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주한대사 신임장 제정식에 입장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세상읽기] 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
이번 정부가 지금까지 내놓은 정책들의 공통점은 ‘왜?’가 없고 ‘어떻게’만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태로는 시민을 설득할 수 없다. 시민이 이해할 수 없는 정책이 쏟아지는 상황은, 단순히 대통령 지지율을 떨어뜨리는 문제를 넘어 5천만의 안전과 생활을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모든 정책은 ‘왜 지금 그 정책을 해야 하는데?’라는 시민들의 지극히 당연한 질문에 대한 답이 전제되어야 한다. ‘왜’를 논하는 과정에서 찬성과 반대 의견이 형성될 수 있고, 다수의 찬성을 얻으면 힘 있게 추진될 수 있으며 반대가 많으면 철회되기도 한다. 대선 공약도 반대가 높으면 철회하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규칙인 만큼, 정책이 철회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이 정부의 문제는 정책을 내놓을 때도, 철회할 때도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못 하기 때문에, 시민들을 온갖 추론에 기대게 하고 혼란을 심화시킨다는 점이다.
‘인사 검증을 왜 법무부가 해야 하나?’라고 물으면 지난 대선 대통령 캠페인 7자 메시지처럼 ‘지난 정부 민정수석의 전횡 때문’이라는 단답이 돌아온다. 캠페인은 그렇게 할 수 있었겠지만, 5천만을 설득해야 하는 정책결정자의 입장에서 나와야 하는 답이 아니다. 지난 정부 민정수석의 전횡이 무엇이었는지를 설명한 다음, 대통령실의 새로운 편제나 인사혁신처 개편과 같은 다른 대안이 아닌 법무부여야 하는 이유를 말해야 한다. 그러나 이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은 채, ‘시행령을 개정했으니 가능하다’고 한다.
‘행안부가 왜 경찰을 직접 통제하려 하나?’라고 물으면 ‘비대해진 경찰권력을 통제하기 위해’라고 답한다. 경찰권력이 어느 부분에서 불필요하게 비대해졌는지, 그래서 시민들에게 어떤 피해가 있는지를 설명한 다음, 법적 기구인 국가경찰위원회가 아닌 행안부여야 하는 이유를 말해야 한다. 그런데 이유를 들어 시민을 설득하는 단계를 훌쩍 뛰어넘더니 ‘시행령을 개정했으니 가능하다’고 답한다. ‘5살 입학이 왜 필요한가?’라고 물으면 ‘평등한 교육권을 위해서’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답이 돌아온다. 대체 그게 무슨 관계냐고 물으면 ‘몇년에 걸쳐서 이렇게 하면 된다’고 한다.
‘왜 지금 공무원을 감축해야 하나?’라고 물으면 ‘지난 정부에서 너무 많이 늘어서’라고 한다. 늘었다는 것 자체가 답일 수는 없다. 어떤 정부든 필요하면 증원하는 것이다. 공무원 정원 축소를 추진했던 이명박 정부도 결국 정원을 늘렸다.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정부가 설명해야 하는 건 늘어난 공무원이 ‘왜 불필요한지’다. 지난 정부는 소방공무원, 경찰공무원, 교육공무원을 많이 증원했는데, 이게 왜 문제 있는 증원이었는지를 말해야 그다음 단계로 어떻게 줄이겠다는 대책이 논의될 수 있다.
결국 정원을 확대했지만, 임기 초반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표방했던 이명박 정부는 ‘정부를 슬림화하면 국가경쟁력이 상승하고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이게 글로벌 추세다’라는 논리로 시민을 설득했고, 당시엔 이 논리가 받아들여졌다. 지금은 전혀 다르다. 기후위기, 감염병 위기 등을 겪으면서 필수공공서비스 영역이 확장되고 있는 게 글로벌 추세이고, ‘시장과 경쟁하지 않는 작은 정부’는 이미 빛바랜 이론이 된 지 오래다. 이런 시대에 다시 ‘작은 정부’를 말하려면 뭔가 새로운 논거를 제시해야 한다. 몇년에 걸쳐서 몇%를 감축하겠다는 건 그다음에 논할 일이다.
이 정부의 정책과정이 왜 이런지 진단은 둘째 치고, 우리 모두를 위해 대안이 시급하다. 당장 ‘왜’에 대한 답을 할 능력을 보강해야 한다. 대통령실 안에 레드팀을 만든다고 될 일이 아니다. 집권당과 야당에 넓게 조언을 구하고, 관련 분야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먼저 ‘왜’에 대한 근거를 갖춰야 한다. 이전 정부의 정책을 자료에 기반해 진단하고 사회변화의 맥락에서 이유를 분명히 하고 왜 다른 대안 중에 이 대안이 채택되었는지를 설명할 능력을 보강해야 한다. 명분과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면 하고 싶다는 욕망을 자제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실과 국무회의, 집권당이 이 능력을 보강하지 않으면 현재의 국정 난맥상은 극복될 수 없다. 정부가 계속 이 상태로 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5천만의 몫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