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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봉규의 사람아 사람아] 가스실 옆에는 화장터가 있었다

등록 2022-08-23 18:10수정 2022-08-24 02:36

제노사이드의 기억 체코 _01
가스가 투입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한꺼번에 비명을 지르며 숨을 헐떡였고, 서로 높이 솟아오르려고 뛰어 올랐다. 약한 이들은 바닥에 깔릴 수밖에 없었고, 아이들은 두개골이 으깨어지기도 했다. 힘센 이들은 그 위에 섰지만, 20분만 지나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푸른색 주검들은 서로 뭉쳐진 채 돌덩이처럼 굳어갔다.

지난 2019년 3월7일 체코의 수도 프라하 외곽 북쪽 우스티주 테레진 마을에 있는 나치 시절 강제수용소 화장터를 찾았었다. 온종일 화장터를 서성거렸는데, 내부 공개 시간이 지나자 관리인이 문을 닫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무도 없는 화장터 내부를 보여주고 있다. 테레진/김봉규 선임기자
지난 2019년 3월7일 체코의 수도 프라하 외곽 북쪽 우스티주 테레진 마을에 있는 나치 시절 강제수용소 화장터를 찾았었다. 온종일 화장터를 서성거렸는데, 내부 공개 시간이 지나자 관리인이 문을 닫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무도 없는 화장터 내부를 보여주고 있다. 테레진/김봉규 선임기자

기차 화물칸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면, 바로 가스실로 보낼 사람과 수용소에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할 약간의 살려둘 사람을 선별했다. 이 과정에서 서로 떨어지게 된 사람들의 통곡, 울부짖음이 이어졌다. 그들은 유럽 각지에서 끌려온 유대인, 동성애자, 집시, 러시아 전쟁포로, 혼혈인, 장애인들이었다. 환자나 장애인 등 노약자, 아이와 임산부 등은 바로 가스실로 가야 했다. 가스실로 가는 줄에 선 이들 가운데 노인과 아이들은 힘없이 침묵했지만, 젊은이 중에는 본능적으로 뭔가를 깨닫고 사력을 다해 저항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고 훗날 생존자들은 증언했다.

가스실 문은 볼트로 빠르게 조여 완전히 밀폐한 뒤 독가스 ‘치클론 비’(Zyklon B)를 지붕 구멍을 통해서 넣었다. 대부분 수용소에서는 엔진 배기가스(일산화탄소)를 주입했다. 가스실 운영 초기에는 사람이 질식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정확히 알지 못해, 가스실 문을 일찍 열었다가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을 확인하고 다시 문을 닫기도 했다. 가끔 가스를 공급하는 엔진이 고장나면 수리될 때까지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가스실 안에서 대기해야 했다. 가스가 투입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한꺼번에 비명을 지르며 숨을 헐떡였고, 서로 높이 솟아오르려고 뛰어 올랐다. 약한 이들은 바닥에 깔릴 수밖에 없었고, 아이들은 두개골이 으깨어지기도 했다. 힘센 이들은 그 위에 섰지만, 20분만 지나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푸른색 주검들은 서로 뭉쳐진 채 돌덩이처럼 굳어갔다.

강제수용소 초기에는 시체 더미를 쌓아놓고 장작불을 피워서 태웠다. 그러다가 최종 해결책(대량 학살을 통해 유대인을 체계적으로 전멸시키려는 계획) 실행 뒤 주검들이 쉴 새 없이 밀려들자, 나치는 수용소 가스실 옆에 소각로가 여러개인 화장터를 건설했다.

유럽지역 강제수용소 화장터 여러 곳을 둘러봤지만, 체코 프라하의 북쪽 외곽에 있는 테레진 수용소 화장터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중세 시대 느낌의 테레진은 호텔 간판도 몇개 보이지 않는 우리나라의 읍내 마을 크기였다. 나치 당시 유럽 여러 지역에서 끌려온 유대인을 격리 수용하기 위한 게토까지 있어 마을 자체가 거대한 강제수용소였다. 이곳 화장터도 바로 옆방에 해부실을 갖추고 있었다.

화장터 내부는 깔끔한 공장 같았다. 발걸음을 멈추고 카메라를 든 채 내부를 한참 살피는데,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한 나는 소각로가 아주 견고하고 세밀하게 만들어졌음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언뜻 소각로는 감정 없이 차갑게 묘사된 즉물주의와 사실주의가 뒤섞여 재현된 설치미술품처럼 보이기도 했다. 가까이 다가서서 살펴보니 볼트 하나도 허투루 만들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소각로 문을 여닫는 쇠붙이들과 주변 장치들도 생김새가 너무 섬세해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가스실과 화장터에서 강제노역을 했던 생존자 필리프 뮐러와 헨리 타우버는 ‘한 소각로에 성인 2명에 어린이 등 작은 체구의 주검을 합해 5~6구에서 최대 8구까지 넣었다’라고 말했다. 화장터는 24시간 운영됐기에 소각로(머플) 벽돌은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파손됐다. 온종일 주검을 태우면 화장터 굴뚝 위로 밤하늘에 불꽃이 튀어 오르고 구운 고기 냄새와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퍼졌다. 나중에는 잿가루가 하늘을 뒤덮어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그렇게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에서만 90만명, 유럽 전역 강제수용소에서 600만명이 학살됐다. 독일 12개 업체가 이렇게 수많은 사람을 잿가루로 만든 나치 강제수용소의 화장터를 건설했는데, 생활폐기물 소각로 사업을 하던 ‘J. A. 토프 운트 죄네’가 가장 규모가 컸다.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를 비롯해 부헨발트, 다하우, 마우타우젠 등 화장터를 설계 시공한 회사다. 당시 독일에서는 주검이 화염과 직접 닿지 않도록 하고 한 소각로에 둘 이상 주검을 태우거나 재가 섞이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지만, 이 회사는 처음에는 소각로를 작게 만들었다가 나중에는 입구를 크게 늘려 한꺼번에 여러 구 주검을 넣을 수 있도록 했다. 이 회사 수석 엔지니어인 쿠르트 프뤼퍼는 자신이 설계·시공한 화장터 소각로를 매우 자랑스러워하며 ‘J. A. Topf & Söhne’ 로고를 새겨 넣었다. 그뿐만 아니라 ‘주검 연속 소각 시스템’ 구축과 관련 특허까지 출원했다.

나치와 그들의 목표는 가스실에서 학살당한 사람들을 신속하게 잿가루로 만드는 ‘처리’일 뿐이었다.

김봉규 | 사진부 선임기자
다큐멘터리 사진집 <분단 한국>(2011), <팽목항에서>(2017)를 출간했다. 제주 4·3 학살 터와 대전 골령골을 비롯해 전국에 흩어진 민간인 학살 현장을 서성거렸다. 안식월 등 휴가가 발생하면 작업지역을 넓혀 캄보디아 ‘킬링필드’를 비롯한 아시아, 폴란드 전역과 독일, 네덜란드, 체코, 오스트리아 등 나치 시절 강제 및 절멸수용소 등을 15년 넘게 헤매고 다녔다.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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