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안희경 | 재미 저널리스트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를 타고 평촌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길, 어둠조차 씻어버릴 기세로 퍼붓던 밤비는 해를 만나 부슬부슬 잦아들었다. 병풍처럼 이어지는 산골짜기에서는 마치 옛 시골집 굴뚝에서 오르던 밥 짓는 연기처럼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멀리 백운호수에도 물안개가 넘실거린다. 운전대를 잡고 힐금거리며 그 모두를 기억하려고 나는 눈에 든 장면을 문장으로 바꾸며 읊조렸다.
아침의 아름다움을 찬찬히 흡수하는 사이로 그제의 일이 들어왔다. 어머니와 함께 경상북도 봉화를 거쳐 김천에 있는 산속 암자로 향하던 길이다. 봉화 청소년미래환경센터에서 열리는 재외동포 청소년 모국연수를 마치고 나오는 딸을 마중하며 떠난 여행이다. 웬만하면 나가지 않으려는 나와 달리 어머니는 나들이를 참으로 좋아하신다. 오빠와 나를 낳고부터 몸이 약해져서 늘 아버지를 쩔쩔매게 하셨지만 집 밖에만 나가면 쌩쌩해지셨다. 다만 돌아오면, 여행의 피로 때문인지 일상으로 복귀한 무게 때문인지 꼬집어 분류해낼 수는 없지만 짜증을 감추지 못하셨다. 어질러진 집과 흐트러진 다 큰 아이들의 모습이 당신 마음처럼 일사불란하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 속에서는 전국 곳곳, 세계 도처의 아름다움을 보고 와서는 왜 저러는지 알 수 없다는 삐딱함이 매번 옹이를 틀고 웃자랐다. 지금은 여든넷 나이에도 장시간 차 타고 나갈 마음이 동하는 어머니의 체력만으로 나는 안도한다. 이번엔 발길을 멈춘 지 9년 만에 손녀를 앞세우고 김천에 가서인지 설레하셨다. 창건 때부터 30여년을 매달 기차 타고 정성을 모아 다녔던 절이다.
새벽에 출발했고, 산길은 곳곳이 공사 중이었지만 멈춤 없이 달릴 수 있었다. 오래된 자동차도 꿋꿋이 고갯길을 올라주었다. 늦지 않게 딸을 만났고 강원도와 맞붙은 봉화에서 충청남도와 맞붙은 추풍령 자락 김천으로 향했다. 가는 길이 온통 진초록의 향연이었다. 어머니께서 한마디 하셨다. “참 곱다. 예전에는 그렇게 다녀도 여름다운 초록이려니 했는데, 지금은 마음에 콕 박히네. 아주 아름답다.” 먹먹해졌다. 삼키신 말이 있을 것 같았다. 혹, ‘또 볼 수 있을까?’는 아닐지.
문득 밥상머리에서 장성한 손자들 밥 위에 생선 살을 올려주는 어머니의 손길에도 그 마음이 서려 있지 않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물론 청년인 그들은 멋쩍어하고, 성가셔한다. 덩달아 내 마음도 복잡해진다. 그럼에도 요즘 들어 부쩍 ‘나는 바닷가 원산 출신이라서 생선 먹는 데는 전문가라 가장자리는 내가 발라야 알뜰히 다 먹을 수 있다’는 말을 자주 하신다. 나 자랄 때도 어머니에게 그런 경향은 있었지만, 결은 그때의 긴장 어린 영양 챙기기나 ‘나의 정성에 보답하여 맛나게 먹어라’라는 압력과는 멀어졌다. 당신이 여자라서 생선 대가리, 꼬리, 가장자리를 먹을 때 더 편하다는 인식의 습관은 여전해도 삶의 순간에 대한 정성이 짙어지신 것 같다.
한국에 있는 요즘 내가 분명히 알아차리는 나의 감정이 있다. 주로 혼자 운전할 때인데, 백운호수를 비껴 돌 때, 관악산을 마주하며 질주할 때, 한강을 건널 때,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보려 애쓴다. 내게는 빨라야 내년에나 마주할 수 있는 정경들이다. 그리움으로 조우하는 애틋한 아름다움들. 유한함을 느끼며 주시하는 시간은 긴장을 높이는 집중과는 다르다. 매직아이를 들여다보는 움츠린 집중, 시험 답안을 찾는 곤두선 집중과는 달리 지금 몸이 있는 그곳에 나의 마음을 데려와 머무는 가라앉은 집중이지 싶다. 내게 산천을 휘감은 초록에 관한 어머니의 감상은 인간으로서의 수명을 거진 누렸다는 생각 속에서 이제야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온 마음을 채운다는 말로 다가왔다. 어머니의 마음이 자리한 지점으로.
누구나 유한하게 누릴 수밖에 없는 그 시간 속에서 실제를 알아차리고 마음의 심도를 낮춘다면, 생각의 폭은 확장될 기회를 가질 것이다. 내 곁에 있는 구체적인 존재들이 마음으로 들어오고, 그 존재들의 연결이 지표를 뒤덮어 이어지고 있다는 시야도 트일 것이다. 자연스레 마음이 기울어지며 함께 살 길을 찾는 보살핌의 결도 열리지 않을까?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은 망가지고 깨지는 것을 바라보는 마음의 힘을 강조한다. 망가지는 상황을 직시하면서 나름의 생기를 만들어내는 힘이 우리 안에서 일어날 수 있음을 기억시킨다. 그 힘이 물기 어리는 계절, 지표면을 뒤덮는 풀처럼 퍼지길 바란다. 내 안에서도, 당신 안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