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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담대할 뻔한 대통령의 대북 구상

등록 2022-08-18 18:56수정 2022-08-19 02:38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취임 100일을 맞아 열린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취임 100일을 맞아 열린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세상읽기]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제시한 대북협력 구상에는 분명 긍정적인 점이 있다. 수요일(17일)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담대한 구상에는 미-북,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외교적 지원과 재래식 무기체계의 군축 논의 등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비핵화에 관해서도 “(북한이) 먼저 다 비핵화를 하라, 그다음에 우리가 한다, 이런 뜻이 아니고 (비핵화) 의지만 보여주면 거기에 따라서 (대북제재 완화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다 도와주겠다는 말씀”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에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말한 대목도 신선하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군사합의서를 파기할 수 있다”던 윤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판문점 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을 계승하는 것을 넘어 한반도 평화를 한걸음 더 전진시키겠다니 반전의 묘미 아닌가.

이러한 담대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한과 대화를 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대화를 위한) 정치쇼는 하지 않겠다”며 거리를 뒀다. 여전히 배고픈 북한이 비핵화를 약속하며 고개 숙이고 대화의 장으로 나오리라는 희망적 사고의 연장이다. 게다가 북한에 식량, 에너지, 농업, 인프라, 금융 등을 지원하겠다는 구상도 과거 문 대통령이 이동저장장치(USB)에 담아 북한에 전달한 ‘한반도 신경제구상’에 모두 담겨 있는 내용이다. 북한으로서는 새로울 게 없다고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 대북제재 완화와 관련해서도 미국과 유엔을 설득하려는 의지나 행동을 보여줘야 북한이 호기심이라도 보일 텐데, 그렇지 않았다. 기자회견 직후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안타깝게도 (제재 완화는) 전적으로 가설”이라며 선을 그었다. 방송 매체 <미국의 소리>(VOA)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북한의 광물과 희토류를 대가로 음식과 의료장비 등 비제재품을 제공하는 (윤 대통령의 구상은) 여전히 제재 위반”이라고 보도했다. 제재 주체는 유엔과 미국인데 이들의 동의 없이 윤 대통령 혼자서 제재를 완화하겠다면 누가 믿을까.

이런 현상은 대중, 대일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사드 추가 배치와 관련해 주한미군과 우리 국방부가 공히 “계획이 없다”고 하는데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혼자 “추가 배치”를 외쳤고, 이는 현재 중국과 소위 ‘사드 3불1한’이라는 주권 논쟁으로 이어졌다. 대한민국 안보 상황에 변한 것은 없는데 단지 논쟁을 위한 논쟁으로 한-중 관계에 금이 가고 말았다. 너무 담대해서 탈이 났다고 할까. 윤 대통령은 징용노동자 배상 등 과거사 문제 해결책 없이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이웃”이라며 일본과 덮어놓고 개선을 외치니 이 역시 실질적인 진전이 없다. 6월 대통령실과 외교부는 ‘일본이 7월의 참의원선거 직후부터 한국과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8월이 돼서도 사정은 변한 게 없다. 이 정부의 외교적 수사에서는 진정성을 확인하기 어렵다.

남북관계와 관련한 대통령의 선언은 크게 두가지 유형이 있다. ‘7·7선언’으로 불리는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의 ‘민족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 ‘베를린 선언’으로 알려진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선언’,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정착을 향한 ‘신베를린 선언’ 등은 평화에 대한 일관된 신념과 철학, 치밀한 계획으로 주변국을 설득해 과감한 실행으로 이어졌고, 나름 성과도 거뒀다. 국제 정세의 변곡점에서 역사적 전환을 몰고 온 이런 선언은 ‘담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바탕에는 장기적 안목의 국가 대전략, 주변 정세를 우리가 주도하겠다는 결기가 있다.

반면 “통일 대박”을 말했지만 통일과 더 멀어진 박근혜 대통령이나 ‘비핵·개방·3000’을 말해놓고 북한 붕괴나 기다리던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상상력과 구체적 계획이 결여된 자기만족형 퍼포먼스였다. 수시로 북한과 일본을 상대로 유화정책과 강압정책을 오가는 갈지자 행보는 이도 저도 아닌 소신 없는 행태, 즉 얄팍함이다. 이런 무소신이 국민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줬는지 기억하라.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은 어디에 속하는가. 이 질문에 대답이 궁하다면 담대함의 유혹을 버리고 우선 냉정해짐이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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