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균의 메타버스] 김상균 | 인지과학자·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인공지능이 대체하지 못할 일자리는 무엇일까요?”
대중강연 때 심심찮게 받는 질문이다. 학부모, 교육 현장 관계자들이 주로 물어온다. 미래에 인공지능이 우리 아이의 일자리를 빼앗으리란 우려가 담긴 질문이다. 아이들에게 빼앗기지 않을 일자리를 위한 공부를 시켰으면 하는 바람이 깔려 있다. 통상 이런 질문에 많이 붙는 답변은 이렇다. “작가나 예술가와 같이 창의성이 높게 요구되는 직군, 기업의 인사담당자나 최고경영자와 같이 많은 사람을 상대하고 고도의 전략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 직군은 인공지능에 의한 대체 가능성이 작습니다.” 적어도 현시점에서 인공지능 기술의 수준을 놓고 보면, 틀린 답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 속도를 고려할 때 이 답변이 5년이나 10년 뒤에도 유효할지는 의문이다.
사실 처음부터 잘못된 질문이다. 그렇다면 바른 질문은 무엇일까? “10년 뒤에도 인공지능이 대체하지 못할 일자리는 무엇일까요?”라고 시간 축을 넣어야 할까? 아니다. 질문의 틀, 관점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이 질문은 주어가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자리를 밀고 들어올 터인데, 인간은 어디까지 밀려날지, 어디로 피할지를 걱정하는 질문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누가 만든 것일까? 과학자가 상상하고 연구해서 자본가가 완성한 도구다. 우리는 과학자, 자본가에 의해 어디론가 밀려날 미래를 당연시하며 두려워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도 과학자 중 한명이지만, 우리 미래를 왜 과학자나 자본가가 결정해야 할까? 과학자의 기술력과 자본가의 자본력이나 욕망에 우리 미래를 맡겨둘 필요는 없다.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자. “어떤 일을 끝까지 인간이 해야 할까?”, “세상, 인간, 삶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인간이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일은 무엇일까?”
현실을 회피하는 몽상적 질문이라 여길 수 있다. 그러나 맞닥뜨린 현실의 중심에 인간이 아닌 기술과 자본의 결과물이 놓인다면, 그런 현실은 반드시 뒤집혀야 한다. 그렇다면 필자에게 이렇게 물어올지 모르겠다. “세상, 인간, 삶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인간이 인공지능에 맡기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솔직히 필자도 아직 이에 관해 명확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다만, 이런 생각은 든다. 인공지능이 하지 못하는 일을 찾아 매달리는 인간을 머릿속에 그려보면 엉뚱하게도 하이에나가 떠오른다. 거대한 포식자가 먹어치우고 버린 사체, 남겨진 것을 쫓는 가여운 존재 말이다. 남겨진 것을 쫓는 존재가 주체적으로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를 아름다움에서 멀어지게 하는 무언가, 우리를 추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인공지능에 맡겼으면 한다. 인공지능이 남긴 일을 하는 우리가 아니라, 남긴 일을 인공지능에 시키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세상, 인간, 삶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인간이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일, 이것을 찾더라도 또 다른 의문 또는 숙제는 남는다. 인간이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일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기술과 자본의 결과물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메타버스, 웹3.0을 바라보는 이들이 공통으로 기대하는 가치 중 하나가 탈중앙화이다. 거대한 자본, 플랫폼이 결정한 것에 따르며 끌려가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결정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주체가 되려는 움직임이다. 자본은 “인공지능이 대체하지 못할 일자리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놓고, 최대한 많은 부분에서 인공지능으로 대체하기를 꿈꾼다. 세상, 인간, 삶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인간이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일을 찾기보다 더 어려운 것은 자본이 품은 질문의 틀을 바꾸는 과정이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바꿔야 한다. 필자의 몽상이라 비아냥댈지 모르지만, 남겨진 것을 쫓는 가여운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질문을 바꾸기 위한 담론과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