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은 우리 사회에서 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아기가 태어나 100일이 되면 ‘100일잔치’를 연다. 생후 가장 연약하고 위험한 시기를 무사히 넘겨 가족의 일원이 되었음을 확인하고, 오래오래 건강한 삶을 누리라는 축복의 의미를 담아서다. 영아 사망률이 매우 높았던 옛 사회에서 100일 무사 생존은 더욱 의미가 컸다. 이 무렵이면 아기들은 대개 목을 가누고 뒤집기를 하며 사람의 형상을 갖춰간다. 요즘은 과거보다 규모가 줄었지만, 여전히 중요한 가족 행사다.
연인들도 만난 지 100일이 되면 나름의 조촐한 의식을 치른다. 선물을 건네고 둘만의 ‘프로필 사진’을 찍어 기념으로 남긴다. 현역병이 군 입대 뒤 처음 받는 ‘신병위로휴가’도 입대 100일에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100일은 ‘단군 신화’에도 등장한다. 나중에 단군의 어머니가 되는 웅녀는 곰일 적 환웅으로부터 “사람이 되고 싶으면 마늘과 쑥을 먹으며 햇빛을 보지 않고 100일을 견뎌야 한다”는 ‘고난도 미션’을 부여받는다. 호랑이와 달리 인고의 시간을 견딘 웅녀는 삼칠일(21일) 만에 동굴을 벗어나 사람으로 거듭났다. 100일은 ‘수능 디(D)-100’, ‘월드컵 디-100’처럼 신발 끈을 고쳐 매는 ‘카운트다운’의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17일은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의사당 뜰에서 취임 선서를 한 지 100일 되는 날이다. 대통령의 임기 5년은 1825일이니, 100일은 전체 임기의 5.48%, 대략 20분의 1에 해당한다. 뭔가를 보여주고 평가받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기간이지만, 5년의 기틀을 잡는 임기 초반이라 가중치가 높고 시선이 집중된다. 성적표는 좋지 않다. 국정수행 지지도가 절대적 기준은 아니라 해도, 25%(한국갤럽) 지지율은 심각하고 위험한 수치다. 국민 20명 중 5명만 지지한다는 뜻이니 국정 수행에 힘이 부칠 수밖에 없다. 취임 100일에 역대 대통령 지지율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83%로 가장 높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엠비)이 21%로 제일 낮았다. 각자 여건이 달라 단순 비교는 무리지만, 윤 대통령 지지율은 엠비보다 약간 높은 수준에 불과하다.
축하하고 축하받을 분위기가 아니다. 취임식장에 장엄하게 울려퍼졌던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1번은 당분간 다시 틀기 어려워졌다. 오히려 심기일전, 환골탈태 같은 말이 더 어울리는 시점이다.
강희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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