 있다. 얼마 전 가습기살균제 참사 11주기, 대다수 피해가족이 여전히 방치되고 있다는 절규도 아직 생생하다. 누군가는 끝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시작이라고 한다. 모두가 사람을 바라본다고 외치지만 자신만의 프레임, 서사에 현실과 얼굴 없는 사람들의 집단을 끼워 맞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코로나19 백신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피해가족들을 만난다.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에 여야 국회의원들이 나서 대동소이한 여러 법안을 발의하고 단일안을 만들기로 한 지도 반년이 넘었다. 그동안 아무런 구제, 지원 없이 죽어가고 고통받은 이들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야당은 아쉬울 것이 없어 보이고 여당은 부담을 느끼는 정치공학 속에서 사람이 설 곳은 어디인가. 1년 넘게 제시됐던 피해가족들의 요구에 반복적으로 ‘검토’하고 ‘노력’하겠다는 답밖에 내놓지 못하는 정부는 피해가족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온종일 여기저기 연락을 취하여 라오스 방문 준비를 한다. 4년 전 한국 대기업이 시공을 맡고, 공기업이 운영을 담당한 라오스의 한 댐이 붕괴해 최소 70여명이 숨지거나 실종되고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 아직도 피해자 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유엔의 성명이 있었다. 라오스의 경직된 정치체제 아래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피해가족들, 누군가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어떤 이의 말을 되새긴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 2000일, 진실규명을 위치는 2000인 선언’에 동참한다. 당시 침몰 참사로 총 24명 선원 중 22명이 실종됐는데, 그 이후 대처 과정도 참사와 다르지 않았다. 정부나 국회 할 것 없이 피해자를 무시한다는 정치적 부담과 ‘막대한’ 예산을 쓴다는 정치적 부담 사이를 오락가락 회피하면서 피해가족들의 피를 말리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이 악순환은 누가 어떻게 깰 수 있을까.

참사는 있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는 풍경이 너무도 익숙하다. 수만명 단위 사망자 통계가 무감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코로나19 시대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폭염·폭우 피해자가 집단화된 ‘취약’계층으로 얘기되지만, 그 ‘취약’의 구조는 관심 밖이다. 계속되는 참사, 그곳에 사람이 있음을 누군가는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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