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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등”의 싸움

등록 2022-08-18 18:59수정 2022-08-19 02:35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11일 경기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검사의 수사개시 규정과 관련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11일 경기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검사의 수사개시 규정과 관련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크리틱] 정영목 | 번역가·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출판사와 쓰는 계약서도 몇줄만 읽으면 머리가 지끈거려 중요사항만 보고 치워두는 내가 최근에 그 어렵다는 법조문을 조금 읽어보게 됐다. 이것은 순전히, 법무부에서 얼마 전 개정된 검찰청법 시행령안이 나오면서 “~등”이라는 표현이 문제가 됐다는 신문기사에 낚인 결과다. 법조문에는 흥미가 없지만 텍스트 읽기가 문제가 됐다니 관심이 갔던 것이다. 거기에, 검찰청법 개정 자체는 물론 법 자체에 대한 식견도 없는 사람이지만 전문가가 아닌 나 같은 평범한 국민에게는 해당 텍스트가 어떻게 읽힐까 하는 호기심도 물론 있었다.

검찰청법은 제4조(검사의 직무)에서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의 범위”를 규정하는데, 그 가운데 첫번째가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다. 이것이 얼마 전 앞의 두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삭제하는 식으로 개정돼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가 됐다. 물론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범죄 범위를 줄이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그런 의도는 고려할 필요 없이 “법문언”만 볼 따름이라는 신비평적 반응을 보였는데, 이 또한 저자(입법부=국민의 대의기구)의 의도와 텍스트(법)의 관계라는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어쨌거나 내가 참고한 법제처 제공 법령에서는 “제정·개정 이유”도 검색이 가능한 것으로 보아 법 전문가들도 이런 이유를 다 무시하는 것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에서 “등”은 실제로 간단치 않은 문제로 보인다. <표준국어사전>을 보면 이 “등”은 “1. 그 밖에도 같은 종류의 것이 더 있음을 나타내는 말. 2. 두개 이상의 대상을 열거한 다음에 쓰여, 대상을 그것만으로 한정함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나오는데 이 두 의미는 모순되는 것 아닌가. 이번에 법무부 시행령은 “등”을 1번 뜻으로 이해했다. 따라서 부패·경제범죄 외에도 중요 범죄를 대통령령으로 추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대목만 보자면 이런 해석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이렇게 읽을 때 중요 범죄는 부패·경제범죄와 동격이 된다. 즉, 구체적 죄목이 아니라 법무부 표현대로 범죄 “유형” 또는 “범위”가 된다. 따라서 법무부가 해석하는 대로 부패·경제범죄 외에 다른 중요 범죄 유형을 추가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곧 법을 시행하는 쪽에서 중요하다고 간주하는 모든 유형을 추가할 권한이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 것일까? 그것이 “하위법령 위임의 전형적 규정 방식”일까? 상위법령에서 “유형”을 규정했으면 하위법령에서는 그 유형에 들어가는 세목을 규정한다는 것이 평범한 국민의 상식 아닐까?

그렇다면 그런 상식에 맞도록 “등”의 뜻을 2번으로 읽을 수는 없을까? 다시 말해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 2개 중요 범죄는 수사를 개시할 수 있으며, 여기에 들어가는 구체적 죄목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식으로. 개정 전 시행령은 바로 그렇게 읽은 듯, “‘부패범죄…대형참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란 다음 각호의 범죄를 말한다”고 말한 다음 각 유형에 해당하는 죄목을 나열하고 끝맺었다.

하지만 이 논란이 정리된다 해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시행령안에서 이보다 앞에 있는 게 “부패·경제범죄의 개념 정의 및 재분류”다. 이것은 형식적으로는 하위법령 위임 방식에 어긋나지 않으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대해 확고한 입장이 없던 나 같은 사람의 눈에도 그 자의적 범위 확대는 언어를 통한 소통의 기초를 흔드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결국 자구 해석 문제란 사실 자구 해석 문제가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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