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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치매 걸리느니 죽는 게 낫다고? 진짜? [김은형의 너도 늙는다]

등록 2022-08-03 19:29수정 2022-08-04 02:35

영화 <더 파더>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
영화 <더 파더>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

김은형 | 문화부 기자

지난 칼럼에서 ‘장수지옥’ 시대에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을 ‘커밍아웃’했더니 주변에서 여러 사람이 물어왔다. ‘왜지? 왜야?’ ‘그 이유 살짝 귀띔 좀 해줘 봐’ 등등. 흥, 몹시도 궁금해하는 걸 보니 자기들도 같은 마음이군.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뿐. 이제 오래 살고 싶다는 말은 내 어릴 적 장식장 티브이에서 보던 <장수만세>에나 등장했을 법한 대사가 되어버린 걸까?

오래 살고 싶은 이유에 앞서 의문이 든다. 추한 꼴 보이지 않고, 주변에 폐 끼치기 전에 죽어야 정말 좋은 죽음일까. 우리가 흔히 “저런 꼴 당하기 전에 죽어야지”라고 말하는 건 육체나 정신에 대한 자기통제권을 상실한 부모나 누군가의 부모 이야기를 들을 때다. 강인하고 억척스럽게 자식들을 길러낸 부모가 기저귀를 차고 누워 있거나, 치매에 걸려 자식도 못 알아보는 지경에 이른 모습을 보는 자식들의 참담한 심경이 반영된 말이다. 기약도 없이 이어지는 병수발에는 장사가 없으니 이해 안 되는 바는 아니다. 문제는 이런 말이 개인의 고통이 아니라 사회적 통념, 노인혐오에 대한 명분으로 굳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지원이 강화되어야 할 개인(노인 당사자와 보호자)의 고통은 사라지고 병든 노인은 쓸모없는 존재, 무가치한 존재, 다음 세대의 어깨에 올라타 그들을 착취하는 존재로만 남게 된다.

난리 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 등 장애나 불치병을 가진 사람들의 ‘살 가치’에 대한 대사가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이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리고 완치가 불가능한 병을 앓고 있는 노인에게도 고스란히 해당하는 말이다. 그런데 ‘쪽수’가 많아서일까. 노인 문제는 오로지 비용, 고령화사회의 비용 문제로만 접근한다. 몇십 년 뒤면 노령인구가 얼마나 늘고, 생산연령인구가 부양해야 할 노령인구가 1인당 몇명이 된다, 이런 이야기뿐이다. 이러니 늙어가는 이웃들이 다 내 자식 등쳐먹을 파렴치한으로 보이고 나라도 폐 끼치기 전에 죽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75살이 되면 국가가 죽음을 권하고, 폐 끼치지 않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이들을 그린 영화 <플랜 75>가 나의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다.

추해진다는 건 뭘까. 돈 걱정을 뺀다면 노년에 대한 공포 중 가장 큰 건 치매다. 젊은 시절의 이성적이고 다정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주변 사람을 도둑으로 의심하거나 아이처럼 먹는 것에 집착하거나 횡설수설하고 소리 지르고, 끝내 가족도 못 알아보면서 웅크린 짐승처럼 변해가는, 한없이 추해지는 인생의 말로.

섬세한 보호자가 아닌 이상 치매 환자의 육성을 제대로 들을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치매는 곧 정신을 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치매에 걸리느니 죽는 게 낫다거나, 치매에 걸리면 곧바로 요양원에 보내라고 당부하겠다는 말을 쉽게 한다. 실제로 안락사를 허용하는 네덜란드에서 2014년 치매로 안락사를 선택한 81건 중 대부분이 치매 초기의 결정으로, ‘치매의 고통’을 예상하고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영화 <더 파더>나 다큐멘터리 감독인 딸이 엄마의 치매 진행에 대해 쓴 <치매니까 잘 부탁합니다>에는 치매 당사자의 마음이나 생각이 비교적 잘 담겨 있다. 알려졌다시피 <더 파더>는 치매 당사자의 시각으로 진행된다. 삼십년 동안 살아온 내 집에 ‘침입’한 남자는 자신이 이 집의 주인이고 딸의 남편이라고 주장한다. 극 중 “언제까지 이 집에서 나가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줄 거냐”고 묻는 그 남자, 즉 사위의 말은 치매를 바라보는 제삼자의 입장이다. 이런 혼란에 가장 고통스러운 건 치매 당사자다. <치매니까 잘 부탁합니다>에서 치매에 걸리기 전 매일 가계부의 잔돈까지 맞추고 잠자리에 들던 엄마가 가계부에 알 수 없는 글자들을 써놓고 저자가 다가오자 황급히 덮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그냥 ‘미쳐서’ 의미 없는 낙서를 한 게 아니라 엄마 스스로 간단한 계산도 못하는 인지력 감퇴에 당황하고 수치스러워한다. 영화 속 아버지나 책 속 엄마는 무너져가는 정신 앞에서 병증 전의 자신, 즉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려고 몸부림친다. 이런 안간힘이 점점 더 강해지는 병증에 서서히 패배하는 과정이 치매라는 걸 책과 영화는 보여준다. 노인혐오라는 필터에 걸러지지 않은 치매의 진짜 모습은 이런 게 아닐까.

내가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정확히 말해 나이가 들고 육체나 정신이 훼손되더라도 죽는 게 낫다거나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는 거다. 아프면 아픈 대로, 망가지면 망가지는 대로 삶에 대한 애착이 있고, 내 삶을 지켜나가기 위한 분투가 있다. 그런 분투 과정에 인간의 존엄이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노인혐오 프레임에 갇혀 자기결정권이라는 허울로 죽음을 재촉(당)하는 건 아닌지 되새겨볼 일이다.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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