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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옥스퍼드대는 올 가을부터 신입생과 특별한 계약을 맺는다. 학생은 수업·실습·시험 등에 충실할 의무를, 대학은 적절한 지도·강의·세미나를 제공할 의무를 진다는 내용이다. 단지 성실히 배우고 가르치자는 면학 각서가 아니다. 만일의 소송에 대비해 학교-학생 사이 책임과 권리를 명확히 하자는 취지다.
이 대학이 ‘학습권 소송’을 대비하려는 건 누적된 재정 압박으로 등록금을 크게 올려야 할 상황에서 나온 고육책이다. 학생들이 부실한 강의 등을 문제삼아 ‘등록금 값을 하라’며 법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진 탓이다. 실제 대학의 배상을 받아낸 전례도 있는 터이니 전전긍긍할 만하다. 학생들은 벌써부터 ‘불평등 계약’이라는 비판을 쏟아낸다고 한다. 계약서에 학교 쪽은 포괄적 의무만 규정한 반면, 학생 의무는 시시콜콜 열거해, 입증 다툼에서 훨씬 불리하다는 이유에서다. 교수들의 목소리는 이젠 대학도 계약과 소송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자조뿐이다.
이와 달리 영국 교사들은 소송 부담을 크게 덜 전망이다. 영국 정부는 교사들이 학교 밖 생활지도 때 흉기나 술, 마약 같은 부적절한 물건을 단속할 권한을 주는 법률을 추진 중이다. 교사의 ‘완력을 사용한 불법적인’ 단속에 맞선 문제 학생들의 소송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교육적 효과 논란과 인권침해 시비가 있지만 집권 노동당은 이 법안을 ‘존경회복 운동’의 핵심 정책으로 삼겠다는 태도다.
요즘 주요 사립대학이 등록금을 크게 올리는 걸 보면 영국식의 이런 ‘교육 법치주의’가 남 얘기만은 아닌 듯싶다. 우리 정부도 학교폭력 근절을 위해 교사들한테 특별 사법경찰권을 주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게 현실 아닌가. 그러나 교사가 학생한테 훈계나 체벌 대신 미란다 원칙을 고지해야 할지도 모를 상황은 낯설고 살벌하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도 실토하지 않았는가. “존경은 법으로 생길 수 없다”고.
김회승 논설위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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