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제에서 권력의 크기는 대통령과의 ‘거리’에 반비례한다. 장관급인 대통령비서실장은 국가 의전 서열 17위지만,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핵심 참모인 만큼 실질 서열은 훨씬 높다. 또한 대통령을 향한 비판이 쏟아질 때, ‘화살’을 대신 맞고 책임지는 자리이기도 하다.
대통령비서실 직제에 규정된 대통령비서실장의 업무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대통령비서실의 사무를 처리하고 소속 공무원을 지휘 감독”하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 업무는 국정 전반에 걸쳐 있다. 각 수석실이 부처별 정책을 분석해 집행 가능성과 갈등 소지 등을 점검하고, 실장은 이를 총괄하며 부처 간 이해관계 및 정부-국회 간의 이견 등을 조율한다. 국정 현안이 대통령에게 최종 보고되기 전 마지막 길목에 비서실장이 있는 셈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비서실장은) 대통령을 등에 업은 조정자”라고 규정했다. 이에 비서실장에게는 행정력, 추진력, 소통능력 등의 자질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도널드 럼스펠드는 “대통령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날카롭게 짖어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역대 대통령비서실장의 권한은 막강했지만 성향은 제각각이었다. 박정희 정권의 이후락 비서실장은 인사·공천 등에 두루 개입하며 위세를 떨친 반면,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류우익 비서실장은 “얼굴도 없고 입도 없는 사람”을 자처했다.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실정’을 대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류 실장은 ‘광우병 사태’가 격화되자, 민심 수습 차원에서 취임 넉달 만에 사퇴했다. 박근혜 정부의 허태열 비서실장은 잇따른 총리·장관 후보자 낙마의 책임을 지고 다섯달 만에 물러났다.
윤석열 정부의 초대 비서실장인 김대기 비서실장에 대해 그간 여권에선 ‘존재감이 없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에는 인적 쇄신의 핵심 타깃이 됐다. 죄명은 ‘대통령 보좌 실패’다. 잇따른 정책 혼선과 지지율 폭락 등에 대해, 대통령 대신 비서실장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윤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 것과 마찬가지다. 강력한 쇄신 의지를 보이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이 답해야 한다.
최혜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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