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고명섭의 카이로스] 억압된 것들은 다시 돌아온다

등록 2022-07-26 18:14수정 2022-07-27 02:35

정치의 영역도 다르지 않다. 지난 정권이 한 일을 단순히 부정하고 지우기만 하는 방식으로 새 정권의 권위를 세우고 정당성을 얻으려 하면, 그 억압된 힘은 머잖아 머리를 꼿꼿이 들고 돌아오게 된다.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말년 작품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말년 작품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는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의 말년 작품이다. 로마 신화의 사투르누스는 자식들이 자신을 왕위에서 몰아내리라는 저주를 받고 자식이 태어나는 대로 집어삼켰다. 고야의 그림 속 사투르누스는 자식을 잡아먹는 중에도 두려움에 벌벌 떠는 것처럼 보인다. 자식이 되살아나 자신을 공격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는 정신분석학의 탄생을 알린 <꿈의 해석>에서 일고여덟살 때 겪은 일화 한토막을 이야기한다. 어린 프로이트가 부모님 방에 들어가 오줌을 쌌는데, 그 모습을 본 아버지가 화를 내며 ‘크게 되기는 글렀다’고 나무란 것이다. 프로이트에게 이 일은 기억 속에 아주 깊이 각인됐던 모양이다.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틀림없이 내 공명심에 엄청난 모욕이었을 것이다. 이 장면이 두고두고 꿈속에서 암시되고, 그럴 때마다 내 업적과 성공이 보란 듯이 열거되기 때문이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자 보세요. 나도 이만하면 성공했잖아요.’”

아버지가 준 ‘모욕’에 자신이 ‘크게 됐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복수한 셈이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대로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에서 자기 자신을 분석의 재료로 삼아 정신분석학이라는 집을 지었다. 그 정신분석학의 중심을 이루는 것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다. <꿈의 해석>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해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저작에서 프로이트는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왕>이 현대인들에게도 충격을 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는 이렇게 말한다. “오이디푸스에게는 운명이 강요하는 힘을 인정하도록 만드는 우리 내면의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이 틀림없다. (…) 아버지 라이오스를 살해하고 어머니 이오카스테와 결혼한 오이디푸스왕은 우리 어린 시절의 소원이 성취된 것일 뿐이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아버지 자리를 차지하려는 자식의 무의식적 욕망을 가리킨다.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개인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힘이자 인간의 문화를 두루 규정하는 힘이라고 보았다. <꿈의 해석>을 내고 10여년 뒤에 쓴 <토템과 터부>에서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종교·도덕·사회·예술의 기원이 집중돼 있다.” 아버지를 살해하려는 무의식적 충동이 인류 문화의 보편적 창조 원리라는 얘기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문화의 보편적 원리라면, 그 오이디푸스의 아버지는 실제의 아버지일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권위를 체현한 상징적 아버지이기도 할 것이다.

프로이트에게 상징적 아버지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정신의학자 요제프 브로이어였다. 젊은 프로이트는 브로이어에게서 카타르시스 요법을 배웠다. 카타르시스 요법은 최면 상태에서 대화를 통해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 치료법은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프로이트는 브로이어 방법을 발전시켜 자유연상을 통해 환자를 치료하는 길을 열었다. 자유연상은 환자가 최면에 들지 않은 상태에서 머릿속에 연상되는 것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함으로써 장애의 원인을 찾아내는 치료법이다. 이 자유연상법에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그 직후에 쓰기 시작한 것이 <꿈의 해석>이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이라는 저작을 통해 자신이 브로이어라는 ‘학문의 아버지’를 죽이고 그 아버지의 자리에 섰음을 선포한 셈이다. 프로이트 이론상 학문 세계에서 벌어지는 ‘아버지 살해’는 장려해야 할 일이다.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을 출간한 것은 20세기의 문이 열리던 1899년 11월이었지만, 이 책을 집필한 것은 그 2년 전인 1897년 여름부터 겨울 사이였다. 바로 이 시기에, 그러니까 프로이트가 오스트리아 빈의 진료실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서술해 가던 바로 그 시기에,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는 현대 독일 사회학의 창시자인 막스 베버(1864~1920)가 일생일대의 정신적 혼란을 일으킨 사건을 겪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충돌이었다. 베버 사후에 부인 마리아네 베버가 쓴 ‘베버 전기’가 이 사건의 내막을 알려준다.

1897년 여름, 막 하이델베르크대학 정교수가 된 베버를 어머니와 아버지가 방문했다. 베버의 아버지는 명예와 쾌락을 좇는 세속적인 인물이었고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사람이었다. 반면에 어머니는 경건하고 금욕적인 칼뱅주의 신앙인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평생 불화했다. 하이델베르크에 머무는 동안 ‘파탄 난 부부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오래 잠재해 있던 갈등이 폭발했다. “아들은 그동안 누적된 분노를 더는 억제할 수 없었다. 용암이 분출했다. 섬뜩한 일이 일어났다. 아들이 아버지를 재판한 것이다.” 집안과 아내를 지배하던 가부장이 그 아들로부터 심판을 받았다.

탄핵당한 아버지는 그길로 베를린으로 돌아가 위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극심한 우울증이 베버를 덮쳤다. 베버는 강의를 계속할 수 없어 휴직계를 내고 이어 교수직에서 물러났다. 죄책감이 무기력증으로 나타난 것이리라. 아버지를 죽인 아들이 죄의식에 시달린다는 것을 프로이트는 <토템과 터부>에서 이야기한 바 있다. 하이델베르크 교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오이디푸스적 사건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베버는 4년 동안 우울증을 앓은 뒤에야 다시 책과 펜을 잡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쓴 책이 대표작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다. 긴 애도의 시간을 끝낸 뒤에 오이디푸스 갈등을 이겨낸 힘이 창조성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베버가 아버지 사건에 침묵한 것과 달리, 두 세대 선배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스스로 상세히 밝혔다. 밀이 쓴 자서전은 아버지 제임스 밀에 대한 기억을 서술의 기둥으로 삼고 있다. 제러미 벤담의 친구였던 제임스 밀은 벤담주의 곧 공리주의 신봉자였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실현이 인류의 목표라고 믿은 급진적 민주주의자가 밀의 아버지였다. 어린 밀은 아버지의 직접 지도를 받아 세살 때부터 그리스어를 배우고 여덟살 때는 라틴어를 익혔다. 이어 수학·경제학·논리학·자연과학을 공부해 10대 초반에 학문의 기초를 세웠다. 밀은 15살 때 벤담의 저서를 읽고 그 안에서 ‘인생의 목적’을 발견했고 16살 때는 공리주의자협회를 만들었다. 공리주의는 아버지의 법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다 스무살 무렵 위기가 닥쳤다. 의심의 구름이 일더니 하늘을 덮었다. “내 인생의 목적이 모두 실현된다고 생각해보자. 그것이 너에게 큰 기쁨의 행복을 줄 것인가?” 이런 물음에 ‘그렇다’고 답할 수 없었다. 아버지와 벤담의 이상에는 무언가 빠진 것이 있었다. 아버지의 법이 흔들리자 극심한 무기력증이 덮쳤고, 뒷날의 베버가 그랬듯이 한동안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 그 우울의 시기에 밀은 워즈워스와 콜리지를 알게 됐고 그 낭만주의 시인들의 시에서 처음으로 감정의 가치에 눈떴다. 마침내 밀은 아버지의 사상이 무시했던 것, 곧 감정을 계발하고 내면을 닦는 것이 참된 행복에 이르는 길임을 깨달았다.

자서전에서 밀은 아버지를 이렇게 묘사했다. “브루투스가 최후의 로마인이라고 불렸듯이 아버지는 18세기 최후의 사람이었다.” 자신이야말로 아버지를 극복한 진정한 19세기 사람이라는 선언이다. 밀은 아버지와 벤담의 사상을 뛰어넘은 자신을 또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벤담과 아버지의 (…) 급진주의적 사색에 더 넓은 기초와 자유롭고 따뜻한 성격을 부여함으로써 벤담 철학보다 더 뛰어난 완전한 철학이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 밀은 아버지의 급진 민주주의를 더 멀리 밀고 나가 말년에는 페이비언 사회주의의 토대를 놓았다. 밀이야말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창조의 힘으로 바꾼 사람이다.

오이디푸스 갈등을 이겨내는 데는 막대한 심리적 에너지가 든다. 에너지의 소진은 깊은 우울을 부른다. 그 긴장을 감당할 용기와 끈기가 없을 경우엔 어떻게 될까? 오이디푸스적 현실을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방식으로 콤플렉스를 억누르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억눌린 것은 되돌아온다. 프로이트의 용어로 말하면 ‘억압된 것의 귀환’이다. 정치의 영역도 다르지 않다. 지난 정권이 한 일을 단순히 부정하고 지우기만 하는 방식으로 새 정권의 권위를 세우고 정당성을 얻으려 하면, 그 억압된 힘은 머잖아 머리를 꼿꼿이 들고 돌아오게 된다. 인간 삶의 법칙이다.

고명섭

책지성팀 선임기자. <니체 극장-영원회귀와 권력의지의 드라마>, <즐거운 지식-책의 바다를 항해하는 187편의 지식 오디세이>, <광기와 천재-루소에서 히틀러까지 문제적 열정의 내면 풍경>, <지식의 발견-한국 지식인들의 문제적 담론 읽기>, <이희호 평전-고난의 길, 신념의 길>을 썼다. 카이로스는 때, 시기, 기회를 뜻하며 현재를 밝히는 순간의 섬광을 가리킨다. 카이로스의 눈으로 철학·사상·역사를 포함한 인문학을 탐사하며 우리 시대와 대화한다. michae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사설]12·3 내란 수사, 권한시비 끝내고 경찰 중심으로 해야 1.

[사설]12·3 내란 수사, 권한시비 끝내고 경찰 중심으로 해야

명예를 안다면 대통령직 사퇴하라 [성한용 칼럼] 2.

명예를 안다면 대통령직 사퇴하라 [성한용 칼럼]

[사설] 윤 대통령 ‘하야 없다’는데, 국힘 ‘탄핵’ 거부할 이유 있나 3.

[사설] 윤 대통령 ‘하야 없다’는데, 국힘 ‘탄핵’ 거부할 이유 있나

계엄령과 을사오적 [유레카] 4.

계엄령과 을사오적 [유레카]

‘내란 수사’ 두 번 말아먹은 검찰, ‘윤석열 수사’ 자격 없다 5.

‘내란 수사’ 두 번 말아먹은 검찰, ‘윤석열 수사’ 자격 없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