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8월16일 화요일 워싱턴DC 백악관 스테이트 다이닝룸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한 뒤 조 맨친 3세(웨스트버지니아주·민주당) 미국 상원의원(왼쪽)에게 서명 때 사용한 펜을 건네주고 있다. 에너지 비용과 약품 처방 비용을 낮추기 위한 이 법안은 미국 가정들의 헬스케어와 기후위기 대응, 적자 감축, 그리고 대기업들에 과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운데는 미 상원 민주당 대표 척 슈머 의원. 워싱턴/EPA 연합뉴스
[세상읽기] 신현호 | 경제평론가
지난 8월1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하면서 야심차게 추진한 ‘더 나은 재건 계획’의 주요 입법과제를 모두 완수했다. 국내에서는 국산 전기차가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 데 따른 대미 수출 차질 우려와 첨단 배터리공급망에서 중국 배제에 따른 반사이익에 대한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법률 시행 과정에서 국내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새로운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 우선과제이겠으나,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정치 현장에서 정책이 구현되는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시사점을 준다.
바이든 정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기후환경 대응 투자로 인한 가계의 에너지비용 하락, 건강보험 확대에 따른 처방약 가격 인하 및 재정적자 감축 등의 효과로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 효과는 얼마나 될까? 대개 이런 재정정책의 효과는 계측이 어렵기 때문에 평가기관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정파성이 낮은 기관들의 분석을 살펴보면, 의회 예산국이 이 법의 인플레이션 효과는 ‘2022년에는 거의 없을 것이며, 2023년에는 0.1%포인트 감소와 0.1%포인트 증가 사이에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펜실베이니아대학의 모델 분석에서도 ‘2024년까지 0.05%포인트 하락시키고 2020년대 말에 0.25%포인트 상승시킬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는 통계적인 의미에서 효과가 없다는 의미’라고 유사한 결론을 내놨다.
이를 토대로 상원 예산위원회 공화당 간사 린지 그레이엄 의원은 이 법이 인플레이션을 줄일 것이라는 민주당 주장이 의회 예산국에 의해 부정됐다며 바이든 정부를 공격했는데, 이는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비판이다. 하지만 거꾸로 공화당도 특별한 논거 없이 이 법이 인플레이션을 두자릿수로 늘릴 것이라는 공격을 지속한 것을 보면 민주당만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것이라는 왜곡된 이미지에 의해 입법절차 진행이 봉쇄된 상황에서, 그 돌파구로 채택된 명칭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바이든 정부의 ‘더 나은 재건 계획’은 세 방향으로 추진됐다. 첫째 ‘미국 구조 계획’은 실업수당 지급기간 연장, 고소득층 일부를 제외한 전 미국인에게 보편적으로 지급하는 코로나 특별지원금 등으로 총 1조9천억달러 규모의 정부지출을 담고 있는데, 초고속으로 진행돼 바이든 취임 100일이 채 되기 전에 입법이 완료됐다. 둘째는 ‘미국 일자리 계획’으로 도로·철도·상수도·전력망 등 사회적 생산기반에 총 1조2천억달러를 투자하는 ‘인프라스트럭처 투자 및 일자리법’으로 지난해 11월 결실을 보았다. 기후변화 대응과 복지 확대를 주 내용으로 하는 세번째 ‘미국 가족계획’은 ‘더 나은 재건법’이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9월 하원에서 발의된 뒤 인플레이션 우려로 장기간 표류해왔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의석을 정확히 50 대 50으로 반분한 상원에서 이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민주당 의원 전원의 찬성과 상원의장을 겸하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는 ‘타이브레이킹’ 표가 필요한데, 민주당 웨스트버지니아주 상원의원인 조 맨친이 인플레이션 우려를 근거로 요지부동 반대하면서 문제는 꼬여만 갔다. 하지만 입법 추진 동력이 소멸한 듯했던 지난 7월 말 갑자기 조 맨친과 민주당 지도부가 ‘더 나은 재건법’ 항목 간소화, 규모 축소, 증세를 통한 재정적자 축소 등으로 내용을 수정하고 이름을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변경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버몬트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가 법안 후퇴에 강력히 반발했지만, 민주당은 최종적으로 당내 모든 인사를 설득할 수 있었고 입법에 성공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마도 속으로 자신의 핵심 법안을 1년간 발목 잡아온 당내 인사 맨친에 대한 분노가 엄청났을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한 뒤 미소를 지으며 그 만년필을 맨친에게 직접 선물하는 모습을 연출해 법안 통과의 극적 효과를 키웠다. 정치란 그런 것이다. 이로써 미국 민주당은 암울했던 중간선거 전망에서 반전의 실마리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