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의 탐문] _18 첫사랑
첫사랑은 사랑의 처음이자 원형이지만, 우리는 언제까지나 그 세계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세월은 흐르고 인정과 세태 역시 변화를 겪는다. 아름다운 기억은 시간이라는 시험을 거치며 빛이 바래고 일그러지게 마련이다. 문학에서도 첫사랑의 서사는 더는 유효하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는 초심으로 돌아가듯 때때로 첫사랑 이야기로 다시 영혼을 적시고는 한다.
시작은 첫사랑이었다. 읽을거리가 귀하던 시절 교과서에서 접한 ‘소나기’(황순원)며 ‘별’(알퐁스 도데), ‘인연’(피천득) 같은 작품들이 내게는 독서의 출발이자 문학적 감수성의 바탕을 이루었다. ‘애러비’(제임스 조이스)와 ‘첫사랑’(이반 투르게네프), <좁은 문>(앙드레 지드) 같은 소설들이 그 뒤를 이었다. 풋풋하고 순수한 첫사랑을 다룬 이 이야기들은 일종의 각인처럼 가슴 깊이 새겨져 이후의 문학 독서를 이끌었다. 첫사랑의 문학은 문학을 향한 첫사랑이기도 했다.
“소년이 등을 돌려댔다. 소녀가 순순히 업혔다. 걷어 올린 소년의 잠방이까지 물이 올라왔다. 소녀는, 어머나 소리를 지르며 소년의 목을 그러안았다.”
단둘이서 산으로 소풍을 떠났던 소년과 소녀는 돌아오는 길에 소나기를 만난다. 그 비는 두 아이를 굳게 맺어주었다가는 이내 영원히 떼어놓는 역할을 한다. 소녀의 스웨터 앞자락에 남은 흙빛 얼룩은 어린 주인공들을 찾아온 사랑의 낙인을 상징한다.
“우리 주위에는 별들이 커다란 양 떼처럼 유순하게, 소리 없는 운행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앉은 채로 이따금 난 그려보곤 했어요. 저 별들 중에 가장 여릿여릿하고 가장 반짝이는 별 하나가 가던 길을 잃고 내게 내려와서는 이 어깨에 기대어 잠든 것이라고요.”
‘별’에서 양치기 청년과 주인집 아가씨의 위계적 관계는 ‘소나기’의 시골 소년과 서울 소녀의 관계를 닮았다. 소나기로 불어난 물 때문에 소년이 소녀를 업게 된 것처럼, 여기에서도 비로 인해 강물이 범람하자 아가씨가 산에서 내려가지 못하고 양치기의 거처에서 밤을 보내게 된다(비는 많은 일을 한다!). 그렇게 해서 아가씨는 양치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잠들지만, 그것은 애정이라기보다는 순수한 신뢰의 표현이라 해야 옳다.
‘애러비’에서 짝사랑의 대상 맹건 누나가 지나치듯 언급한 바자회가 ‘나’에게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다녀와야 할 순례지가 된다. 그러나 바자회에 가야 한다는 나의 말을 흘려듣고 만 아저씨의 늦은 귀가, 파장을 앞둔 바자회의 가게 여점원과 신사들의 실없는 농담에서 보듯 세상은 나의 사랑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 소년은 사랑이라는 놀라운 감정의 세계에 처음 눈을 떴지만, 그 앞에 펼쳐진 길은 어둡고 불길할 뿐이다.
“그 어둠 속을 응시하면서 나는 허영심에 내몰리고 조롱당한 짐승 같은 내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나의 눈은 고뇌와 분노로 이글거렸다.”
사랑의 흥분과 고양감이 급격하게 가라앉으면서 싸늘하게 식어가는, 환멸을 통한 깨달음과 성장의 이 결말은 ‘에피파니’라는 개념으로 문학사에 등재됐다.
인도양 섬나라 모리셔스를 배경으로 한 베르나르댕 드생피에르의 소설 <폴과 비르지니>는 자연 대 문명의 대립구도 속에 첫사랑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각각 식민 모국 프랑스 출신 싱글맘에게서 태어난 폴과 비르지니는 같은 요람에서 뒹굴고 심지어는 어머니들의 젖도 공유하며 남매처럼 자라면서 자연스레 서로를 운명의 짝으로 여기게 된다. 소나기를 만난 두 아이가 비르지니의 속치마를 함께 둘러쓰고 비를 피하는가 하면 폴이 비르지니를 업고 강을 건너는 장면은 황순원의 ‘소나기’를 닮았다.
“인생의 아침을 맞이한 두 사람의 삶은 싱그러움으로 가득했어. 마치 에덴동산에 나타난 우리 인류 최초의 조상과 같았네.”
자연 속에서 아담과 이브를 닮아 순수하고 무구했던 이들에게 프랑스 본국으로부터 문명의 손길이 뻗쳐오고, 이브를 유혹한 뱀의 혓바닥처럼 그것은 낙원의 붕괴와 두 주인공의 파멸을 초래한다. 슬픈 결말 속에서 그나마 한가닥 위안을 찾을 수 있다면, “무덤도 하나밖에 없을 거”라 다짐했던 두 주인공의 순정을 마지막 순간까지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19세기 영국 시인 앨프리드 테니슨의 서사시 ‘이넉 아든’은 두 소년과 한 소녀의 평생에 걸친 사랑을 그린다. 바닷가 마을에서 자란 이넉과 필립, 애니는 어려서부터 삼각관계였는데, 결국 이넉과 애니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필립은 혼자 사는 삶을 택한다. 그러나 돈을 벌겠다며 중국행 상선에 오른 이넉이 십년이 되도록 소식이 없자 애니는 그동안 자신과 아이들을 돌봐주었던 필립과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는다. 뒤늦게 돌아온 이넉이 애니와 아이들의 평화를 위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살다가 쓸쓸하게 죽음을 맞는 결말은 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서글프고 진지하며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 위에는 헌신과 슬픔과 사랑과 어떤 절망의 흔적이 배어 있었다. (…) 아버지는 프록코트 앞깃의 먼지를 털어내던 채찍을 느닷없이 휘둘렀다. 그리고 팔꿈치까지 드러난 그녀의 팔이 채찍을 맞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투르게네프의 중편소설 ‘첫사랑’은 일종의 오이디푸스적 관계를 그린다. 열여섯살 소년 블라디미르는 이웃집으로 이사 온 스물한살 여성 지나이다를 연모하는데, 지나이다가 사랑의 상대로 택한 것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낙담과 충격에 사로잡힌다. 게다가 사랑의 관계란 게 평등하거나 상호적이지 않고 지배와 복종의 권력관계를 닮았다는 사실 역시 이 사랑의 초심자에게는 두려운 깨달음의 대상이 된다. 앞서 인용한 대목의 폭력 묘사는 박남철의 시 ‘첫사랑’을 떠올리게도 한다.
성석제의 단편 ‘첫사랑’에서 중학생 화자인 ‘나’는 덩치가 크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동급생 ‘너’의 일방적인 애정 공세에 시달린다. “넌 꼭 계집애같이 생겼구나.” 동성인 나에게 온갖 호의를 베풀며 접근하는 너에게 화자는 화를 내거나 울거나 때로 모욕을 주며 저항하지만, 시간이 제법 흐른 뒤의 결말은 나름 해피엔딩이다. “한번 안아보자”는 너의 부탁을 처음으로 받아주고, “사랑한다”는 고백(?)에 “나도”라 응답하며 “나는 비로소 내가 사내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 그려진 초보적 동성애는 박상영의 <1차원이 되고 싶어>나 김세희의 <항구의 사랑> 같은 소설들에서 좀 더 본격적인 형태를 얻게 된다.
대상이 이성이든 동성이든, 첫사랑은 결코 쉽지 않다. 첫사랑을 다룬 많은 문학작품이 어떤 식으로든 파국이나 비극으로 마무리되는 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지드의 <좁은 문>은 어긋난 첫사랑의 안타까움을 담은 고전이다. 주인공 제롬은 어려서부터 외사촌 누이들인 알리사와 쥘리에트 자매와 가깝게 어울리며 특히 손위인 알리사에게 각별한 감정을 품게 된다. 알리사 역시 제롬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순탄하지 않고 까다로우며 상식에 반하는 듯 보이기조차 한다. 알리사는 자신이 제롬보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 때문에 주저하는 한편, 동생인 쥘리에트 역시 제롬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동생에게 제롬을 양보하고자 한다. 게다가 어머니의 불륜으로 인한 충격은 알리사로 하여금 세속적 사랑에 거부감을 지니고 신앙을 바탕으로 한 구원이라는 ‘천상의 기쁨’을 좇게 만든다. 가히 자학적이라 할 알리사의 태도는 ‘좁은 문’이라는 소설 제목에 집약되어 있다 하겠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피천득의 수필 ‘인연’은 세파에 손상된 첫사랑의 씁쓸한 뒷맛을 일깨운다. 첫사랑은 사랑의 시작이자 원형이지만, 우리는 언제까지나 그 세계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세월은 흐르고 인정과 세태 역시 변화를 겪는다. 아름다운 기억은 시간이라는 시험을 거치며 빛이 바래고 일그러지게 마련이다. 문학에서도 첫사랑의 서사는 더는 유효하지 않아 보인다. 첫사랑에 관한 한 새로운 이야기를 하기 어렵기 때문이리라. 시절이 복잡하고 험악해지면서 사랑도 그만큼 낡고 찌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우리는 초심으로 돌아가듯 때때로 첫사랑 이야기로 다시 영혼을 적시고는 한다. 에드거 앨런 포의 시에서 보다시피, 어리고 서툰 사랑이 오히려 성숙하고 지혜로운 사랑보다 강하고 오래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사랑은 강했어요./ 우리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보다도,/ 우리보다 지혜로운 사람들의 사랑보다도,/ 저 위에 존재하는 천상의 천사들도,/ 저 아래에 있는 바다 아래 악마들도,/ 내 영혼을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영혼으로부터/ 떼어내지 못했어요.”(‘애너벨 리’ 부분)
최재봉 | 책지성팀 선임기자
1988년에 한겨레에 들어와 1992년부터 문학 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다. 작가들과 독자들 사이의 가교 역할에 충실하며, 문학의 본질과 변화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자 한다. 지은 책으로 <역사와 만나는 문학기행> <거울 나라의 작가들> <그 작가, 그 공간>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에드거 스노 자서전> <악평> <지구를 위한 비가> 등이 있다.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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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에 한겨레에 들어와 1992년부터 문학 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다. 작가들과 독자들 사이의 가교 역할에 충실하며, 문학의 본질과 변화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자 한다. 지은 책으로 <역사와 만나는 문학기행> <거울 나라의 작가들> <그 작가, 그 공간>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에드거 스노 자서전> <악평> <지구를 위한 비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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