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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가장자리 마을

등록 2022-07-20 18:34수정 2022-07-21 02:11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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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아람 | 작가

거처를 옮겼다. 남가좌. ‘가재울’을 음차한 가좌는 ‘가장자리 마을’이란 뜻이라고 한다. 한때 서울 북서쪽 외곽이었고 고양시에 편입됐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온 역사를 가졌으니, 쓰이던 말이 지금과 다르던 시절부터 쭉 변두리 동네였던 셈이다. 변두리 안에도 변두리가 있다. 이 동네의 절반은 가재울뉴타운 개발로 잘나가는 브랜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나머지 절반의 변두리에는 나 같은 일부 뜨내기를 제외하면 살던 사람들이 계속 산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건물이 수두룩하고, 평생을 같은 자리에서 늙어간 노인들은 이미 붙박이장처럼 집의 일부가 돼 있다. 밤 9시면 동네 전체가 소등하고, 가로등 들어올 자리마저 남지 않은 비좁은 골목은 완전한 어둠에 잠긴다. 자갈모래 깔린 인도가 아스팔트 차도로 바뀌기 전부터 집이 들어섰다는 뜻이다.

대낮에 홍제천을 따라 개를 산책시키다 보면 개울 근처에 모여 앉아 장기를 두는 할아버지들과 마주친다. 탑골공원에서만 봤던 풍경이 이제 내 동네의 풍경이 됐다. 빼입은 옷차림의 풍채 좋은 노신사가 매번 유난히 눈에 띈다. 집에 비가림막을 설치하려고 찾아간 낡은 천막집에서 노신사를 다시 만났다. 거기서 38년간 천막을 만들었다고 한다. 기술을 내 나이 또래 아들에게 전수한 노인은 가게 문을 열면 장기를 두러 떠난다. 노인의 딸은 천막집 옆에서 여성복을 만들어 판다. 나란히 붙은 두 가게에서 남매가 각자 재봉틀을 돌린다. 딸의 재봉틀에서는 시폰 소재의 블라우스가, 아들의 재봉틀에서는 비바람과 직사광선을 견딜 천막이 탄생하는 것이다.

집으로 실측을 나온 노인이 현장을 둘러보는 동안, 나는 원단 샘플북을 넘기면서 고민에 빠져 있다. 노인이 코웃음을 치며 나를 불러 창밖을 내다보게 한다. “여기서 보이는 천막은 다 내 거야. 직접 고르면 되겠네.” 왕국 하나를 소유한 사람의 말투. 나는 몇블록 떨어진 거리의 진녹색 천막을 가리킨다. 그는 내가 고른 원단의 샘플 번호와 함께, 진녹색 천막이 드리운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내력과 그 집 딸 넷의 어린 시절에 관해 이야기해 준다.

다음날 밤. 나는 진녹색 천막 아래 야외공간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하는 중이다. 2층 단독주택의 2층에 주인이 살고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영업시간이 따로 없다. 마지막 손님이 떠나면 가게 문을 닫고, 주인 부부는 피곤하면 영업 중에도 잠시 집에 올라가 눈을 붙인다. 40년째 같은 집에 살았다는데, 식당 주인의 나이는 많이 잡아도 오십대 후반으로 보인다. 부모님이 건축한 집을 물려받았을 것이다.

이 식당은 개를 받아 준다. 골목 건너 구멍가게 사장이 개를 데리고 와서 식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구멍가게 사장 역시 주택 1층에서 영업하고 2층에서 잔다. 동네에서 가장 낡고 가장 커다란 집 중 하나다. 한블록 떨어진 곳의 세븐일레븐에 손님을 다 빼앗겨 가게는 언제나 텅 비어 있지만, 그는 아무런 불만 없는 표정으로 새벽까지 카운터에 앉아 텔레비전을 본다. 그가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는 건 현금 대신 카드를 내밀 때뿐이다. 아마 평생 깔고 앉아 있던 땅의 가치가 편의점을 운영하는 세입자가 평생 벌 수 있는 돈의 규모를 까마득히 추월했기 때문일 터다.

유년기를 아파트에서만 보낸 나는 이런 식의 이어짐이 낯설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에게 ‘글쓰는 놈팽이 집’ 혹은 ‘식당처럼 천막 치고 사는 집’, 하다못해 ‘갈색 대문 집’이나 ‘새벽에 불 안 끄는 집’으로 기억되는 쪽이 ‘501호’보다는 멋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얼마 전 유년기에 나와 같은 아파트에 살며 어울렸다는 동갑내기에게 연락을 받았다. 나는 그를 기억하지 못해 당황했고, 그가 나를 기억한다는 사실에 더 당황했다. 해가 기울 때까지 공터에서 놀다 헤어지면 우리는 네자리 숫자가 적힌 각자의 굴로 돌아갔고, 서로에 대해 네자리 숫자 이상은 식별하지 못했다. 그게 내 기억의 전부다. 마땅히 내 것이어야 했던 경험의 일부가 소멸한 셈이다.

뉴스에서 아파트 단지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본다. 잔디밭에 수영장을 폈다가, 혹은 입주자회의의 결정을 거슬러 길고양이에게 밥을 먹이다가 신상이 박제된 주민들에 관한 기사다. 뭐라 판단하기도 전에 이런 생각이 든다. 저들은 기억되겠구나. 1701호나 1214호가 아니라, 수영장 아저씨와 고양이 아줌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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