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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청와대를 베르사유 궁처럼…한국이 부르봉 왕가도 아니고 / 이주현

등록 2022-07-25 18:38수정 2022-07-27 15:47

지난 5월23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문화재청은 이날 외국 국빈 만찬장 등으로 쓰여온 청와대 영빈관과 역대 대통령의 언론 회견 장소로 출입기자들이 상주하던 춘추관 내부를 정비해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 5월23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문화재청은 이날 외국 국빈 만찬장 등으로 쓰여온 청와대 영빈관과 역대 대통령의 언론 회견 장소로 출입기자들이 상주하던 춘추관 내부를 정비해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편집국에서] 이주현 ㅣ 이슈부문장

윤석열 대통령 취임과 함께 ‘국민 품으로 돌아온 청와대’의 구체적 활용 방안이 얼개를 드러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1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살아 숨 쉬는 청와대’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요약하면 △‘프리미엄 근현대 미술’을 전시하는 아트 콤플렉스 △대통령의 삶과 리더십, 권력 심장부를 실감하는 대통령 역사문화공간 △고품격 수목원 △문화재 보존이 뼈대다.

전날 기자 브리핑에서 문체부는 청와대 원형을 복원한 뒤 미술품을 전시하는 베르사유 궁전처럼 만들겠다는 뜻을 거듭 피력했다. 또한 대통령 역사문화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역대 대통령의 친인척과 대통령학 전문가 등으로 자문위원을 구성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승만 전 대통령 며느리, 윤보선·박정희·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등에게 자문하겠다고 한다. 업무보고 발표는 대통령실과 사전 조율된 안을 내놓는 것이니 대통령과 문체부 뜻이 일치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청와대 활용 계획을 보면, 취임 당일 서둘러 청와대를 개방한 윤석열 정부의 조급증과, 정치를 권력자와 주변인들의 에피소드쯤으로 사사화하려는 무의식이 읽힌다. 먼저 조급증. 과거 소수의 권력 상층부 인사들만 누리던 공간을 시민들에게 돌려준다는 계획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문제는 무리한 속도전이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숙의를 거쳐 활용 방안을 모색하지 않고, 문부터 열고 보니 향후 선택지는 협소했다.

역사적·정치적 의미가 깊은 공공 공간에 어떤 비전을 담아야 좋을지 모를 때 권력은 손쉬운 길을 택하기 마련이다. ‘대중을 위한 예술’로 포장하는 것이다. 바로크 스타일의 화려함과 정통 프랑스식 정원을 갖춘 베르사유궁. 파리에서 꽤 떨어져 있음에도 여름 성수기엔 몇시간 대기줄이 늘어서는 인기 많은 명소를 모범 답안으로 떠올린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을 것 같다. 빨리 대안을 내놓으려다 보니, 호화로운 공간에 소장 미술품을 전시하고 관광객 많이 불러들이면 성공이라는 편의적 발상에 머무르고 말았다.

하지만 루이 14세가 귀족들 입김이 센 파리를 떠나 20㎞나 떨어진 베르사유에 호화로운 궁전을 지은 것은 절대왕권을 공간적으로 완성하려는 목표였다. 윤 대통령이 아무리 청와대를 ‘제왕적 대통령’의 본산으로 비판한다고 해도, 청와대는 민주공화국의 제도를 현실적으로 성취해 나아가는 한국 정치사의 한복판에 있었다. ‘한국판 베르사유궁 계획안’에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과거 정권의 정무·정책적 판단조차 ‘권력 남용’이란 잣대로 무리하게 재단하려는 윤석열 정부 태도와 어쩐지 닮았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역대 대통령을 돌아보는 공간을 친인척 자문위원단으로 꾸리겠다는 구상도 쉽게 동의가 되지 않는다. 문체부는 “청와대에서의 역대 대통령 모습과 본인들의 삶의 경험을 스토리텔링하여 국민 통합 효과를 제고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대통령을 아버지나 시아버지로 두었던 이들에게서 어떤 공적인 서사를 기대하긴 어렵다. 개인 가족사와 인연으로 대통령을 설명하겠다는 발상이 놀라울 뿐이다. 그런 ‘스토리텔링’은 대통령 생가나 고향에 마련된 기념관에서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요직에 등용된 인사들에게서 사적 인연 논란이 끊이지 않는 윤석열 정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우리가 앞으로 청와대에서 보게 될 것은 뭘까. 거대 건축물과 질서 있게 조성한 정원을 바라보며 권력을 모두 자기 것인 양 바라봤던 제왕의 시선일까. 대통령이 아버지·남편·아들로서 쌓은 사사로운 인연의 내러티브일까.

현재 문체부 계획이 성사된다면, 남용하기 쉬운 권력의 속성과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의 열망 사이의 긴장을 느끼거나, 최고권력자가 고민했던 당대 사회의 요구와 시대의 비전을 곱씹어보긴 힘들 것 같다. 청와대를 물리적으로 개방한다고 시민이 평등해지지 않는다. 불명예 퇴진한 이승만·박근혜 전 대통령과 한반도 평화 비전을 제시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역사를 함께 전시한다고 국민 통합이 이뤄지지 않는다. 우리에게 지금 절실한 것은 끊임없이 재구성돼온 한국 정치의 역동성을 이해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개방적 태도다.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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