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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봉규의 사람아 사람아] 나치의 시신 해부대는 반짝거렸다

등록 2022-08-02 17:40수정 2022-08-03 02:37

제노사이드의 기억 독일 _05
해부실은 전체가 하얀색으로, 바닥부터 중간 높이까지 모두 흰 타일로 시공되어 있었다. 해부 도구 보관 사물함도 타일 외관이었다. 피가 범벅되어도 물만 부으면 깔끔해질 것 같은 하얀 타일의 해부대 중앙에는 시체에서 흘러나온 혈액이나 체액이 고이지 않고 흘러내릴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 내 해부실에는 인체 해부가 많았다는 것을 방증이라도 하듯 똑같은 해부대 두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해부대 중앙에는 시체에서 흘러나온 혈액이나 체액이 고이지 않고 흘러내릴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해부대는 전체가 하얀색 타일이어서 지금도 반짝거리고 있었다. 베를린/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 내 해부실에는 인체 해부가 많았다는 것을 방증이라도 하듯 똑같은 해부대 두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해부대 중앙에는 시체에서 흘러나온 혈액이나 체액이 고이지 않고 흘러내릴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해부대는 전체가 하얀색 타일이어서 지금도 반짝거리고 있었다. 베를린/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백색 타일의 시신 해부대는 반짝거려서 눈이 부셨고 표면은 차가웠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나치가 세운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 내 병리 해부실의 첫 느낌이었다.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치 시절 강제수용소는 인체 실험을 위한 해부실을 갖추고 있었다. 그 형태는 같거나 비슷했고, 근처에는 화장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베를린 시내에서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는 에스반(S-Bahn) 전철을 타고 한번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전철은 빠르게 달려서 유리창 너머로 내려다본 옆 철길은 사람의 눈에는 정지되지 못하고 스쳐서 지나가버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빨려드는 것처럼 환상에 빠져들게 했다. 이 철길도 나치 시절 유대인을 비롯한 장애인, 동성애자, 집시 등이 강제로 끌려갔던 죽음의 철길이었다. 2017년 4월 말에 들렀을 때 마침 이곳에서 학살당한 동성애자들을 위한 추모식이 열리고 있었다. 작센하우젠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주로 나치 체제를 반대하는 반사회적 대상자 등을 감금했다가 그 뒤엔 학살 대상자들을 강제수용했다. 베를린 시내와 가까워서 아우슈비츠처럼 학살을 대놓고 벌였다간 흉흉한 소문이 날까 봐 그랬는지 인체 실험과 수감자들의 시체를 가지고 병리학 실험을 벌인 강제수용소로 알려져 있다.

병리학 건물 내 해부실은 전체가 하얀색으로 색칠되었는데 바닥부터 중간 높이까지는 모두 흰 타일로 시공되어 있었다. 해부 도구들을 보관하는 사물함도 타일 외관이었다. 피가 범벅되어도 물만 부으면 깔끔해질 것 같은 하얀 타일의 해부대 중앙에는 시체에서 흘러나온 혈액이나 체액이 고이지 않고 흘러내릴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해부대는 어른 허리 높이였는데 전체가 하얀색 타일이어서 지금도 반짝거렸다. 인체 해부가 많았다는 것을 방증이라도 하듯 똑같은 해부대 두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해부실의 창문은 널찍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한낮엔 창으로 들어오는 빛만으로도 해부가 가능했을 것이다. 커다란 창문은 밖에서도 해부실이 훤히 보여서, 가리거나 숨길 필요 없이 대놓고 인체 실험이나 해부를 한 듯했다. 수감자 막사가 바로 옆으로 보였다. 지하에는 해부용으로 사용할 시신들을 모아두던 안치실이 있었는데 크기는 100여구를 보관할 수 있는 넓이였다. 해부실과 지하 시신보관소를 살펴보는 관람객은 소수에 불과했다. 나는 해부실을 촬영하려고 꽤 오랜 시간을 머물렀는데 딱 두 사람만 들어왔었다. 사람들은 들어서기를 망설이다가 밖에 있는 안내문만 읽고 지나쳤다. 어두운 지하 시신보관소와 해부실을 나서 밖으로 나오니 수용소 뜰에는 여러 색의 들꽃들이 봄볕에 만발해 있었다. 그 꽃들을 보고 나서야 서늘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뒤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 때 나치 시절 불법 인체 실험에 관여한 23명의 의사와 과학자에 대한 별도의 재판도 열렸는데 7명이 교수형을 받았다. 적용된 죄목을 보면 냉동 실험, 독가스 실험, 근육 및 신경 재생과 뼈 이식 실험, 바닷물 주사 실험, 산 채로 해부하기 등 열거하기도 끔찍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인체 실험 연구윤리 10개 조항을 명시한 ‘뉘른베르크 강령’을 포함해서 발표했다. 강령 첫번째가 “인체 실험 대상자의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자발적인 동의’는 절대적으로 필수”이다. 이후 강령이 수정 및 보완되어 ‘헬싱키 선언’(1964년 세계의사회가 채택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의학 연구에 대한 윤리적 원칙’)이 나오게 되었다.

나치 시절 생체 실험을 생각하면,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의사 요제프 멩겔레가 떠오른다. 그의 조수였던 의사 미클로시 니슬리의 증언에 따르면 멩겔레는 40여만명을 가스실로 보냈고 사람의 언어로는 표현하기에 끔찍한, 난쟁이들과 쌍둥이들에 대한 생체 실험뿐만 아니라 온기가 있는 장기들을 해부한 뒤 ‘긴급 전시 물자’라는 도장을 찍어 외부 의학연구소나 인류학박물관에 보냈다. 나치 우생학의 신봉자 멩겔레는 생쥐, 개, 돼지, 원숭이보다 인간만큼 좋은 실험 표본이 없다고 여겼다.

2005년 4월 통신사 <로이터>는 독일이 나치 시절 강제수용소 생체 실험에서 생존한 714명에 대해 보상한다고 보도했다. 보상금 지급을 결정한 곳은 과거 나치에 의해 피해받은 이들을 돕기 위해 독일 정부와 기업이 참여해 설립한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Remembrance, Responsibility and Future)라는 재단이다. 재단은 “나치 독일의 생체 실험 희생자 대부분은 야만적이고 극심한 고통 때문에 살아남지 못했다”고 밝혔다.

김봉규 | 사진부 선임기자
다큐멘터리 사진집 <분단 한국>(2011), <팽목항에서>(2017)를 출간했다. 제주 4·3 학살 터와 대전 골령골을 비롯해 전국에 흩어진 민간인 학살 현장을 서성거렸다. 안식월 등 휴가가 발생하면 작업지역을 넓혀 캄보디아 ‘킬링필드’를 비롯한 아시아, 폴란드 전역과 독일, 네덜란드, 체코, 오스트리아 등 나치 시절 강제 및 절멸수용소 등을 15년 넘게 헤매고 다녔다.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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