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포스터. ENA 제공
[한겨레 프리즘] 서정민 | 문화팀장
이런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여기 ‘한겨레 프리즘’ 꼭지에 ‘‘오징어 게임’의 빛과 그림자’란 제목의 칼럼을 쓴 게 지난해 9월이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에는 넷플릭스라는 막강한 플랫폼의 힘도 작용했는데, 제아무리 대박을 터뜨려도 국내 제작자와 창작자에겐 추가 수익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을 그림자로 짚었다. <오징어 게임>의 아이피(IP·지식재산권) 또한 넷플릭스에 귀속된다는 점도 큰 숙제를 남겼다. 그로부터 1년도 채 안 된 지금, 이런 한계를 넘어선 성공사례를 여기 쓰게 된 건 어찌 보면 기적에 가깝다. 지난 18일 종영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 얘기다.
<우영우>에 대한 상찬과 성공요인 분석은 차고 넘친다. 여기선 드라마 내용보다 미디어 플랫폼 전략에 관해 얘기해보려 한다. <우영우> 제작사는 에이스토리다. 2004년 설립해 <아이리스>(KBS2), <시그널>(tvN), <킹덤>(넷플릭스) 등 30편 넘는 드라마를 제작했다. 특히 <킹덤>이 눈에 띈다. 한국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의 효시이자 첫 성공사례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아이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우영우> 아이피는 에이스토리가 가지고 있다. 넷플릭스에 판매한 건 글로벌 방영권(중국 제외)이다. 국내 방영권은 케이티(KT)그룹 계열 신생 채널 <이엔에이>(ENA)에 판매했다. 한 지상파 방송사와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결국엔 인지도가 거의 없는 이엔에이를 택했다. 이상백 에이스토리 대표는 <씨네21>과 한 인터뷰에서 “이엔에이와 계약을 맺은 것은 아이피 때문”이라고 밝혔다. “예전엔 제작사가 방송국과 외주제작 계약을 맺고 제작비의 70% 정도를 받은 뒤 아이피는 방송국이 가져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는 넷플릭스가 아이피 권리를 갖는다. 반면 <우영우> 아이피는 제작사가 소유한다”는 것이다.
모험은 콘텐츠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됐다. 이 대표는 “(신생 채널에 편성해도) 시청률 5% 이상을 기록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했다. 1회 0.9%에서 출발한 시청률(닐슨코리아·유료방송 가구 기준)은 마지막 16회에서 17.5%까지 치솟았다. ‘오티티(OTT)에 밀려 티브이(TV)의 시대는 갔다’는 자조가 나오는 요즘, 거꾸로 티브이의 저력을 되새긴 셈이다. 물론 넷플릭스에서도 히트했다. 넷플릭스 국내 차트 정상은 물론 글로벌 차트 비영어권 티브이시리즈 1위에도 올랐다. 사실 신생 채널과 과감히 손잡은 건 넷플릭스라는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에이스토리는 아이피를 확보함으로써 운신의 폭이 더욱 넓어졌다. 당장 <우영우> 웹툰을 지난달 말부터 네이버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엠케이(EMK)뮤지컬컴퍼니와 손잡고 2024년 초연을 목표로 뮤지컬 제작에도 나섰다. 미국, 중국, 일본, 튀르키예 등에서 리메이크 제안도 밀려오고 있다. 이처럼 아이피 확장 사업을 이어가면서 이르면 2024년 방송을 목표로 시즌2 제작도 준비하고 있다.
<우영우>는 플랫폼으로 과도하게 기운 균형추를 제작사·창작자 쪽으로 끌어올 실마리를 만들었다. 문제는 누구나 <우영우>처럼 될 순 없다는 사실이다. <우영우>에 150억원이라는 거액의 제작비를 먼저 들이고 아이피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자금과 인력을 갖춘 대형 제작사이기에 가능했다. 그렇지 못한 중소 제작사는 제작비 마련을 위해 아이피를 넘길 수밖에 없다. 불균형한 관계 속에서 감독 등 창작자 뜻을 무시하고 <안나>를 재편집한 쿠팡플레이의 사례도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
정부는 넷플릭스에 맞서는 토종 오티티를 위한 정책적 지원을 고심 중이다. 이 또한 필요한 일이긴 하나, 콘텐츠 산업의 토대를 이루는 제작사·창작자가 튼튼하지 않으면 사상누각일 수 있다. 제2의 <우영우>가 나오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더 고민해야 한다. 결국엔 콘텐츠가 답이기 때문이다.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