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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은경, 그리고 무례한 이별

등록 2022-07-19 18:18수정 2022-07-21 20:17

지난 13일 서울의 한 보건소 건강센터에서 보건소 관계자가 코로나19 백신 4차 접종 관련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3일 서울의 한 보건소 건강센터에서 보건소 관계자가 코로나19 백신 4차 접종 관련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한겨레 프리즘] 황춘화ㅣ사회정책팀장

참으로 ‘무례한 이별’이었다. 5월16일 윤석열 대통령이 새 정부 질병관리청장으로 백경란 성균관대 의대 교수를 낙점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임명은 아니었다. 이튿날 오후 2시께 갑자기 보건복지부 기자 단체대화방에 정은경 청장의 퇴장을 알리는 이임식 공지가 떴다. ‘별도 언론공개 일정 및 자료는 없습니다.’ 정 청장은 마지막 공식 일정인 국회 보건복지부 전체회의에선 정치방역 논란에 시달렸다. “(지난 2년간 질병청은) 과학방역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과학방역과 정치방역을) 구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강하게 반박한 뒤 질병청으로 돌아온 정 청장은 직원들을 다독였다. “책임감은 무겁게 가지되, 더 자신감을 갖고, 서로를 격려하라.” ‘케이(K) 방역의 상징’이었던 정 청장은 짧은 이임사를 남기고 그렇게 질병청을 떠났다.

정은경 청장을 필두로 지난 2년여간 코로나19 대응에 나섰던 질병청 직원들과 의료진, 보건 실무자들은 부인할 수 없는 방역 성과를 냈다. 지난 5월 발표된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로나19 초과사망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초과사망자(기존 사망자 수 예측치에서 질병 대유행으로 늘어난 사망자) 수는 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6위였다. 반면 미국과 유럽 국가 등 대표 선진국들의 10만명당 초과사망자 수는 100명을 훌쩍 넘겼다. 초과사망자는 감염병 확산 억제력과 보건의료 체계의 안정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하지만 새 정부는 틈날 때마다 지난 정부 방역의 성과를 ‘정치방역’이라 폄훼했다.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방역정책을 정치방역이라고 평가하며 “새 정부는 과학방역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백경란 신임 질병청장의 취임사 역시 ‘과학방역 범벅’이었다. 그렇게 과학방역은 단번에 윤석열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정체성으로 자리잡았다. 코로나19 재유행을 맞아 윤석열 정부가 방역·의료 대응방안을 내놓겠다고 했을 때, 어떤 묘안을 내놓을지 기대가 모이는 건 당연했다.

지난 13일 내놓은 방역대책은 요란한 빈 수레였다. 검사·격리 체계는 동일하고, 원스톱 의료기관을 통해 대면진료를 확대하겠다는 방침 역시 오미크론 변이 등장 이후 문재인 정부 방향성과 다를 바 없다. 50대 이상으로 4차 접종을 확대한다면서 ‘왜 50대까지인지’ 설명은 없고, 50대가 위험하다면서 먹는 치료제 처방 대상에서 50대는 빠졌다. 새로운 게 있다면 발표자료 곳곳에 음영을 넣어 강조해놓은 ‘근거’들뿐이다. 따로 모아서 강조해놨지만, 중증화율, 팍스로비드 처방 효과, 오미크론 특성 등 기존 자료 재탕이다. 정부 대책에 새로운 데이터는 없고, 구문을 과학적으로 포장하려는 실무진의 고뇌만 담겼다.

나아가 질병청은 과학방역 대신 ‘과학적 코로나 위기관리’라고 써달라며,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무런 근거를 찾지 못할 때는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 집단지성으로 결론을 내면, 그것도 하나의 과학적 근거라고 의학에서는 간주한다.” 윤석열 정부 방역정책 자문기구인 국가감염병위기대응자문위원회 정기석 위원장도 ‘과학방역이 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안절부절못했다.

전문가들은 ‘고위험군 정밀 타깃형’ 정책을 내놨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문재인 정부 당시 요양시설·병원 등에서 사망자가 속출했던 이유를 분석하고 대책을 내놨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선 현장에선 요양보호사 1명이 손 씻을 시간도 없이 여러 환자를 돌봐야 했던 인력부족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말한다.

돌이켜보면, 지난 5월 우리는 그렇게 이별해선 안 되는 거였다. 새로운 출발은 과거의 연인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갈 수 있다. ‘그래도 내가 낫지 않냐’는 찌질한 변명은 옛 연인만 계속 떠올리게 할 뿐이다. 문재인 정부를 지우고 싶다면, 정책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지금의 이별 방식은 틀렸다.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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