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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국판 탈아입구와 ‘동양의 헌병’

등록 2022-07-28 18:03수정 2022-07-29 02:38

지난달 29일 첫 해외 순방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이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첫 해외 순방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이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파원 칼럼] 이본영 | 워싱턴 특파원

한달 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 두 동아시아 정상이 참석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다. 기시다 총리는 직전에 독일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도 참여했다. 지난해 영국에서 열린 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는 ‘정회원’이 아닌 문재인 당시 대통령도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북미와 유럽의 기구인 나토 정상회의는 아시아·태평양 4개국(AP4, 한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을 특별히 초대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는 백인이 주류인 영연방 국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일 정상의 참석은 ‘이질성’이 더 두드러진다. 백인 일색이던 풍경이 바뀌었다.

잇따라 열린 정상회의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국력 향상을 상징한다. 일본은 이미 1970년대부터 주요 7개국 구성원이었다. 일찍이 탈아입구(아시아를 벗어나 서구와 운명을 함께함)를 부르짖은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화하기 전부터 그런 목표를 어느 정도 이룬 국가다. 다만 태평양전쟁 패전의 그늘에서 국제적 지위의 완전한 복권이 미뤄져왔을 뿐이다. 비슷한 처지였던 독일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재무장 필요성이 부각돼 역시 완전한 복권을 눈앞에 두게 됐다.

일본과 독일이 옛 지위를 회복하는 과정이라면, 늘 약소국이었던 한국의 지위 향상이야말로 가장 특기할 만하다. 일본의 탈아입구론이 내포한 이웃(한국과 중국)에 대한 비하와 지배 의지를 빼놓고 생각하면, 한국도 탈아입구에 성공한 경우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서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됐으니 말이다. ‘글로벌 코리아’라는 구호가 귀에 박힐 정도가 됐다. 안보동맹을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격상하자는 5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는 ‘글로벌’이라는 말이 21차례 등장한다.

이 시점에서 ‘글로벌 코리아’가 어떤 맥락에서 호명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세계에는 정치·군사적 갈등과 대결, 경제적 이기주의, 빈곤, 기후위기, 전염병까지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수두룩하다. 한국은 이미 주요 7개국의 확장판인 주요 20개국(G20) 등에 속해 국제 현안 관여를 강화해왔다. 어려울 때 원조를 받아 일어섰으니 다른 빈국들을 도와야 할 도덕적 책무도 있다.

하지만 군사적 역할 확대는 전혀 다른 문제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는 시기에 서구 열강은 일본에 ‘동양의 헌병’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함께 중국을 다루고 러시아를 저지하는 데 일본이 맡은 역할을 평가하는 표현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영-일 동맹도 구축하고, 미-일이 각자의 필리핀 지배와 조선 지배를 양해하는 ‘가쓰라-태프트 밀약’도 맺었다. 일본은 ‘동양의 헌병’ 노릇에 만족하지 못하고 중국을 독식해 ‘동양의 총사령관’이 되려다 미국 등 서구와 사이가 틀어졌다.

윤 대통령이 참석한 나토 정상회의는 새 전략 개념에서 처음으로 중국을 ‘구조적 도전’으로 규정했다. 혼자 중국을 상대하기가 버거운 미국은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의 일치단결을 추진한다.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도 그런 차원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의 군사력 강화와 도전적 언사를 지켜보는 한국인들이 불안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글로벌 코리아’가 자칫 과도한 보폭으로 미-중 갈등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거나, 한국을 ‘동양의 헌병 2중대’로 만들 가능성은 경계해야 한다. 정면충돌로 치달을 때 어느 편을 들든 한반도에 치명적인 경우가 여러 번이었다. 대접 좀 받았다고 우쭐할 게 아니다. 어렵더라도 ‘글로벌 코리아’가 갈등을 진정시키는 쪽으로 기능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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