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특별 사면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제공
곽정수 |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요즘 세종시의 관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듯하다. 각 부처 관료들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한 전직 고위관료는 “후배들을 만나면 각 부처가 주도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전혀 아니라고 한다”고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에서 장관들에게 “스타장관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중략) 자신감을 갖고 언론에 자주 등장해서 국민에게 정책에 대해 설명하라”고 당부했다. 30%대 초반까지 급락한 지지율을 반등시키기 위해 소통 강화를 주문했다고 하지만, 각 부처가 적극적으로 뛰지 않고 있음을 대통령도 인정한 셈이다.
대우조선해양 하청지회가 파업에 돌입한 것은 6월2일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파업 현장을 찾은 것은 지난 19일로, 사태 발발 48일째 시점이었다. 그나마 대통령의 공권력 투입 시사 발언 이후 부랴부랴 움직였다고 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 출신 인사는 “이전 정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혀를 찼다.
지지율 하락의 주요 요인으로 꼽히는 민생경제 대책 미흡도 같은 맥락이다. 서민들은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라는 ‘3각 퍼펙트 스톰’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절박감이나 위기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 2020년 코로나 위기 때 매일 같이 비상대책회의를 연 것과 대비된다. 국민의 실망과 분노가 당연하다.
새 정부가 한껏 탄력을 받아 의욕적으로 일할 시점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대통령은 지난 11일부터 부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과거 관례를 깨고 대통령이 장관으로부터 1대1 보고를 받는 파격적인 방식이다. 그런데 장관이 준비한 업무계획을 제대로 보고하지 못하는 일이 잦다고 한다. 대통령이 장관 얘기를 조금 듣다가, 그만 됐다고 끊은 뒤 자기 말만 한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대통령의 긴 얘기에서 정작 정리할 내용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정부가 성과를 내려면 장관의 충실한 보고-대통령의 명확한 지시-부처의 효율적 집행이라는 프로세스가 일사분란하게 진행돼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시스템이 무너진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이 ‘준비 안 된 대통령’이라는 것은 국민도 안다. 검찰총장을 그만둔 지 불과 100여일만에 정치에 뛰어들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국민은 준비 안 된 대통령의 리스크를 알면서도 문재인 정부의 심판을 위해 선택을 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윤 대통령이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면 유능한 인재를 과감히 등용해서 좋은 의견을 많이 들어야 한다. 그리고 권한을 충분히 위임해서 좋은 성과를 낳도록 해야 한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제나라 환공이 첫 패자가 된 데는 재상인 관중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환공은 자신을 죽이고 형을 군주로 옹립하려 한 관중을 재상으로 발탁하는 뛰어난 용인술을 발휘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자신을 주변을 측근들로 둘러싸는 데 급급하다. 또 장관들의 얘기를 듣기보다 자기 말만 앞세운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경제위기에 따른 민생대책 미흡, 잦은 인사실패, 여당 내분 등 여러 요인이 꼽힌다. 그 중심에는 자신의 준비부족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기는커녕 오히려 키우고 있는 ‘아마추어 대통령’이 있다. 대통령이 국정의 콘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정권의 거버넌스 위기다.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을 계기로 전환점을 마련해야 한다. 여건은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 정책 난맥상이 심각하다. 그중에서도 경제분야가 가장 심하다. 새 정부는 친기업을 내걸고 재벌·부자 감세와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대기업 성장을 통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낙수효과론이다. 하지만 이는 오래전에 사망선고를 받았다.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리려는 격이다.
정책의 방향이 불분명하다 보니 서로 충돌하는 일도 잦다. 새 정부는 재정 건전성 강화를 거시적 국정목표로 제시했다. 당장 법인세와 종부세 인하 등 재벌·부자 감세와 상충된다.
윤석열 정부는 산업부 블랙리스트사건,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북한어민 북송 사건 등 ‘문재인 정부 때리기’에 올인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집권초 적폐청산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하지만 전선을 너무 넓히다 보니 사회 갈등을 심화하고, 국정 에너지를 낭비했다. 개혁 대상을 과거정권과 보수로 한정하면서 내로남불 논란도 자초했다. 오랫동안 쌓여있는 각종 부조리와 불합리를 일소해서 미래를 새롭게 열라는 촛불혁명 정신과 배치된다는 논란도 낳았다. 결과적으로 탄핵을 지지했던 80% 가까운 촛불연합세력이 분열됐고, 2022년 대선 패배의 큰 요인이 됐다.
윤석열 정부는 과거 여당(국민의힘)도 문재인의 적폐청산에 반대했던 것을 잊고 ‘문재인의 실패’를 답습하려는 것 같다. 가뜩이나 준비안된 대통령이 당면과제의 해결을 위해 골머리를 싸매고 밤을 새워도 쉽지 않은 판에 힘을 낭비할 여유가 있는지 의문이다.
무소속 양향자 의원은 윤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이 프로답지 못하다”고 쓴소리를 했다. 윤 대통령도 “대통령을 처음 해봐서”라고 말한 것을 보면 이를 아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이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아마추어 대통령’의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정책의 난맥상을 바로잡고, 무리한 ‘윤석열식 적폐청산’도 중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지율 회복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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