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지난 26일(현지시각)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연례 경제정책심포지엄에 참여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세상읽기] 이강국 |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미국 와이오밍주의 작은 휴양도시 잭슨홀은 이제 한국인들 너도나도 이야기할 정도로 유명해진 곳이다. 이곳에서 매년 여름 미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콘퍼런스가 열리기 때문이다. 며칠 전 열린 올해 미팅에서 연준 의장 파월은 짧은 연설을 통해 경기를 희생해서라도 인플레이션을 확실히 잡겠다고 역설했다. 금리인상으로 기업과 가계의 어려움이 커지겠지만 인플레를 잡지 못하면 고통이 더 클 것이기에 오랫동안 긴축적인 통화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 6월과 7월 금리를 대폭 올린 연준이 앞으로 금리를 얼마나 높이 오래 인상할지는 많은 이들의 관심이었다. 7월 개인소비지출 인플레이션이 전월 대비 하락해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은 듯하고 경기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통화정책 방향 변화에 대한 기대도 있었지만, 파월은 이에 선을 그었고 주식시장은 폭락했다.
파월의 발언은 인플레이션이 주로 공급 측 문제로 일시적인 것이라 말했던 지난해 잭슨홀 연설과 대조됐다. 연준은 급속히 높아진 인플레 앞에서 인플레 심리가 고착되지 않도록 단호하고 지속적인 긴축을 천명했다. 파월은 인플레의 역사로부터 배운 교훈들도 제시했다. 중앙은행이 낮고 안정적인 물가를 유지하는 게 가능하고 그래야만 하고, 대중의 기대인플레이션이 인플레 경로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때까지 긴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논쟁의 여지가 있다. 연준은 팬데믹 이전에는 2% 인플레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2017년 옐런 당시 의장은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년간 실업률이 낮아졌지만 인플레이션이 높아지지 않는 현실이 수수께끼와 같았기 때문이다. 올해 잭슨홀 발표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수석경제학자 고피나트도 현존하는 경제모델은 최근 인플레이션 급등을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연준의 금리인상은 무엇보다 기대인플레이션 상승으로 임금이 상승하고 그것이 다시 물가를 부추기는 악순환을 우려한 결정이다. 인플레를 막기 위해 어느 정도 경기둔화와 실업 증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몇몇 경제학자들은 빈 일자리 비율이 높고 노동시장이 과열상태라서 실업률의 대폭 상승 없이는 임금상승 압력이 낮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의견도 있다. 미 다트머스대 블랜치플라워 교수 등의 연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실업률이 낮아지면 임금상승률이 높아지는 ‘필립스 곡선’이 사라졌다고 보고한다. 이는 오랫동안 위축된 노동자들의 협상력이 금융위기 이후 더욱 약화된 현실과 관련이 크다. 이들에 따르면 대신 비고용자의 비율(비고용률)이나 과소고용률이 임금상승과 관련이 컸다. 이렇게 보면 현재는 실업률은 낮지만 노동시장 참가율이 하락해 비고용률이 과거에 비해 낮아 노동시장이 크게 과열되지는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임금상승으로 인한 인플레 압력은 높지 않을 것이며 인플레를 잡기 위해 너무 급히 금리를 인상할 필요도 없다.
실제 이미 인플레가 정점을 지났는데 너무 성급하게 찬물로 꼭지를 돌리는 ‘샤워실의 바보’처럼 급속한 금리인상으로 경기침체를 심화시키는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닐까. 금리인상이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치는 데는 1~2년의 시차가 필요하고, 중앙은행의 정책은 과학이 아니라는 말이 있듯이 인플레이션과 노동시장, 통화정책에 관한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급속한 금리인상의 악영향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인플레이션보다 경기둔화와 실업이 취약한 노동자들에게 더 큰 타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파월은 지난해 4월 저금리 유지 결정 뒤 ‘인플레에 대응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연준 건물 주변 홈리스들을 언급하며 ‘코로나19 경제위기가 유색인종의 가난한 이들을 더 힘들게 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가 이번에는 1980년대 연준을 이끌었던 볼커의 자서전을 인용하며 강력한 긴축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단호한 금리인상으로 인플레를 통제했던 볼커는 인플레 억제를 위해 임금을 억누르는 것이 핵심이라 생각했다. 항공관제사 파업 진압이 인플레와의 싸움에서 결정적인 계기라고도 했다. 파월은 강도 높은 긴축이 그가 걱정하던 취약한 노동자들을 어렵게 만들지 않을지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