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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6411의 목소리] 돌아온 관광객, 돌아오지 못하는 호텔리어

등록 2022-09-07 18:34수정 2022-09-08 09:30

고용유지지원금으로 월급의 70%를 받으며 8개월을 버텼더니, 희망퇴직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회사는 희망퇴직을 통해 정직원을 내보내고 룸어텐던트 파트와 시설팀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했습니다. 희망퇴직을 하지 않고 버틴 저를 포함한 직원 2명은 펜츄리(설거지) 팀으로 보냈습니다.

법원 판결에 따라 호텔 안에서 밀려난 해고노동자들이 지난 1월18일 저녁 호텔 밖에서 퇴근길 시민들을 상대로 복직을 호소하고 있다. 오른쪽 비닐천막에서 교대로 밤샘농성을 이어간다.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eyeshoot@hani.co.kr
법원 판결에 따라 호텔 안에서 밀려난 해고노동자들이 지난 1월18일 저녁 호텔 밖에서 퇴근길 시민들을 상대로 복직을 호소하고 있다. 오른쪽 비닐천막에서 교대로 밤샘농성을 이어간다.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eyeshoot@hani.co.kr

허지희 | 세종호텔 해고자

서울지하철 4호선 명동역에서 10번 출구로 나오면 세종호텔이 있습니다. 저는 지난겨울 ‘코로나로 인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28년 동안 일한 세종호텔에서 정리해고됐습니다.

2011년, 세종대학교 재단에서 113억원 규모 회계비리로 퇴출됐던 주명건 전 이사장이 세종호텔 회장으로 재단에 복귀했습니다. 이어 복수노조, 전환배치, 구조조정, 해고 등 뉴스에서나 보던 단어들이 우리 회사에서도 현실이 됐습니다. 제가 20년을 일한 전화교환실도 아웃소싱을 위한 통화량 조사가 시작됐고, 저는 이듬해 노동조합의 파업과 로비 점거에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20년 근속상을 받은 날 침대 시트를 갈고 청소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룸어텐던트로 발령 났습니다. 호텔에서 장기 근속한 여직원을 청소노동자로 발령 내는 것은 흔히 쓰는 퇴출 방법입니다. 퇴사를 고민했지만 노동조합과 함께 싸우자는 말에 용기를 내보기로 했습니다.

전 직원 성과연봉제가 복수노조 위원장과 대의원 3명의 직권조인으로 통과된 뒤 룸어텐던트 파트에는 전에 없던 인스펙터(감독관) 제도가 생겼습니다. 인스펙터는 청소한 객실을 점검해 흠을 찾아 사진을 찍어 팀장에게 전송하고 청소 상태 등급을 매겼고, 팀장은 그 사진과 청소 상태 등급을 임금 삭감 자료로 이용했습니다. 인스펙터에게 사진을 찍히거나 지적당하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노동 강도가 높아져 몸은 서서히 병들어갔습니다. 룸어텐던트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테니스엘보와 손목터널증후군부터 목·허리 디스크, 어깨회전근 미세파열, 족저근막염을 안고 살게 되었습니다. 제 월급은 성과연봉제 시행 첫해 9%가 삭감돼 1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습니다. 세종호텔의 성과연봉제는 사원은 최대 10%, 계장 이상은 30%까지 임금을 삭감할 수 있도록 하고 있거든요.

코로나19로 명동 외국인관광특구에 위치한 세종호텔에 외국 관광객이 끊겼습니다. 회사는 무급휴직을 권유했지만 신청자가 거의 없었습니다. 얼마 안 가 정부에서 관광업종에 고용유지지원금을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고용을 유지하는 조건이므로 직원을 해고하거나 대체할 알바를 고용해서도 안 됩니다. 고용유지지원금으로 월급의 70%를 받으며 8개월을 버텼더니, 희망퇴직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회사는 희망퇴직을 통해 정직원을 내보내고 룸어텐던트 파트와 시설팀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했습니다. 희망퇴직을 하지 않고 버틴 저를 포함한 직원 2명은 펜츄리(설거지) 팀으로 보냈습니다.

펜츄리는 설거지만 하는 게 아닙니다. 연회를 준비할 때는 전복 800개를 닦고 새우 800마리 껍질을 까고 갈비탕에 들어갈 수없이 많은 고깃덩어리의 기름을 가위로 오려내는 등 조리 업무를 보조합니다. 연회 당일 새벽에는 초밥을 수십판 만들고, 파티가 시작되면 셰프 모자를 쓰고 즉석코너에서 엘에이(LA)갈비를 굽고 전을 부치고 튀김을 만듭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줄어든 연회팀 업무는 극성수기 룸어텐던트의 업무량에 비하면 어려운 일은 아니었기에 이렇게 또 지나가길 바랐습니다.

2021년 8월 회사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며 커피숍과 웨딩을 포함한 연회 등 식음료팀 전체를 없앴습니다. 333개 객실을 보유한 4성급 호텔이 조식 없이 운영하겠다는 억지 주장을 했습니다. 코로나로 회사의 수입이 줄어든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수십년 동안 모아온 자산으로 부동산을 쇼핑하고 호텔이 투자한 세종대 재단 안 케이티에스씨(KTSC·옛 한국관광용품센타)의 지분은 76%까지 늘리면서 은행에서 돈을 빌려주지 않아 생긴 경영위기라고 둘러대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습니다.

호텔은 2021년 12월10일에 보란 듯이 저를 포함한 민주노총 조합원 15명을 정리해고했습니다. 노조와 선정 기준과 대상자를 협의하지도 않았습니다. 해고 회피 노력의 일환이라며 신문에 호텔 소유 부동산 매각 광고를 했지만 실제 거래는 없었습니다. 이런 정리해고를 합법이라 인정하는 노동위원회에 우리는 분노했습니다. 적법한 쟁의 절차를 거쳐 이뤄진 파업인데 조합원들이 회사 로비를 점거한 것은 부당하다며 호텔 출입금지 가처분 결정을 내린 법원에도 분노했습니다. 그 결정으로 우리는 호텔 앞 길바닥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세종호텔은 제가 28년 동안 젊음과 노동력과 시간을 갈아 넣은 직장입니다. 우리가 어떤 잘못을 해서 해고된 게 아니라 코로나를 핑계 대고 밀어낸 것에 대한 억울함이 회사와 싸우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났으니 정리해고를 철회하라고 요구합니다. 입국 때 피시아르(PCR) 검사가 폐지됐고 외국인들이 한국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해고된 우리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일하고 싶은 노동자들일 뿐입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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