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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매일매일 실패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록 2022-07-31 18:22수정 2022-08-01 02:34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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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명인(命人) | 인권교육연구소 ‘너머’ 대표

‘타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말은 모든 인간관계의 만병통치약처럼 참 흔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특히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존중하고 배려하고 싶지만, 그러기가 더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한다.

중증장애인 동료와 함께 활동하면서 장애에 대한 내 인식이 꽤 성장했다고 느끼고 있을 때쯤의 일이다. 나는 그와 둘이 밥을 먹을 때 식사보조를 하면서 그에게 자주 잔소리를 했다. “천천히 먹으라니까. 숟가락에 이렇게 왕창 떠 달래서 씹지도 않고 그냥 삼키니 위장이 좋을 리가 있어?” 어느 날 그 모습을 본 선배가 혀를 찼다. “네가 활동보조를 너무 못하니까 얘가 밥을 빨리 먹지.”

아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식사보조를 할 때 나는 그에게 먼저 밥을 먹이고 내 밥을 먹었다. 내 딴엔 그게 당연한 배려였다. 그런데 그러면 내가 먹을 국이나 찌개는 식어버린다는 걸 아는 동료가 나에게 미안해서 매번 밥을 빨리 먹은 것이다. 활동보조에 나보다 훨씬 익숙한 선배는 그에게 먹이면서 동시에 자기도 잘만 먹었다. 그리고 그는 내가 나름대로 골고루 집어 주는 대로 먹던 것과 달리, 선배에겐 이거 달라, 저건 싫다 하면서 자기 식성대로 먹고 있더란 말이다. 내 배려가 나를 배반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비장애인 사이에서는 존중과 배려가 쉬울까? 똑같이 힘든 일을 겪고 있어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이 있어주는 게 배려지만, 어떤 사람에겐 당분간 모르는 척해주는 게 배려다. 같이 있어주길 바라는 사람이라도 어떤 사람에겐 그냥 들어주는 게 배려인데, 어떤 사람에겐 적극적으로 조언을 해주는 게 배려다. 우리의 선의는 이렇게 무시로 우리를 배반한다.

편의점에 갔는데 직원이 창고에서 일하고 있어서 계산대에 아무도 없을 때, 나는 바쁜 직원을 배려한다고 직원이 내가 온 것을 알아차릴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그런데 노동인권교육 시간에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학생이 말했다. “아, 쌤. 손님이 기다리고 있는 걸 알게 되면 뛰어가고, 부르면 걸어가요.”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왜 국에 밥 말았어? 싫단 말이야. 싫단 말이야. 이제부턴 나한테 물어보고 국에 말아 줘. 꼭 그래야 돼.” 작곡가 백창우가 가락을 붙인 이 동요의 가사는 조민정 어린이의 일곱살 때 말이다.

이 사회의 구조와 사회가 굴러가는 작동 방식을 모르면 나의 배려는 상대에게 오히려 불편이 되는 경우도 흔하다. 그래서 존중과 배려는 끊임없이 배워야 할 지식이다. 그것도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는 수학공식 같은 지식이 아니라 사람에 따라, 경우에 따라 경험을 나눠야만 배울 수 있는 지식.

존중과 배려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면, 우리는 노리나 허츠의 말처럼 ‘좋아요’와 ‘리트위트’의 ‘초연결 세계에 격리’된 채,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는 ‘고립의 시대’를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나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엄마 노릇의 경험을 떠올린다. 같은 배에서 나왔어도 아이들은 너무 달라서 첫아이에게도 처음, 둘째 아이에게도 처음이었던 엄마 노릇. 같은 아이라도 나는 아이의 다섯살도 열여덟살도 매번 처음이라 당황했던 경험. 그러므로 엄마 노릇 역시 실패를 거듭하면서 늘 새롭게 배워야 했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건, 다른 생각, 욕망, 다른 습관들 사이에서 자주 갈등하고 좌절하고 때로는 억울함과 피곤을 감수하면서, 끊임없이 서로의 필요에 감응하고 협상하고 사이를 조정하면서, 덜 외롭고, 기쁨과 보람을 얻고, 나 자신의 성숙과 확장을 경험하는 일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타인에게 마냥 좋은 사람이긴 실패랍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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