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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명인 칼럼] 우영우가 말하고 싶었던 것

등록 2022-08-18 18:57수정 2022-08-19 10:18

누군가 약자나 소수자들에 대한 부당한 억압과 차별에 관해 애를 써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음에도 이를 구성원들이 함께 실천해야 할 공동의 과제로 인식하는 대신 이를 개인적 힐링이라는 방식으로 소비하고 마는 이 신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폐쇄회로에서 이젠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김명인 | 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문학평론가 

볼수록 마음이 따스해지는 힐링 드라마라고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케이블티브이(TV)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바로 그 ‘힐링’이라는 말이 좀 고까워서 나중에 기분 내키면 한번 몰아 보면 되겠지 하고 밀쳐두고 보지 않았는데 얼마 전 아내가 문득 같이 보지 않겠느냐고 하는 통에 8회까지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주말 이틀 동안 몰아 보고 내친김에 이른바 ‘본방사수’까지 하게 됐다. 과연 케이(K)드라마 전성시대인 요즘에 이름도 낯선 신생 채널의 드라마가 다른 쟁쟁한 채널들의 동 시간대 드라마들을 물리치고 시청률 15%를 상회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싶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는 남다른 출생의 비밀과 자폐스펙트럼 증후군이라는 장애를 안고 태어났음에도 싱글대디의 헌신적 돌봄으로 성장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게 된 한 여성이 대형로펌에 취직해서 겪는 사건들을 법정드라마이자 시추에이션 코미디 형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는데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소수자 주인공이 역시 이 사회의 기존 관습과 윤리, 법과 제도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다른 소수자들의 권리를 변호한다는 기본설정으로 이른바 ‘차별받는 을(乙)들의 연대’라는 감각을 환기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고귀한 출생→불우한 성장→역경의 극복→위대한 성취’라는 익숙한 영웅서사적 골격을 가지고 있지만, 그 주인공 영웅이 여성이면서 장애인이라는 이중의 소수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전통적 영웅서사와는 구별된다. 탁월한 암기력과 집중력으로 서울대 법대와 로스쿨을 수석 졸업했다는 점에서 주인공 우영우는 천재적 능력이라는 영웅의 자질을 갖췄지만, 여성이자 장애인이라는 이중의 약점은 그를 영웅은 영웅이되 우리 전통 설화에서 종종 나타나는 ‘바보 영웅’ 혹은 ‘민중 영웅’의 형상을 띠게 한다. 영웅서사를 접하는 대중들은 그 영웅을 선망하고 의존함으로써 대리만족을 얻지만 이 우영우라는 ‘이상한 영웅’은 한편으로는 선망과 의존감을 불러일으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연민과 동정, 나아가 얼마간의 해학까지도 불러일으킴으로써 대중들을 일종의 양가감정(앰비밸런스)에 빠뜨리는데 이 양가감정의 동시발생이야말로 시청자들을 매혹시키는 이 드라마의 미학적 비밀이라고 할 수 있다.

법정드라마로서 이 드라마에는 거의 매회 다양한 법정 쟁점들이 등장한다. 의처증을 가진 노년 남성에 대한 부인의 살인미수 사건, 동성애자 여성을 둘러싼 상류계층 간의 혼인 분쟁 사건, 탈북민 여성이 연루된 강도상해 사건, 동종업계 내 산업기밀 도용 사건, 막개발로 인한 마을공동체 훼손 위기 사건, 한 과대망상자의 미성년자 약취 유괴 사건, 형제간 상속재산 분할 분쟁 사건, 장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관련 사건, 로또 당첨금 분쟁 사건, 발달장애인 관련 가족 살해 사건, 성차별적 구조조정 사건, 사찰의 문화재 관람료 징수 분쟁 사건 등인데 이 사건들에서 경제력 없는 노년 여성, 동성애자 여성, 탈북민 여성, 동종산업 후발기업, 토지수용 대상자들, 발달장애인, 해고 여성노동자들은 모두 사회적 권력관계에서 ‘을’의 위치에 놓인 소수자들이자 약자들로서 변호사 우영우는 이들을 변론할 때는 치열한 법리 논쟁을 통해, 반대로 부득이 이들을 차별하고 괴롭히는 ‘갑’들을 변호하게 될 때는 고통이 따르는 자기성찰을 통해 이 소수자들과 약자들이 당하는 억압과 차별의 실상을 드러내고 이들을 둘러싼 사회적 편견과 부당한 제도적 법적 시스템들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많은 시청자가 이 드라마를 보며 힐링을 경험한다고 하는데, 이는 이처럼 이 드라마가 대부분 사회적 약자, 혹은 소수자들이거나 사회정의에 목마른 ‘을’의 처지에 놓인 시청자들에게 현실에서는 좀처럼 가능하지 않은 위안과 대리만족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웰메이드 드라마를 공감하며 즐기고 있다는 점에서는 나도 다른 시청자들과 다를 바 없지만, 이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한두가지쯤은 더 생각해봤으면 하는 점들이 있다. 먼저 ‘힐링을 얻는다’로 대표되는 시청자들의 공통된 반응에 대해서다. 나로서는 이 드라마의 기본적인 사회적 의의는 우리 사회가 소수자나 약자들이 얼마나 살기 힘든, 억압과 차별이 가해지는 사회인가를 보여준다는 데에 있지, 같은 처지의 시청자들에게 한갓 위안이나 힐링을 주는 데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힐링’은 개인적 치유 경험이라는 점에서 신자유주의 체제의 주요한 특징인 개인주의와 자기경영주의에 정확히 대응되는 매우 수동적이고 패배적인 개념이다. 사회적 억압이나 차별이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자행됨에도 이것을 극복하는가 못 하는가는 오로지 개인의 문제라는 이상한 이데올로기가 마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 신자유주의 사회의 이상한 특징이다. 이 사회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은 공동의 과제로 제기돼 해결되는 대신 개인이 알아서 감당하거나 주관적 치유의 방식인 이른바 ‘힐링’으로 해소해야 할 하나의 우연한 상처와 같은 것으로 치부된다. 이처럼 누군가 약자나 소수자들에 대한 부당한 억압과 차별에 관해 애를 써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음에도 이를 구성원들이 함께 실천해야 할 공동의 과제로 인식하는 대신 이를 개인적 힐링이라는 방식으로 소비하고 마는 이 신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폐쇄회로에서 이젠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이 드라마는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그저 소수자 약자는 늘 억울하게 당하고, 다수자 강자는 늘 이들을 억압하고 차별하므로 소수자 약자의 입장에 철저히 서야 한다는 스테레오타입화된 선악 구도나 권선징악의 서사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드라마는 다양한 사건 케이스들을 통해 적지 않은 난제들을 던져준다. 남편을 다리미로 폭행했던 그 노년 여성에게 과연 진정으로 살의는 없었을까, 어린이 해방을 주장하는 과대망상의 청년을 정말 사상범으로 보아야 할까, 발달장애인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어디까지 존중받아야 할까, 과연 ‘나쁜 남자’와 연애할 자유 혹은 권리는 없는 것일까, 그리고 직업윤리와 일반윤리가 충돌할 때 우리는 어떤 것을 우선해야 하는가와 같은 난제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난제들은 우리에게 단순히 소수자 약자 편에 서야 한다는 손쉬운 당위론에 손을 들어주는 대신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한다. 우리가 자폐스펙트럼 증후군을 가진 우영우라는 인물에 대해 복잡한 양가감정에 빠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드라마는 단순 이분법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란 없으며 모든 사회적 난제들은 복잡한 나선형적인 과정을 통해 해결된다는 것,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이분법적 적대성으로 가득찬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 이 드라마가 던져주는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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